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세상을 떠난 고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은 대한민국 최고의 교타자다.
현역 시절 '타격의 달인'이라 불렸던 장효조 전 감독은 통산 4차례 타격왕에 등극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기록한 3년 연속 타격왕도 오직 장효조 전 감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 장효조 전 감독은 1985년 3할7푼3리를 시작으로 1986년 3할2푼9리, 1987년에는 3할8푼7리로 타격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8번이나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특히 통산 타율 3할3푼1리는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었다.
'장효조가 치지 않는 투수의 공은 볼이다'고 표현할 만큼 선구안은 단연 으뜸이었다. 양준혁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고교 시절 장효조 전 감독에게서 선구안을 키우는 요령을 배웠다. "공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무릎으로 봐야 한다"는 게 장효조 전 감독의 말이다. 훗날 양준혁은 '기록의 사나이'라 불리며 한국 야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오는 9월 7일은 장효조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기자는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 입구에 장효조 전 감독의 흉상 건립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도 야구 선수로는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생생한 모습을.
장삼이사(張三李四).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라는 말의 한자성어다. 갑남을녀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1기라고 밝힌 한 남성팬은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이듬해 중학교 한문 시험에 이 '장삼이사'가 시험 문제로 나왔다. 그런데 한 친구 녀석이 '장효조는 3번, 이만수는 4번'이라고 적었다. 그만큼 두 선수의 인기와 위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였다. 덕분에 그해 전국 모의고사 시험에 나온 이 문제를 거의 모든 전교생이 맞췄다"고 전했다.
우리는 실상 우리 스스로의 자랑스러운 모습에 너무 박한 면이 없지 않다. 장효조 전 감독은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자유롭게 밀어치고 당겨치는 유일한 타자다. 누군가는 '타격 천재'라고 일컫지만 경기 후 저녁을 먹고 나면 룸메이트에게 다른 방에 가서 자라고 한 뒤 침대를 한 구석으로 밀어놓고 방에서 팬티만 입고 서너 시간 이상 방망이를 휘둘렀던 야구계의 검객이자 악바리였다.
장효조 전 감독이 그동안 쌓았던 명성에 비해 뒷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이제라도 그에 걸맞는 예우를 갖춰야 할 시점이 됐다. 앞서 말했듯이 오는 9월 7일 5주기를 맞아 장효조 전 감독의 모습을 담은 흉상 건립을 제안하고자 한다. 전 롯데 투수 최동원 동상은 기념사업회를 통해 이미 건립된 데 비하면 늦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교타자답게 평범한 동상이 아닌 야구 선수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부여할 수 있는 3D 프린터(메탈 소재)로 세운다면 그 의미는 배가 될 것이다. 대구에는 장효조 전 감독의 3D 프린팅 동상을 제작할 수 있는 장비가 마련돼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장효조 전 감독의 영구결번도 함께 추진했으면 한다. 양준혁 해설위원과 같은 등번호(10번)지만 양준혁 해설위원도 충분히 동의해주리라 본다. 9월 7일 대구 kt전이 예정돼 있다. 이날 장효조 전 감독의 통산 타율에 맞춰 선착순 331명에게 고인의 모습을 담은 3D 프린터로 제작한 피규어를 나눠주고 이날 시구는 김시진 KBO 경기 감독관, 시타는 장효조 전 감독의 장남 장의태 씨, 이만수 전 SK 감독이 시포를 맡는 것도 좋은 팬서비스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비용, 구단의 동의 등 소수의 인물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 기회에 기념 사업회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조직이 앞장선다면 장효조 타격상 제정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재단까지 설립한다면 야구 꿈나무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떠난 지 5년이 다 됐지만 영원한 3할 타자의 마지막 타석은 아직 오지 않았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그를 향한 기억은 영원히 잠들지 않길 바란다. /삼성 담당 기자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