"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이 상황을 잘 극복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타자는 늘 공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타석에 들어선다. 돌덩이 같은 야구공은 큰 부상을 일으키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조성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사구 때문에 선수 생활이 일찍 끝날 뻔 했다. 롯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조성환 위원은 2009년 4월 23일 문학 SK전에서 채병룡의 투구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선수 생명을 위협할 만큼 큰 부상이었다.
이튿날 한양대 병원에서 광대뼈 함몰 수술을 받은 조성환 위원은 불굴의 투지로 40일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래서 일까. 조성환 위원은 최재원(삼성)의 부상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18일 수원 kt전서 장시환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턱 뼈가 골절된 최재원은 오는 23일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다음은 조성환 위원과의 일문일답.
-최재원의 부상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 같다.
▲아내와 함께 TV 중계를 통해 장시환의 투구에 맞은 뒤 그대로 쓰러지는 걸 보고 바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별 일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TV 중계를) 봤는데 앰뷸런스에 실려 나가는 걸 보면서 옛날 기억도 떠올랐다. 너무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더 마음이 아팠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부위는 다르지만 부상의 심각 정도는 비슷할 것 같은데.
▲당시 나는 복시(1개의 물체가 2개로 보이거나 그림자가 생겨 이중으로 보이는 증상)가 가장 우려됐다. 과연 내 눈이 다치지 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의료진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최재원 혼자 이겨내기 힘들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도움을 받았는가.
▲부상 직후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을 비롯해 김성근 SK 감독님과 이만수 SK 수석 코치님 그리고 유영구 KBO 총재님 등 많은 분들이 병문안을 오시는 등 관심을 많이 받았다.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당시 머리 쪽에도 충격을 받았는데 누가 병문안을 왔었는지 다 기억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누가 왔었다고 이야기해도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럴 만큼 정신이 없었고 충격도 컸었다. 로이스터 감독님의 도움이 정말 큰 힘이 됐다. 감독님께서는 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확고한 믿음과 시간적 여유를 주셨다. 그리고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군 복귀 시점도 상대 좌완 선발이 등판하는 날로 배려해주셨다.
(조성환은 6월 2일 문학 SK전을 앞두고 1군 무대에 전격 합류했다. 당시 로이스터 감독은 "(조성환의 1군 복귀가) 다소 이른 느낌이 있다. 그러나 4위로 치고 나가기 위해선 조성환이 반드시 필요했다. 페이스가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나 시간은 언제까지나 줄 작정"이라며 "조성환의 장점은 타점을 올리고 안타를 치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팀에 공헌할 수 있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이날 3번 2루수로 선발 출장한 조성환은 SK 선발 김광현에게서 선제 적시타를 터뜨리는 등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사구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결코 쉽지 않다. 나는 타석에 들어설때 '내가 그렇게 운이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한 번 맞았는데 또 맞겠는가. 그리고 상대 투수들도 내 얼굴 쪽으로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되내었다.
-부상 이후 '검투사 헬멧'도 사용하지 않았다.
▲검투사 헬멧을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긴 하겠지만 그걸 쓰면 내 자신이 몸쪽 공을 두려워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쓰지 않기로 했다.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장시환은 최재원을 맞힌 이후 마운드에 서 있었다. 이 때 사과의 표시가 없었던 게 논란이 됐다.
▲사견을 전제로 이야기하자면 사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본다. 언제 어떻게 사과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아무래도 그 타이밍을 놓쳐 버리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 같다. 장시환도 큰 부상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적절하게 사과의 표시를 했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장시환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재원이 입원한) 병원에 한 번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채병룡은 병문안을 왔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채병룡 얼굴은 기억이 난다.
-최재원에게 조언할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이 상황을 잘 극복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최재원은 타석에서 공을 피하려다가 맞은 게 아니라 타격 과정에서 맞았다. 공에 맞을지 모르고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하려고 하다가 투구에 맞게 됐는데 복귀 이후에도 공격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재원이 다시 찾아올 기회를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상황이 힘들겠지만 본인의 노력에 따라 야구장에서 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