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제2대 IOC 위원 이상백의 친일 행적, 『매일신보』에서 찾아내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6.08.05 09: 47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이상백 씨는 일제시대 때는 일본체육회 이사로 활동하는 등 대표적인 친일파였으나 해방 이후 불모지인 한국 초창기 스포츠 진흥에 힘썼고,” (『연합뉴스』1996년 7월 18일치 ‘한국의 역대 IOC위원’ 관련 기사에서 발췌 인용)
“이상백, 그가 한국 스포츠를 위해 해온 일들은 너무나 많다. 그는 친일파로 매도되기도 했고 이 때문에 그의 수완도 능력만큼 발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프레시안』2013년 6월 14일치에 실린 역사학자 김기협의 글 ‘1948년 런던 올림픽의 진짜 주인공, 이상백’에서 발췌 인용)
이상백(李相佰, 호 想白. 1903~1966년)은 한국의 제2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1964~1966년)을 지냈던 한국체육계의 유명 인물이었다. 그가 해방 이후 1948년 런던올림픽에 한국이 독립국가로 참가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아울러 그의 이력에는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양극의 평가가 항존 하고 있는 이상백의 친일 행위는 사실인가.

‘대표적인 친일파’와 ‘친일파로 매도’ 당하는 사이에는 메우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의 사실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이상백이 과연 친일 행위를 했는가를 구체적인 사료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역사의 갈피로 사라진 인물에 대한 ‘공과(功過)’는 실체적 사료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검증하는 것이 편견과 맹목적 찬양을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상백은 1903년 대구에서 이시우(李時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맏형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상정(相定. 1897~1947년), 중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상화(相和. 1901~1943), 아우는 수렵인 상오(相旿. 1905~1969년)이다.
농구선수 출신인 이상백은 일제 강점기 후반 조선 체육계, 엄밀하게는 일본 체육계의 행정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 그의 이름을 딴 ‘이상백배 한‧ 일 농구대회’는 그를 기리기 위해 1978년에 창설, 여태껏 지속되고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
최근 필자가 한 경매 사이트를 통해 손에 넣은 『매일신보』몇 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구축해 놓은 ‘빅 카인즈(BIG KINDS)’에서 그의 친일 행적을 유추할 수 있는 글을 확인했다.
친일 혐의가 짙은 그의 글과 기사의 편린은 ‘전시(戰時)와 신체육이념(新體育理念)’ 5편과 ‘체육공로자 표창’과 ‘일본체육계공로자 이상백 씨의 회고와 소감’ 등이다. 조대강사(早大=와세다대학) 신분으로 그가 직접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전시와 신체육이념’은 1942년 5월 31일에 시작, 6월 1일(2회), 6월 3일(3회), 6월 4일(4회), 6월 5일(5회)에 끝마친 연재물이다. ‘체육계 공로자 표창’은 1942년 5월 23일치, ‘일본체육계 공로자 이상백 씨 회고와 소감’은 1942년 5월 28일치에 실렸다.
‘전시와 신체육이념’의 내용과 주장의 골자는 일제의 조선인 징용에 발맞춰 ‘(조선의) 젊은이들이 체력을 총력 단련해 전시에 대비해야한다’는,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에 적극 호응하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뭉뚱그리자면, 일제의 전시에 부역해야한다는 일관된 논리를 앞세워 조선 젊은이들의 징용을 은근히 종용하거나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 서울 박동에서 영국인 배델(Bethell.E.T.)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양기탁을 총무로 창간됐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가 그 뿌리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언론 탄압 속에서 외국인의 치외법권을 이용해서 버텨냈던 한말의 대표적인 민족지였지만 조선총독부가 1910년 8월 29일자(제1461호)로 강제 매수, 8월 30일자(제1462호)부터 『매일신보』로 개제하여 발간했다. 1938년 4월 29일 일문판 자매지 『경성일보(京城日報)』와 분리 독립해 『매일신보(每日新報)』로 새롭게 발족했다.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일제의 침략 정책 수행의 선봉이 되었다. (권영민 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년)
이상백의 ‘친일적인 글’을 확인하기에 앞서 당시 시대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총독부는 1942년 5월 9일 징병제도를 실시한다고 공표했다. (『매일신보』1942년 5월 25일치 ‘징병제도 실시 감사 축하회 성황’ 기사 참조) 징병제도는 무고한 조선의 젊은이들을 태평양전쟁에 광분하고 있던 일제가 사지로 내몰겠다는 공언에 다름 아니다. 『매일신보』는 1942년 5월 27일치 기사에서 ‘전국민의 개병(皆兵)운동-조선체력장 검정제 6월부터 실시’를 알렸다.
이상백이『매일신보』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아낌없이 드러낸 글 ‘전시와 신체육이념’을 살펴보자. (일부 한글 및 한자 표기는 필요에 따라 현대 맞춤법으로 바꾸었음)『매일신보』로 확인한 그의 ‘전시와 신체육이념’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필자 소유 신문을 그 텍스트로 삼았다.
“대동아전쟁이 일어나 국가가 총력전으로 싸우게 됨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자각에만 그치지 않고 국가의 우리에게 대한 강엄(强嚴)하고도 초미(焦眉)한 요구가 된 것이고 더욱 징병제도가 이곳에도 실시하게 된 호기는 우리의 자각과 국가의 요구가 일층 도 절실히 우리의 의식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 젊은 사람은 국민원기의 결정(結晶)이며 또 우리 체육가는 젊은 사람의 정열의 권화(權化)니 우리가 원기를 고양하고 정열을 태워서 국민의 사기를 진흥하고 신동아, 신세계 창조의 힘찬 일꾼이 될 천재일우의 호기에 있어(…) 자진 선구(先驅)하여 노고를 감수하고 피땀을 흘려야할 것이다.” (전시와 신체육 이념 ②)
“국가가 국민체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격려, 진기(振起)한다는 것은 그만한 각오와 준비를 한 것이니 일전(日前) 동경에서 성대히 발대식을 거행한 대일본체육회가 내각총리대신을 수장으로 하고 도죠 히데키 수상이 피로(披露)한 시종(始終)의 열렬한 포부가 이것을 증명하는 바이다.” (전시와 신체육이념③; 도죠 히데키는 전후 1947년 A 급 전범으로 처형된 자이다)
“조직은 국가총동원의 취지에 따라서(…) 능력 있는 식자(識者)를 총동원, 총망라할 규모와 방법을 취할 것이며(…) 근본 대목표는 물론 전력강화에 있으니.” (전시와 신체육이념 ④)
“근대의 복잡하고 진보된 무기와 전술로서는 미묘하고 정세(精細)한 체능, 체력, 체기(體技)를 필요 하는 것이니(…) 최근에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우고 세간의 화제가 된 소년항공병이나 낙하산부대 등을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대목표인 직접 국방력 증진 체육에 대해서는(…) 우리 체육인 전체가 아니 전조선 사람이 강력하고 열중해야 될 현하(現下)의 최급무(最急務)다. (…) 군(軍)의 긴밀한 지도 하에 대결심으로 전사회, 전조선이 열중(熱中)의 화와(火渦)로 화(化)해야만 될 것이다.” (전시와 신체육이념 ⑤)
이상백이 말한 ‘국가(國家)’는 조선이 아닌 일본을 뜻하고 ‘이곳’은 조선 땅을 일컫는다는 것은 글의 맥락으로 봐 충분히 알 수 있다. 그의 의식은 철저하게 ‘국가인 일본’의 시각으로 포장, 함몰돼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글이다.
이상백은 ‘일본체육계 공로자 회고와 소감’을 통해서도 “체육의 성쇠는 국가흥발(興發)에 영향이 있는 관계로 체육에 대한 행정을 통일해 적극적으로 국민체력을 지도하고 이를 확대 강화해 국가가 요망하는 이상을 실현하도록 매진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체육, 체력의 강화가 국가(일본)의 전쟁력 증강에 이바지해야한다는 ‘믿음’을 여과 없이 나타냈다.
이상백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2009년에 펴낸『친일인명사전』에는 그 이름이 들어 있지 않다. 친일 행위를 했더라도 사전에 실을 만큼 중요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아 누락 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매일신보』에서 드러난 ‘객관적 사실’ 만으로도 그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글은 새삼스럽게 일제 때의 한 체육인의 친일 행적을 들춰내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큰 영향력을 지녔던 유명 체육인의 친일 부역은 반드시 밝혀내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후학들의 경계로 삼아야 마땅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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