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신' 이상엽, 불쌍했던 박태하를 떠나보내며 [인터뷰]
OSEN 박진영 기자
발행 2016.07.07 16: 05

배우 이상엽은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떠나보내지 못한 박태하는 캐릭터에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어주고 있었다. 여전히 그 인물을 떠올리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애틋하고, 마음이 아린다고. 하지만 억지로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열심히 연기 했고, 또 치열하게 사랑했던 인물이니만큼 오랫동안 보듬어주고 싶은 생각. 이렇게 자신이 맡았던 캐릭터를, 그리고 작품을 사랑하는 배우가 있다니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상엽은 최근 종영된 KBS 2TV 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에서 명이(천정명 분)와 함께 보육원에서 자란 죽마고우 박태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채여경(정유미 분)을 대신해 살인죄로 복역한 후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 김길도(조재현 분)의 수하가 됐다. 명이를 죽일 것을 요구받지만, 결국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비운의 인물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촬영 기간 동안 박태하라는 인물이 되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이상엽에게 소감을 묻자 "감정적으러 딥한 캐릭터였고, 드라마 자체도 그랬다 보니 그게 아직 남아 있다. 열심히 비워내고 있는데 아직은 완벽히 그러지 못한 상태"라며 "태하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온다. '태하 왈칵'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내가(박태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 맞추려고만 하는 캐릭터라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박태하가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것 같다. 촬영하다가 울컥했던 적도 많았고, 지금도 그 대사들이 안 잊혀진다. 방송이 되지 않았던 대사도 있었는데 '내 냄새 기억해줘요'가 지금은 가장 많이 떠오른다."
박태하의 여러가지 상황이나 감정 중에서 이상엽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친구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고. 그는 "대사가 많이 없어서 리액션을 하고 느끼는 것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가 없었던 사람이 다른 이들을 위해 아버지가 되어 주려고 하는 모습, 그런 마음이 보여지도록 노력을 했다"라고 오랜 시간 고심한 끝에 진심을 다해 설명을 전했다.
"현실세계에 있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많이 했다. 김길도에게 부정 비슷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다. 보육원 친구들은 아버지처럼 챙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주위 사람들을 더 많이 챙기고, 또 친하게 지내려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연기를 하면서 상대를 더 많이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상황이 그렇게 변해가니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다."
평소에도 박태하의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또 극에 푹 빠져 있을 수 있게 시간이 나면 작품을 돌려보고 OST도 반복적으로 듣곤 했다던 이상엽은 "실제 박태하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제가 박태하라면 도망갔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번이나 제 인생을 버리는 게 된다. '내가 마지막이에요'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감독님이 너무 세다면서 없애셨다. 전 그 말이 참 슬펐다. 저는 실제로 그럴 자신이 없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라고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정유미 씨와는 촬영 신이 걸리면 늘 서로를 위로했다. '진짜 여경이 불쌍해'. '태하 불쌍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야 했던 드라마다. 안쓰럽게 보면서도 복수를 위해 달려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애처롭게 봤던 것 같다."
실제로는 밝은 성격인 이상엽의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반대의 느낌을 가진 출연작들이 꽤 많다. '파랑새의 집' 같은 경우엔 후반부 채수빈과 매회 눈물 바다를 만들어야 했고, '시그널'에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살인마가 되어야 했다. 이번 '국수의 신' 박태하까지, 갈수록 감정이나 분위기가 깊어지는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선호를 하는 것은 아닌데 제가 여태까지 밝은 것을 했고, 성격도 밝은 편이라서 아는 사람이 봤을 때는 의외성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시그널' 같은 경우엔 김원석 PD님이 '새로운 것을 줄게'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번 경우에도 보여지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선택을 하게 됐다. 어떤 감정도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텅 비어있도록 노력했다. 예전에는 연기를 하는 중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계산도 많이 하고. 그러다가 '청담동 살아요'를 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담는 것보다는 비워내며 연기를 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후유증이 있는 것 같고, 많이 힘든 부분이 있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지만 이상엽은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목소리에도 애틋한 마음이 가득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박태하라는 인물을 만나서 치열하고 고민하며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로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며 기분 좋은 마음을 꺼내놨다. 물론 여전히 박태하를 보는 듯 눈 속에는 슬픔이 뚝뚝 묻어났지만, 이것이 멋있는 건 이 배우가 가진 특별한 진정성, 그리고 뜨거운 연기 열정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 자신을 잘 간수할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연기를 하면서 '저거 이상엽이네'라는 말은 안 듣고 싶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내가 보이지 않는 그런 배우가 되겠다."  /parkjy@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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