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1일 '페이커' 이상혁(20, SK텔레콤)이 LCK 첫 1000킬을 기록하고 난 뒤 열흘이 지나서 ROX 타이거즈의 원거리딜러 '프레이' 김종인(22)이 LCK 2호 1000킬의 주인공이 됐다. 첫 번째가 아니기에 김종인은 아쉬워했지만 파란만장했던 지난 4년을 돌아보면서 다음 자리에서는 꼭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바로 그 첫 걸음은 여름 사나이 KT를 상대로한 2016 롤챔스 서머 결승전이다.
데뷔 초부터 김종인은 '천재'로 큰 주목을 받았다. 아마추어 고수로 나진 이석진 대표의 연이은 러브콜로 소드로 데뷔한 그는 롤드컵 시즌2를 거쳐서 두 번째 롤챔스 대회서 당대 최강팀이었던 아주부 프로스트를 꺾고 첫 롤챔스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3시즌 팀의 롤챔스 무대에서는 다소 주춤했지만 롤드컵에서는 4강까지 오르면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하지만 2014년 부진과 함께 데뷔 이후 줄곧 함께 했던 나진을 떠나게 됐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었다. 바로 ROX 타이거즈의 전신 이라고 할 수 있는 후야 타이거즈로 롤챔스 무대로 돌아오면서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돌아온 천재 '프레이' 김종인을 OSEN이 롤챔스 결승 진출과 롤드컵 진출을 확정한 며칠 뒤 만나봤다.
아쉽게 두 번째로 달성한 LCK 통산 1000킬에 대해 김종인은 "첫 번째가 아니라는 점이 정말 아쉽지만 이상혁 선수가 잘했기 때문에 첫 번째 1000킬을 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라도 된 게 감사하다. 아쉬었던건 '나진에서 좀 잘했으면 1000킬을 먼저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실 '프레이' 김종인의 어릴적 꿈은 프로게이머는 아니었다. 김종인은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던 보통 학생이었다. LOL은 수능 보기 전에 100일 전에 친형이 추천을 해주면서 입문하게 됐다. 북미서버로 시작했지만 나름 수험생이라 롤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공부에 흥미가 없던 탓에 요즘 말로 '자체 휴강'을 하면서 방에서 LOL의 세계로 들어가게 됐다"면서 "그렇게 하다 순위권에 올라오게 됐다. 걸림돌 없이 최상위권까지 300판 만에 2등 정도 찍었다. LOL 랭크게임을 하면서 '내가 재능이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중 스타테일과 나진 두 곳에서 입단 테스트를 해보라는 연락이 왔고, 때마침 1학기 학교 성적표을 받을 시점에 'F'가 가득한 성적표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팀에 들어가야만 했다"고 프로게이머가 되기 까지의 과정을 회상했다.
'집안의 반대는 없었을까'라는 궁금증에 질문을 던지자 그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고 서로에게 미루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어머니는 아버지께 허락 받으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내가 강하게 밀어붙였다. '스무살이면 한 번 도전해봐도 되지 않겠냐고' 그러자 부모님의 마음이 움직이셨다. 처음 시작할 때 3위하고 롤드컵을 갔다. 부모님도 아예 생각을 못해서였는지 너무 좋아하셨다. 경기를 다 챙겨보시고 응원도해주셨다. 잠시 쉴 때는 군대 언제가니 라는 말씀을 하시기는 하셨다. 그러다가 GE로 다시 들어갔다. 1년 해보고 군대가라고 하셨는데 성적이 잘 나와서 축하해주신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발군의 컨트롤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피지컬로 소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후 사실상 방출에 가깝게 팀을 나갔지만 김종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면서 나진 시절에 대해 가감없이 돌아봤다.
"데뷔 할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너무 많이 받았다. 유지해야지 유지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1위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독이 된 것 같다. 잘 풀리지 않고 그러다보니 슬럼프도 따라 왔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1인 이상의 실력을 원하더라 그래서 흥미도 잃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쉬고 싶었는데 쉬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 때 쉬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해본다.
쉰다고 하고 쉬지 못하고 한 시즌을 더 뛰게 됐는데 16강에서 탈락하게 되면서 소드가 누리형만 남고 다 나가게됐다. 성적을 내지 못한지 오래된 상태였다. 결과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팀을 나가게 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얻게 귀한 휴식의 꿀 맛은 잠시였다. 김종인은 5개월 정도 됐던 시간의 간극을 1년 이상으로 느꼈다. 자연스럽게 승부사의 기질도 발동됐다. 쉬고 있는 시간동안 연락이 올 줄 알았지만 그에게 다시 러브콜을 보낸 팀은 지금의 ROX 타이거즈가 유일했다고 전했다.
"5개월이나 반 년 정도 쉬었지만 1년 이상의 느낌이었다. 쉬고 있으면 있을 줄 알았던 입단 제의는 여러 곳이 아닌 오직 타이거즈 한 곳 뿐이다. 당시 (강)범현이가 선수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나진에서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이 모이게 됐다. 그렇게해서 (이)서행이 (이)호진이, 나까지 세명이 더 추가됐다. 감독님인 (정)노철이형도 멤버 구성원을 보고 합류하게 됐다. (송)경호가 마지막으로 팀에 들어오면서 타이거즈가 만들어졌다."
현대인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인 스트레스는 4년 넘게 꾸준함을 지키고 있는 1세대 LOL 게이머 김종인 역시 피할 수 없는 관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스트레스의 해소 비결로 다른 게임을 시간 나는대로 즐긴다고 귀뜸해줬다. 팀에 술을 즐겨마시는 이가 없기에 게임이 안성맞춤이라는 식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 LOL프로게이머들은 어린 나이때부터 해서 그런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나한테 묻는다면 스트레스 해소는 하고 싶은 걸 하는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불규칙하게 짧게 시간이 나오는 사람들은 여행은 시간 때문에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다른 게임을 조금씩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쉬던 기간 LOL을 다시 잡게 된 이유도 잘하는 게임을 다시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려 했다. 다시 선수로 복귀한 이후에는 유명하다는 게임은 시간을 좀 아껴서 즐기곤 했다. 관심이 갔던 게임은 엔씨소프트서 나온 블레이드앤소울이다. 잘하던 게임이라 이후에도 자연스레 하게 됐다."
최근 부스안에서 복면가왕 음악대장으로 활약했던 국가스텐 보컬 하현우의 'Don't Cry' 열창에 대해 묻자 너털웃음과 함께 팀 분위기도 전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부슨 안에서 소리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는게 일상이 됐다. 누군가 노래의 첫 소절을 하면 저절로 모두 따라부르면서 긴장을 풀게 된다."
1994년 우리나이로 스물 셋인 김종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지금 내 또래들은 대부분 군대를 갔다왔다. 지금 친구들을 가끔 보게 되면 군대이야기만 실컷 듣는다. 살짝 소외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은 군대보다 프로게이머를 최대한 오래하고 싶다. 군대는 선수로써 기량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가고 싶다. 군대를 갔다오고 나면 최대한 빨리 결혼하고 싶다.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싶다. 무슨 직업을 하던 가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33살 쯤에는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계획까지 막힘없이 털어놨다.
LOL 뿐만 아니라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유망주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김종인은 이제까지 넉살 좋은 표정대신 진지함으로 조언을 했다. "프로게이머를 정말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위권만 보면 낭만적일 수 있지만 2부나 연습생들은 힘들고 고될 때가 많다. 재능도 있어야 하고 노력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최상위권까지 올라오려면 재능도 있어야 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 프로게이머가 된다고 생각한다. 재능이 없으면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좀 신중하게 결정하셨으면 좋겠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하자 김종인은 롤챔스 결승과 함께 롤드컵 각오까지 전했다. "롤드컵 진출은 확정됐지만 패치가 바뀐 만큼 잘 적응하겠다. 롤챔스 우승이 된다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 기세를 이어서 롤드컵까지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 scrapper@osen.co.kr
*오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