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SK 불펜 버팀목, 최정상급 맹활약
완벽한 재기 성공, 최고 효율 FA 우뚝
크게 주목받지는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는 선수가 있다. SK에서는 채병룡(34)이 대표적인 선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최고의 팀 공헌도로 위기의 SK 불펜을 온몸으로 지탱하고 있다.
채병룡은 올 시즌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겨울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은 선수 중 최고의 효율을 내고 있다. 22일까지 43경기에 나가 51⅓이닝을 던지며 2승6홀드 평균자책점 3.16의 호성적이다. 피안타율은 2할3푼6리로 뛰어나다. 5월 한때 다소 고전하기는 했지만 6월(평균자책점 3.21), 7월(2.92)에 힘을 내고 있다.
김용희 SK 감독은 지난해 뒤진 상황에서는 필승조를 내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1~2점차 뒤지더라도 승부를 걸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면 필승조를 내 버티기에 들어간다. 그때 가장 많이 호출되는 선수가 바로 채병룡이다. 기본적으로 구위가 좋을뿐더러, 1이닝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강철 체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은 덤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더 빛을 발한다. 채병룡의 올 시즌 유주자시 피안타율은 1할9푼7리에 불과하고, 득점권 상황에서의 피안타율은 1할7푼9리로 떨어진다. 승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 혹은 박빙의 상황에서 등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빼어난 안정감이다. 좌완 불펜이 부족한 SK의 현실에서 우완임에도 좌타자 상태 피안타율이 1할7푼7리에 불과한 채병룡은 ‘애니콜’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의존도는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리그 전체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타고투저가 극심한 KBO 리그에서 이만한 성적을 내는 셋업맨은 찾아보기 어렵다. 35경기 이상에 출전한 10개 구단 불펜 투수(마무리 제외) 중 정재훈(두산·2.66)을 제외하면 채병룡보다 나은 평균자책점을 가진 선수는 단 하나도 없다. 그나마 정재훈은 홀드 기록을 통해 큰 조명을 받고 있으니, 채병룡의 성적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화의 불펜투수들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이만한 효자가 없다.
22일 인천 넥센전에서도 역투를 펼치며 팀의 7-6 끝내기 승리를 이끌었다. 승리·홀드와 같은 공식 기록은 없었지만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4-6으로 뒤진 8회 마운드에 올라 2⅔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 역투로 도망가는 넥센의 발목을 완전히 낚아챘다. 그 결과 SK는 7회와 8회 1점씩을 추격해 연장전에 돌입할 수 있었고, 연장 11회 김성현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김용희 SK 감독은 경기 후 “불펜투수들이 승리의 최고 공신”이라고 했다. 채병룡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직 시즌이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주춤했던 채병룡의 건재를 대내외에 완전히 알리는 한 해가 되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2009년 말 수술을 받고 군 복무를 마친 채병룡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72경기(선발 34경기)에서 12승19패 평균자책점 6.40의 초라한 성적을 냈다. FA 시장에서 저평가됐던 이유였다. 그러나 올해는 다시 뛰는 각오로 착실히 몸을 만들었고,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다. 124억 원의 공백은 역설적으로 채병룡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