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좋은 사람 김용희, 나쁜 감독이 됐을 때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7.09 10: 52

자정을 향해 달려가던 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는 침묵과 긴장이 흘렀다. 한화전이 끝난 뒤 선수단 전체 미팅이 소집된 것이다. 김용희 SK 감독 재임 기간 중 경기 후 곧바로 선수단 미팅이 소집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감독이 선수단 미팅을 몇 번이나 소집했는가”라는 질문에 선수들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올해는 처음인 것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불길한 예감 그대로였다. 미팅 내용은 무거웠다. 김용희 감독은 선수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김 감독은 “프로로서 부끄러운 경기였다. 왜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를 하지 않나”라고 일갈했다. 선수들은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혼나는 시간이 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강도가 셌다. 김 감독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한 선수는 “감독님이 2군에 있을 때부터 봐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고 했다.
김 감독은 온화한 성품의 ‘좋은 사람’이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현역 시절 국내야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중 하나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주위에 적이 없다. 후배 감독들이나 해설위원들도 경기 시작 전 김 감독을 찾아 깍듯이 인사를 한다. 후배들이 말하는 미담은 수도 없다. 김경문 NC 감독은 “대학 시절 대회에 나가 있으면 용희형이 찾아와 ‘곰팡이 냄새 맡으며 방에 있으면 뭐하나’라면서 데리고 나가 밥도 사주시고 그랬다”고 까마득한 예전 일을 추억할 정도다.

[김태우의 SK랩북] 좋은 사람 김용희, 나쁜 감독이 됐을 때

선수단을 장악하는 감독의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김 감독은 이런 ‘인격’을 바탕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을 믿는다. 그리고 선수 생명을 보호하고 가치를 최대한 올릴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한다. 잘못된 것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진다는 생각이다. 보통 프로 선수들은 “나를 써주면 좋은 감독, 그렇지 않으면 나쁜 감독”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1·2군 선수단의 100% 장악은 불가능하다. 주전급 선수에 해당하는 30%만 잡고 가도 성공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굳이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이를 훌쩍 넘어간다. 인품의 힘이다.
그런 ‘좋은 사람’이 갑자기 선수들을 질책하는 ‘나쁜 감독’이 됐으니 선수단이 느끼는 위기감은 컸다. 당시 미팅에 동석했던 한 구단 관계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으셨던 분이 처음으로 화를 내셨으니, 선수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SK는 7일 한화전에서 본헤드 플레이·수비 실책·팀 배팅 실패가 겹치며 불안하게 경기를 한 끝에 결국 굴육의 8회(11실점)를 보내며 4-14로 역전패했다. 김 감독은 경기 결과보다도 이런 과정의 안일함을 지적한 것이다.
아마 그런 질책이 일상다반사였다면 선수들도 면역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선수단에 주는 충격은 컸다. “저 감독 또 그러네”라는 반응이 아닌, “오죽했으면 감독님이 그러시겠나”라는 말이 나왔다. 김 감독 주재의 미팅이 끝난 뒤, 이번에는 주장 김강민이 소집한 선수단 미팅이 따로 잡혔다. 선수들도 스스로 반성했다. 김강민부터 심기일전을 다짐했고, 이날 본헤드 플레이를 한 최정은 “내가 욕을 먹을 일을 했다. 인정한다”라며 선수단에 공개 사과했다.
그 다음 날인 8일 kt전. SK는 달라져 있었다. 선수들은 의욕적으로 훈련에 임했다. 경기 집중력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초반부터 상대 선발 트래비스 밴와트(kt)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수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적이었다. 전날 난타를 당했던 불펜 투수들도 6회부터 9회까지 차례로 전력투구하며 상대의 추격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패배의 단초를 제공한 최정과 고메즈는 각성의 홈런을 때린 끝에 8-3으로 완승했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의 경기 집중력이 좋았다”라고 흡족해 했다.
지난해 김 감독은 “너무 이기적이지 못해 탈”이라는 걱정 어린 시선을 받았다. 성적이 자신의 성과를 대변할 수밖에 없음에도 선수들의 편에서 인내를 발휘했다. 그 결과 혹사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무시 못할 성과를 얻었고 성적과는 별개로 선수단 분위기가 고조되는 무형적인 힘도 만들어냈다. 올 시즌 약해진 전력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5할 승률에서 버티고 있는 것 또한 결국 이 토대가 기본이 됐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김 감독은 시즌 전 사석에서 “올해는 선수들에게 나쁜 감독이 되겠다”라고 이야기했다. 당근과 채찍을 모두 들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경기 운영에 있어 결과가 좋지 않은 경기도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올해 전반적인 선수단·경기 운영에서 지난해보다는 다소 유연해지고 과감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7일 미팅은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 나쁜 감독의 면모까지 갖추면 의외의 방향에서 효과가 날 수도 있다. 7일 인천에서의 심야 미팅은 이를 증명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SK 선수들은 '좋은 사람'의 밑에서 외부적 스트레스 없이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결국 명장은 선수들이 만든다. 이제 그 '좋은 사람'을 '뛰어난 감독'으로 만드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