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경기-60⅔이닝 소화, SK의 숨은 수호신
베테랑의 배짱과 여유, “80경기도 도전”
SK 불펜의 핵심인 채병룡(34·SK)은 올 시즌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중간 투수 중 하나다. 올 시즌 40경기 이상을 나선 중간 보직의 선수 중 정재훈(두산·3.27)에 이어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3.41)을 기록 중이다.
단순히 평균자책점만으로 그 가치를 재단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채병룡은 올 시즌 50경기 이상을 나선 리그 6명의 선수 중 하나이며, 순수 중간에서 소화한 이닝만 60⅔이닝이다. 이는 권혁(한화·87⅔이닝), 송창식(한화·82⅔이닝)에 이어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다. 한편 채병룡은 28명의 기출루자 중 8명에게만 홈을 허용(.286)했다. 역시 리그 TOP 10에 드는 좋은 수치다. 김용희 SK 감독은 “불펜이 채병룡으로 버티고 있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채병룡은 군 복무를 마친 뒤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33경기에서 4승4패1홀드 평균자책점 6.07에 그쳤다. 이제 30대 중반에 이른 나이를 고려하면 선수 경력에 있어 의미 있는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채병룡의 재기를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채병룡은 금세 답을 내놓는다. 바로 ‘심리적인 부분’이다.
사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채병룡의 장기는 큰 변화가 없다. 예전에 비해 구속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지난겨울 해외에서 몸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렸지만, 스스로 말하듯 이는 “매년 있었던” 루틴이었다. 그런 채병룡은 “마음이 편해졌다”라고 말한다. 두 가지 의미다.
첫째는 계약에 대한 부분이다. 채병룡은 올 시즌 전 SK와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었다. 계약 내용을 떠나 어쨌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계약 기간 동안 열심히 던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채병룡이다. 두 번째는 압박의 초월이다. 채병룡은 “예전에는 내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타자들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여유로워졌다. 이 타자를 놓치더라도 다음 타자를 잡으면 된다는 그런 계산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채병룡의 진가는 지난 주말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렸던 넥센과의 경기에서 잘 드러났다. 위기 상황에서 등판, 2경기에서 세 차례의 병살타를 유도하며 넥센의 흐름을 완전히 끊었다. 이는 곧 팀의 승리로 이어졌다. 채병룡은 이에 대해 “병살은 운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예년에 비해 내가 원하는 코스로 공이 들어가는 빈도가 높아졌다”라고 이야기했다. 채병룡은 리그 최정상급의 제구를 갖춘 투수다. 심리적인 편안함이 그런 채병룡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채병룡은 올 시즌 SK의 ‘애니콜’이다. 이기고 있는 상황은 물론,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1~2점차 열세에서도 가장 많이 호출된다. 체력적인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 그러나 채병룡은 “코칭스태프에서 관리를 잘해주신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반영된다”라고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것이 채병룡의 올 시즌 마지막 목표다. 어느덧 불펜 최선임급 선수가 됐다는 책임감도 불탄다.
채병룡은 “우리 팀이 경기를 많이 해 9월부터는 일정에 다소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8월만 잘 버티면 될 것 같다”며 베테랑다운 계산법을 내놓은 뒤 “9월에는 이틀 경기를 하고 며칠을 쉬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80경기 출전에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껄껄 웃었다. SK의 ‘숨은 수호신’이 만든 단단한 자물쇠는 점점 해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