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아’ 조 루소가 말하는 마블과 영화 산업의 미래 [종합]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7.08 21: 26

바야흐로 통섭의 시대다. 뚜렷했던 학문과 학문 사이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지식은 융합돼 쓰인다. 이를테면 예술과 인문학이 결합되고, 기술을 통해 보다 나은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처럼. 엔터테인먼트계에서 목격되는 통섭의 첨병에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슈퍼 히어로물들이 존재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킨 조 루소 감독의 선택은 VR(Virtual Reality : 가상현실)이었다.
조 루소 감독은 8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진행된 콘텐츠 인사이트 세미나에서 형 안소니 루소 감독과 함께 했던 마블사와의 작업 뒷얘기들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마블과의 협업을 ‘스토리텔링 실험’이라고 정의하며, 각기 다른 내러티브를 지닌 영웅들이 MCU 안에서 하나로 묶이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실제로 루소 형제가 만든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 솔로 무비임에도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등이 등장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큰 그림’ 안에 무리 없이 녹아 들었다.

조 루소 감독은 ‘THE FUTURE OF ENTERTAINMENT’라는 제목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영화 업계가 인터넷과 모바일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역설했다. 그는 “영화 쪽은 미국에서 수십 년간 경쟁자가 없었다”며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집에서도 접근 가능한 콘텐츠의 품질이 굉장히 높아졌다”며 현재의 영화 산업 역시 생존을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타인이 겪은 영화적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영화관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영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돈과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보고 면대면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SNS 등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돼 있는 상황이다. 조 루소 감독은 공고했던 영화 산업의 아성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현재에도 마블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요인은 캐릭터에 공을 들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블이 성공하는 이유는 캐릭터에게 장기적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그 다음에는 이 캐릭터에게 어떤 일들이 발생할 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금의 영화 산업은 대중으로 하여금 SNS 상에서의 영화 관련 대화를 촉발해야 하며, 마블이 이를 가장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블의 주특기인 슈퍼 히어로물은 극 중 인물의 성격과 능력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그 덕에 보다 많은 이들의 대화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러면서 조 루소 감독은 TV 산업의 발전을 언급했다. 그는 온디맨드 방식으로 한국 시장에서까지 위용을 떨치고 있는 넷플릭스를 예로 들면서 “영화도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는 시간과 장소는 물론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용자들에게 콘텐츠를 공급하며 무섭게 성장해 왔다.
이처럼 TV 산업과 영화 산업이 시청자 혹은 관객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 모으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 루소 감독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미래적 기술 중 하나로 VR을 언급했다. 영화는 IMAX나 3D 등 다양한 변신을 해 왔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직 2차원의 평면에 투사된 영상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VR은 감상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비추며 무엇을 볼 지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조 루소 감독은 “VR의 미래는 나중에 우리의 미래와 어느 정도 밀접하게 닿아 있을 것”이라며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날 조 루소 감독과 함께 강연을 펼친 불릿의 토드 마커리스 대표 역시 영화계가 VR에 주목해야 함을 알렸다. 여태까지는 몰입성과 능동성을 동시에 끌어 올릴 수 있는 분야가 그 옛날 미국의 서부처럼 미개척지로 남아 있었는데, VR이 이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 조 루소 감독과 토드 마커리스 대표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이들의 말처럼 VR의 발전을 통해 언제든지 캡틴 아메리카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그리고 이 같은 상상력이 실현된다면, 과연 이는 사용자의 직접적 경험을 압도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그러나 일상과 혼동될 만큼 리얼한 가상현실의 세계가 대중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bestsurplus@osen.co.kr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영화 '유 미 앤 듀프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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