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 ‘아이인더스카이’, 윤리를 앞서 발전한 기술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7.21 14: 05

백병전의 시대는 애저녁에 끝났다. 핵폭탄 하나를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나라 하나는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수많은 군인들을 적진으로 흩뿌렸던 소수의 위정자들은 이제 핵미사일의 발사 단추를 누를지 말지를 결정하게 됐다.
이렇다 보니 전쟁은 잠결에 귓전을 돌아다니는 모기 잡기 보다 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승-전-결로 봤을 때, 현대의 전쟁은 기에서 승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어렵다. ‘정의로운 전쟁’이 존재하지 않음과, 그래서 이 거대한 비극의 당위성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폭로된 탓이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이슬람 테러집단의 요주 수배자를 붙잡으려는 열강들의 분투를 그린다.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 ‘분투’라는 표현은 지나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결정을 내리는 수뇌부는 다과가 준비된 밀실에 앉아 입씨름을 벌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광경이 낯설지는 않다. 장군의 목을 베면 승기를 잡는 것과 다름 없었던 예전의 전쟁과는 달리 현대의 사령관들은 대개 안전한 밀실 안에서 지휘봉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시대는 또 한 번 변했다. 전쟁을 두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는 훨씬 복잡해졌고, 어느 한 쪽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 속 3개국 합동작전의 최종 목표는 케냐에 은신 중인 테러집단의 조직원을 ‘생포’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영국인과 미국인이 끼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실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합동사령부의 작전에 투입된 것은 드론이었다. 새나 곤충의 모양을 한 드론들이 ‘상공의 눈’이 되고, 헬파이어 미사일이 탑재된 공격용 드론이 타격을 담당한다. 조종자는 사람이지만, 행동하는 것은 기계다. 감시용 드론은 테러리스트의 얼굴을 확인하려 부단히 날아다니지만, 이에 실패하고 작전은 지연된다.
 
상황은 생포 대상을 사살하는 것이 불가피한 지점까지 치달았다. 가까스로 테러리스트들의 신원은 확보했지만, 이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제자리걸음을 반복해 온 전쟁의 오랜 딜레마가 다시 펼쳐진다. 시장 한 가운데 은신처에서 폭탄 조끼를 만드는 테러리스트들을 미사일로 제거한다면 근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다니는 민간인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폭탄 조끼를 입은 악당들이 대형 쇼핑몰로 향하는 것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본부와 현장 사이에서 최종 명령을 내리는 작전지휘관 파월 대령(헬렌 미렌 분)은 당장 테러 집단의 머리 위에 헬파이어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발사 버튼을 누르기 앞서 법·외교·정치계의 의견 합치가 필요했다. 이때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들은 윤리적 토론을 나누는 대신 계산기를 두드린다. 민간인 치사율과 피해 수치를 최소한으로 맞추려는 찰나, 한 소녀가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 바로 곁에서 빵을 팔기 시작한다. 소녀의 목숨이냐, 족히 기백명은 될 쇼핑객들의 목숨이냐. 문제는 단 한 줄로 압축됐지만, 정답으로 가는 길은 더욱 멀어졌다.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하면 새로운 상황이 이를 파기하는 형국이 반복되며 극 중 인물들도 보는 이들도 피로해진다. 그러나 긴장감의 끈은 끊어지지 않은 채 팽팽히 유지된다.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결정의 무게는 몹시도 무거웠던 탓이다.
미사일 투하 버튼에 손가락을 얹고 있는 와츠 중위(아론 폴 분)를 제외하고, 희생될 사람들의 목숨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 소녀든 쇼핑객이든 희생 이후의 결과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며,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인지에 촉을 세울 뿐이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세계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은 발달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윤리와 인간성은 외려 퇴화한 모양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첫 희생자는 언제나 진실이었고,  현대에도 이 명제는 유효했다. 모든 것을 보고 예측할 수 있게됐지만 진실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진실은 조작된다.
영화 ‘나우 유 씨미2’에는 “모든 것이 감시 받는 세상은 사각지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자가 지배한다”는 말이 나온다. 극 중 인물들이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은 전 세계를 감시할 수 있는 눈이고, 이들은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세상을 조종하려 한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이 같이 유별나게 확장된 시각은 희생자를 지키기 보다는 사후 처리를 돕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파놉티콘에 맞서는 시놉티콘이 등장했지만, 두 개념이 공존하는 세상은 감시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은 억압을 낳을 따름이었다. Alan Parsons Project의 ‘Eye in the sky’ 속 “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바보들을 다스리는 규칙을 만듭니다”라는 가사가 더 이상 사랑에 상처 입은 누군가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시절, ‘닥터스트레인지 러브’의 블랙 코미디가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 되고 만 때가 온 것이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를 전쟁으로 반복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감각의 확장으로 오히려 자유를 뺏기는고 마는 모순을 드론 전쟁으로 묘사하며 현실감을 획득했다. 3개국 합동 작전의 군사 책임자 벤슨 장군으로 분한 앨런 릭먼은 생전 마지막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극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14일 개봉해 전국 극장가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아이 인 더 스카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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