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 속담이 있다. 삼성 라이온즈 투수 권오준(36)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마운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10년 전 홀드 신기록을 세우는 등 리그 최고의 셋업맨으로 명성을 떨쳤던 전성기 만큼의 구위는 아니지만 관록투를 앞세워 맏형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안지만이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팀을 떠나게 된 가운데 빨간 불이 켜진 삼성 계투진. 권오준이 쾌투를 선보이며 존재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삼성은 21일 잠실 두산전서 6-3으로 앞선 8회 무사 1루 상황에서 백정현 대신 권오준을 출격시켰다. 두산 벤치는 류지혁 대신 대타 국해성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권오준은 국해성을 중견수 뜬공으로 유도하며 가볍게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곧이어 허경민(1루수 파울 플라이)과 김재호(1루수 플라이)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8회 투구를 마쳤다. 삼성은 두산을 6-3으로 꺾고 주중 3연전을 2승 1패로 마감했다.
그동안 권오준은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만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선수 본인에게도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접전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노련미 넘치는 투구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높였다.
이달 들어 5차례 마운드에 올라 평균 자책점 0.00을 기록하는 등 짠물 투구를 선보이고 있다. 권오준은 올 시즌을 앞두고 변화를 선택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쉽지 않은 선택. 승부 근성 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운 권오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투구 자세, 훈련 방법 등 싹 바꿨다. 드디어 그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 마운드는 세대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대 교체라는 게 무작정 젊은 선수들만 기용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본보기가 될 만한 베테랑 선수들이 해줘야 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지키는 야구의 토대를 마련했던 권오준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언젠가 권오준은 "나이만 먹었다고 고참이 아니라 고참으로서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고참이 되면 후배들을 다독거리고 잘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구를 잘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후배들이 믿고 따른다. 내가 먼저 잘 해야 한다. 작년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팀이 위기에 처했을때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이 해줘야 할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의 토대를 마련했던 권오준의 역할이 더욱 커진 요즘이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