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특별수사’ 흥행, ‘베테랑’ ‘검사외전’과 같은 듯 다른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6.17 16: 17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권종관 감독, 이하 ‘특별수사’)가 개봉 첫날 ‘아가씨’를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극장가의 흥행대결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다. 외화 ‘워크래프트’가 ‘아가씨’를 밀어냈고, 같은 날 개봉됐던 ‘정글북’이 ‘워크래프트’를 밀어냈지만, ‘아가씨’가 뒷심을 발휘하며 1위 고지를 탈환하자마자 16일 개봉된 ‘특별수사’에게 밀려난 것. ‘특별수사’의 개봉일 스코어는 7만5636명으로 요즘 흥행작의 개봉일 스코어 10~20만 명 수준에 뒤져 흥행폭발 여부는 주말을 지켜봐야 하지만 눈여겨볼 필요는 존재한다. 
‘곡성’과 ‘아가씨’는 화제성과 흥행력 만큼이나 논란을 부수적으로 달고 다녔다. 호불호가 엇갈린 것. 하지만 ‘특별수사’는 ‘모처럼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봐도 좋을 만큼 통쾌하다’는 호평 일색이다. 불편한 점이 거의 없고 스트레스가 풀리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을’이 ‘갑’의 부조리를 속 시원하게 들춰냄으로써 권선징악을 하는 플롯의 기본 축은 ‘베테랑’ ‘검사외전’과 똑같지만 디테일과 메시지는 좀 다르다.

경찰 할아버지, 상습전과자 아버지를 둔 필재(김명민)는 그 트라우마로 인한 범죄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한때 모범 경찰로 열심히 일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옷을 벗고 현재 변호사 사무실의사무장 명함을 들고 다니는데 사실은 돈 잘 버는 사건 브로커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아직도 그가 정의감에 불타는 경찰인 줄 알고 있는 인천의 재벌 대해제철 오너의 며느리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인 순태(김상호)가 한 통의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 평소 같으면 이처럼 돈 안 되는 사건에 얼씬도 안 했을 필재지만 순간 예전의 호승심이 되살아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불가능한 싸움에 도전한다.
영화는 필재와 대해제철 사모님(김영애)의 불꽃 튀는 대결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주며 ‘대체 작가는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까’라는 궁금증을 관객에게 최대의 재미로 던진다. 여기에 순태의 어린 딸 동현(김향기)이 필재의 무모한 도전에 당위성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열혈검사 출신으로 지금은 필재의 오너지만 사실 그를 모시는 변호사 판수(성동일)가 코미디를, 사모님의 충견인 특수부대 출신 킬러 박 소장(김뢰하)이 액션을 각각 담당해 세밀한 재미를 완성한다.
특히 김명민과 김영애의 연기대결은 ‘베테랑’의 황정민 대 유아인, ‘검사외전’의 황정민 대 강동원 혹은 황정민 대 이성민의 숨 막히는 긴장감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스릴러를 기본으로 코미디와 탄탄한 드라마를 앞세운다. 이미 진범을 쉬운 암시로 밝혀놓다시피 하고 시작되므로 미스터리는 다소 배제됐지만 스릴러적 장치와 인간군상들을 둘러싼 드라마의 다양성과 메시지는 무척 탄탄하고 묵직하다.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부장검사까지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모님과 일개 전직경찰의 대결의 결과는 명약관화하고 그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구성은 이미 식상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 과정이 기존 영화와 다르고 그만큼 시원한 배설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 봐도 특정인물을 연상케 하는 사모님의 캐릭터와 그녀가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무너지는 클라이맥스는 경제와 인간관계 그리고 미래에 대해 동맥경화에 걸린 서민들의 치료제로 작용한다.
현재 서민들은 이념과 취향을 떠나 보수진영이건 진보진영이건 배신감과 소화불량에 허덕인다. 보수적인 여당 취양의 국민은 이른바 ‘친박’과 ‘비박’으로 나뉜 계파싸움에 실망하고 그건 더불어민주장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야당을 원해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진영 역시 요즘 리베이트 수수 의혹에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경제는 굳이 일일이 열거하는 게 지겨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고, 서민들은 귀가 따갑게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어려움을 피부로 겪고 있다.
재벌가의 ‘갑질 논란’만 하더라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데다 최근엔 인기 연예인의 성폭행 혐의 고소건 등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의 만행 혹은 그런 혐의가 만연해 이래저래 상대적 박탈감과 낭패감 등 부정적인 실망감과 좌절감만 팽배할 따름이다.
필재는 어쩌면 전형적인 한국의 중년남자일지도 모른다. 홀로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설정부터 심상치 않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앞뒤정황상 할아버지는 청렴결백한 경찰로 사느라 돈을 벌지 못했고, 할머니는 그런 남편에게 답답함을 느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아버지가 범죄자가 된 것은 어쩌면 사회적 불만의 어긋난 폭발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아버지도 요절했고, 그런 아버지를 경멸하고 증오한 필재는 경찰이 됐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의롭고 성실한 ‘민중의 지팡이’로 사는 것은 녹록치 않았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았다.
그렇게 환경에 해고된 그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아닌 생활형 남자가 되고자 사기꾼이 됐다. 40대의 나이에 아직 혼자인 것 역시 지금까지 연애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못 벌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돈만 밝히는 사기꾼이 됐지만 여중생 동현을 보고 생각이 달라진다. 자신과 순태가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이라면 이 소녀는 대한민국의 미래다. 만약 자신이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어 동현을 외면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재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서민은 사기를 치지 않으면 그나마 배불리 먹고 살기 힘들어지거나 그보다 더 심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게 ‘베테랑’이나 ‘검사외전’과 비슷한 구도와 주제를 가졌지만 차별화되는 점이다.
‘베테랑’ 역시 한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서 출발한다. 그 노동자 역시 어린 자식이 있지만 동현보다 더 어려 그의 캐릭터와 사연은 부각되지 못했다.
‘검사외전’은 정치판에 뛰어들려는 비리 검사 우종길(이성민)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가 그의 음모에 의해 살인범 누명을 쓴 열혈검사 변재욱(황정민)의 누명을 벗기 위한 몸부림과 그를 통한 복수극이 기둥줄거리지만 전개되고 나면 살짝 늦게 합류하는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의 원맨쇼 오락물이다. 물론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재욱의 통렬한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클라이맥스의 재미가 강한 법정드라마도 있지만 역시 ‘특별수사’의 인간미는 많이 부족하다. ‘특별수사’가 갖춘 변별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김명민의 연기력은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전작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조선명탐정’ 시리즈나 ‘개과천선’ ‘드라마의 제왕’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필재는 많이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김명민이 특이하게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속에 진지함을 보유했고, 진실과 거짓의 양날의 검을 쥔 캐릭터를 구축한 명민한 배우이기 때문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특별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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