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 봉중근·주키치 이후 처음으로 LG에 온 수준급 좌완
향후 두산 니퍼트, 넥센 밴헤켄과 같은 활약 기대
1선발 에이스가 돼야 한다.
끔찍한 7월을 보내고 있는 LG 트윈스가 좌완 데이비드 허프(32) 덕분에 웃었다. 허프는 지난 27일 잠실 롯데전에 선발 등판, 7이닝 1실점으로 팀의 7-1 승리를 이끌며 KBO리그 첫 선발승도 따냈다.
마치 김광현이나 양현종을 보는 것 같은 투구였다. 둘의 전매특허인 우타자 몸쪽으로 절묘하게 들어가는 150km 패스트볼로 상대 타자를 압도했다. 물론 강민호와 황재균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롯데 타선이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 구위와 제구를 모두 갖춘 투수임은 증명했다. 표본이 적지만, 허프는 지금까지 3경기 14⅔이닝 동안 볼넷 단 하나만 내주며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0.95를 기록 중이다.
허프의 KBO리그 첫 무대는 지난 14일 잠실 한화전 구원 등판이었다. 당시 허프는 1⅔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21일 고척 넥센전에 처음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4실점했다. 한화전은 워밍업의 성격이 강했으나, 어쨌든 한화 타자들에게 두 번 연속 장타를 허용하며 실점했다. 넥센전에선 아쉬운 구종선택으로 3회에만 3실점했다.
롯데전 승리 후 허프는 “계속 배우고 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타자들을 연구하고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생각한다”며 “한국 타자들은 선구안이 굉장히 좋고 힘도 있다. 처음에 상대했을 때 굉장히 놀랐다. 하지만 나 또한 계속 더 나아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허프와 2경기 연속 호흡을 맞춘 박재욱은 “지난번에 한 번 호흡을 맞춘 만큼, 오늘은 허프를 리드하는 게 더 쉬웠다. 지난 넥센전에선 구종선택에서 실수도 있었는데 오늘은 허프를 더 알고 있는 만큼, 실수가 적었다”며 “이렇게 공이 빠르면서 제구도 좋은 왼손투수와 호흡을 맞춘 것은 처음이다. 실투가 없기 때문에 볼넷이 적고, 블로킹 미스 같은 게 나올 확률도 낮다. 오늘 허프와 정말 편하게 경기를 했던 것 같다”고 웃었다.
LG는 지난 4년 동안 허프와 같은 좌완 선발투수를 원했다. 봉중근은 2012시즌부터 선발투수에서 불펜투수로 보직을 바꿨다. 2011시즌과 2012시즌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올렸던 벤자민 주키치는 2013시즌 급격한 하향세를 겪으면서 한국을 떠났다. 이렇게 좌완 에이스 가뭄이 시작됐다. 선발진이 우완 일색인 만큼, 외국인선수 시장에서 좌투수를 바라봤으나 적임자를 찾는 데 실패해왔다. 2014시즌 도중 영입한 에버렛 티포드는 KBO리그 타자들을 압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티포드는 부상으로 시즌을 완주하지도 못하고 LG와 이별했다. 임지섭 이영재 등 어린 좌투수들에게 선발 등판 기회를 줬으나 반전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3시즌 이후 선발진의 높이가 매년 낮아지고 있다. 급기야 올 시즌에는 리그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선발진 평균자책점 4.57로 이 부문 리그 2위였지만, 올해는 5.67로 리그 7위다. 최근 3년 동안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던 우규민이 오랫동안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고, 류제국은 기복이 심하다. 소사가 많은 이닝을 책임지고는 있으나, 소사를 1선발 에이스로 보기에는 힘들다. 로케이션이 완벽하지 않다보니 집중타를 맞으며 빅이닝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볼넷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트라이크존 한 가운데에 넣고 보는 투구가 상대에 간파 당했다.
때문에 LG로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허프가 롯데전과 같은 1선발 에이스급 투구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물론 허프 홀로 올 시즌 대반전을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야구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허프가 두산 니퍼트나 넥센 밴헤컨처럼 장기간 LG 선발진의 중심을 잡아준다면, LG는 보다 수월하게 선발진을 재건할 수 있다.
LG는 지금까지 빼어난 활약을 펼친 외국인선수와 꾸준히 재계약을 성사시켰다. 루이스 히메네즈와 소사가 2년 연속 LG 유니폼을 입고 있고, 리즈와 주키치도 3년을 LG에서 보냈다. 페타지니와 옥스프링도 2시즌 연속 LG에서 뛰었다. 외국인선수 입장에서도 서울 연고구단인 LG를 마다할 필요가 없다. 외국인선수들은 “서울 만큼 안전하면서 적응하기 편한 도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허프 또한 “서울이 정말 좋다. 멋진 도시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고 있다”며 “곧 와이프와 아들이 온다. 이들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잘 적응해 놓으려고 한다”고 서울 생활에 대한 만족과 기대를 전했다.
흔히 좌완 강속구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허프는 경력과 기량 모두에 있어 한국 구단이 영입할 수 있는 외국인투수 최상위 등급에 해당된다. 올해 히메네스가 LG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올라선 것처럼, 허프도 효자 외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