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불어오고 있는 ‘포켓몬 열풍’을 취재하기 위해 속초에 다녀온 답사기를 쓴 후, 하루하루 한국에서의 정식출시를 기다리다 어느덧 포켓몬은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무심코 포켓몬 고(GO)를 실행해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포켓몬도 발견되지 않는 텅빈 화면을 바라보면 정말로 속초에서 포켓몬을 잡고 다녔던 것이 '하룻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구나' 하는 허무감만 밀려왔다.
그러던 중 게이머들 사이에 슬금슬금 다른 이야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속초 일대에서만 포켓몬이 실행되게끔 했던 주범(?)인 ‘인그레스 셀’ 구획 지도에 따르면 대마도와 부산이 하나의 구역으로 묶여있어서, 일본에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면 부산 일대에서도 포켓몬 GO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놀라운 추측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일본에 서비스가 개시되었지만 부산에서는 포켓몬을 잡을 수 없었다. 많은 부산시민들이 허망해하던 찰나, 이내 ‘울산 간절곶에서 포켓몬이 잡힌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그 이유인즉, 부산과 대마도를 분리하기 위해 셀을 분리하여 구획하는 과정에서 절묘하게 간절곶 일대만 일본쪽으로 편입되어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한국에 포켓몬 고 플레이의 여지를 주는 것이 우연적 일치에 의한 것인지, 제작사의 묘한 의도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포켓몬만 잡을 수 있다면 그런 것이 무에 중요하겠는가. 포켓몬 고의 혜택에 목말라 있는 국내 게이머 입장에서는 한 군데서라도 더 되는 것이 중요할 따름일 것이다.
아무튼 지난 7월 22일 일본 서비스 개시와 동시에 간절곶(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일대)은 급속도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그 직후 주말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일요일 하루에만 1만명이 넘는 사람이 간절곶을 찾았으며, 열흘 만에 약 5만 명이 넘는 인파가 간절곶을 찾았다고 하니 이는 신년 해돋이 때의 인파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라고 한다. 그렇게 한바탕 포켓몬의 광풍이 휩쓸고 간 간절곶에 필자 또한 늦게나마 발을 들여 보았다.
▶ 지도상에서 표시한, 울산에서 포켓몬 고를 즐길 수 있는 구역. 간절곶에서 서생면사무소까지의 거리는 약 4km정도로, 몹시 좁은 구역에서만 한정적으로 포켓몬 플레이가 가능하다.
◆ 간절곶 곳곳에서 보이는 ‘행정’의 흔적
처음 간절곶에 들어서면서 이미 지자체에서 설치한 안전 현수막들이 곳곳에 눈에 보였다. 이병선 속초시장의 전례를 따르듯 김기현 울산시장 또한 SNS를 통해 간절곶의 포켓몬 열풍을 열심히 홍보 중이다.
▶ 곳곳에 걸려있는 안전 현수막
특히 안전점검 체크를 위해 게이머들과 함께 밤샘을 하겠다며 밤중에 직접 간절곶 현장에 나와 있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등의 남다른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현장에는 울산시에서 직접 설치한 ‘행정 안내소’ 또한 설치되어 있었지만, 개설 초기라 아직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우왕좌왕하고 있는 아쉬운 모습이었다.
▶ 울산시에서 간절곶에 임시로 설치한 행정 안내소
◆ ‘속초마을’을 훨씬 뛰어넘는 간절곶의 인구밀도
속초를 처음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일이니 그렇게까지 붐비지는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간절곶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특대형 ‘소망우체통’과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즐거워하는 수많은 게이머들의 무리였다.
▶ 평일에도 여지없이 간절곶을 메우고 있는 인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충분히 예측할만한 현상이다. 강원도의 경우 속초시와 고성군은 물론 양양군, 양구군, 인제군 일부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서 플레이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인근의 인구 또한 몹시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속초시의 인구는 의외로 약 8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울산의 경우 정말로 한정된 좁은 지역에서만 가능한데다 인근 인구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곳이다 보니, 그야말로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의 집중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인근주민들은 어떨까. 불과 며칠 만에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인근 식당의 주인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사람들이 밀려들어서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에 적응하신 듯 “지금은 그래도 덜한 것이지, 주말에는 정말로 사람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요새 뭐 포켓몬인가를 잡는다고 이렇게 온다는데 나는 할 줄을 몰라서 아직 못해봤네”라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기도 했다.
◆ 미뤄지는 한국 출시, 서버 추가로 솟는 기대감
이렇게 반응이 뜨거운데 왜 한국 출시는 기약이 없을까. 구글 지도반출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많지만, 국토교통부는 공식적으로 “포켓몬 고는 GPS 기능을 활용한 위치기반 게임으로 정밀 지도데이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구글에서 요청한 지도반출과는 관련이 없다”라고 이러한 추측을 일축했다. 실제로 개발사의 전작인 인그레스(Ingress)게임 또한 한국에서 무리없이 서비스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그리고 현재 속초와 간절곶에서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문제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구글 지도 문제와 상관없이 충분히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추측된다.
▶ 포켓몬 고의 국가별 서버현황을 알려주는 비공식 사이트 화면. 포켓몬 고가 현재 서비스되고있는 36개국 이외(Others)항목에 South Korea가 추가 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 맺으며
짧은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려는 찰나, 꿈에 그리던 ‘피카츄’가 간절곶에 길에 나타났다. ‘피카츄 나왔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기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피카츄의 포획을 시도했지만 몇 번이나 포켓볼을 튕겨내고 거부하더니, 이내 피카츄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고,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정식 출시되어 당당히 서울에서 포켓몬을 할 수 있게 되는 날,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 다짐하며 다시 ‘간절곶마을’에서의 꿈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번 ‘울산행’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이뤄졌다. KTX 예매와 결제, 자동차 렌탈과 결제, 현장에서 증강 현실 게임 포켓몬 고까지, 한국은 여전히 IT 강국이고, 인프라를 본다면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앞서있다고 할 수 있다.
▶ 간절곶에 나타난 피카츄. 피카츄는 그 유명세만큼 결코 쉽게 포획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피카츄를 발견했다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포켓몬 포획을 도와주는 라즈베리 아이템을 사용할 것을 당부드린다.
그러나 포켓몬 고를 바라보는 정책적 시각은 정말 후진적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들겠다던 지, 뜬금없는 증강현실 콘텐츠 제작지원 발표는 포켓몬 고에 열광하는 유저들의 마음을 조금도 감동시키지 못했다. 더욱이 포켓몬 고와는 상관없는 구글 정밀지도 반출 문제까지 정책적 연계검토가 되는 것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게이머가 즐기고 열광하는 꿈은 꿈일 뿐이다. 정책은 현실에서 냉철하게 기본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우리 게이머들에게 국내 여름휴가지의 선택지가 두 곳으로 늘어났다. 아직도 포켓몬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번 주말에는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를 챙겨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떠나 보는 것이 어떨까? 간절곶의 풍광은 포켓몬 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글, 사진=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윤문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