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영화야, 놀자’, 드라마의 청출어람 혹은 도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6.07 07: 14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는 한 카페에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라는 3분짜리 동영상물을 상영하니 이게 세계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다. 이전에 에디슨의 영화도 있었지만 한 사람만 볼 수밖에 없어 ‘최초’의 지위는 못 받았다. 일각에선 뤼미에르 형제보다 1달여 전 독일의 스클라다노브스키 형제가 베를린에서 보여 준 쇼트들을 최초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를 기점으로 영화산업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1937년 개국한 영국의 BBC가 세계 최초의 방송국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드라마는 1956년 ‘천국의 문’으로 기록된다. 이상에서 보듯 영화는 분명히 드라마의 스승이자 아버지다.
기성세대에겐 아직도 ‘극장구경 가자’는 권유형 언어가 익숙하듯이 영화는 드라마완 다른 느낌으로 대중에게 소비된다. 별다른 문화 레저 콘텐츠가 없던 20세기 한국 사람에게 영화는 꽤 수준 높은 여가나 레저의 첫째 항목이었다. 더불어 데이트부터 사회적 비즈니스까지 다양한 목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적인 향유였다. 그래서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영화 관람은 데이트의 시작이자 진행형인 필수코스고, 친구들끼리의 교감이며, 가족끼리의 대중 문화적 동질감 공유를 통한 공동체 형성의 확인이다. 멀티플렉스가 된 이후는 ‘극장구경 가자’는 말이 오히려 더 어울릴 정도다.

유럽이나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영화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무료에 접근성이 쉽고, 자유와 여유가 보장된 TV 드라마와 달리 동반관람자를 정하고 그들과 선택하며 이동해서 돈을 지불하고 관람한 뒤엔 술 혹은 식사 자리에서 감상평을 나누는 뒤풀이시간까지 이어진다는 영화의 불변의 변별성이 보장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탤런트들이 스타덤에 올라섰다 하면 그토록 영화의 주인공을 맡고 싶어 하고 영화에서 자리를 잡으면 웬만해선 드라마로 안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으로 여기는 것이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에선 ‘무비 스타’라고 한다.
청출어람이란 중국의 고사성어가 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을 때 말한다. 일취월장보다 훨씬 더 강한 뉘앙스고,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 즉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상전벽해보다 더 긍정적인 어감이다. 요즘 드라마가 그렇다.
지난달 31일 종영된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방송 내내 박신양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화제몰이와 시청률 안정세를 지켜왔지만 배우 한 명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요즘 추세를 반영하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영화와 달리 집에서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채널이 무궁무진하며, 언제라도 컴퓨터나 모바일로 재생시킬 수 있는 TV 드라마가 내내 10% 중후반대의 시청률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건 배우 한 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 영화는 감독 놀음,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고 했지만 드라마에서 연출자의 역할이 작가와 동등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역시 연출자의 능력이 상당히 돋보이는데 동영상의 3차원적 구성으로 2차원의 사진을 뛰어넘는 드라마가 오히려 스톱모션으로 호흡을 조절한 점 등은 매우 영리한 연출력을 느끼게 했다.
[photo2] '국수의 신' 스틸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 최고 점수로 검사가 된 조들호는 최고의 로펌회사 후계자 변호사 장해경과 결혼하고 매 사건마다 승소하는 가운데 어느덧 권력과 집단이기주의적 조직의 입맛에 길들여지다가 갑자기 암초에 걸리는 바람에 옷을 벗고 3년간 방황한 끝에 깨달은 바 있어 동네의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봉사하는 인권변호사로 컴백한다.
그는 자신이 모셨던 신영일 서울중앙지검장과 목숨을 건 한판승부를 벌인 끝에 결국 검찰총장 청문회 자리에 선 그를 낙마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후배 검사인 신지욱으로 하여금 그를 수사하게 만든다.
일부 조연배우들(악덕 변호사, 재벌 2세)의 어설픈 연기력이 중간에 흐름을 끊긴 하지만 그건 살아있는 각 주연 캐릭터들의 힘과 주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그리고 힘의 배분을 모든 배우에게 골고루 하고,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잇거나 끊을 줄 아는 연출력이 충분히 보완한다.
이런 스토리와 연출은 최근 드라마에서 꽤 자주 등장한다. 2013년 방영된 SBS ‘황금의 제국’은 대표적인 재벌가를 무대로 한 드라마였는데 그 완성도와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는 영화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전쟁 중에 고아가 된 이후 유일한 혈육인 동생 최동진과 함께 전후의 어지러운 정국에서 재벌기업 성진그룹을 키운 최동성의 가족과 성진의 모습은 국내 유명 재벌그룹을 매우 닮았다. 만년 2인자인 동진은 때론 형에게 충성하고, 때론 뒤에서 음모를 꾸미며 1인자가 되기 위애 고군분투한다. 예전에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우애를 나눴던 형제는 없고 오로지 부와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동진의 아들 민재는 동성의 자식들과 달리 왕권계승 서열에서 사실상 소외돼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정권을 잡기 위해 사촌형제인 동성의 아들과 딸들의 ‘어미 아비도 없고, 형제도 없는’ 왕권다툼에 뛰어들어 권모술수를 펼치며 제로섬 게임을 펼치는데 이들과 핏줄 하나 없는 적수공권의 밑바닥 출신에서 꽤 유망한 사업가로 성장한 장태주가 가세하면서 스토리는 더욱 쫄깃하고 쫀쫀해진다.
이 드라마는 야외 로케이션이나 거대 스튜디오 촬영이 거의 없었다. 성진그룹 사무실이나 그 가족들의 집 아니면 태주의 사무실이 주요무대다. 비주얼보다 스토리가 가진 힘과 캐릭터가 주는 긴장감, 그리고 한두 가지로 압축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하게 엮어놓은 열린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누워서 간식 먹으며 보는 늦은 밤의 미니시리즈가 아닌, 손의 땀을 느낄 정도로 몰입해서 보는 심야극장 영화로 만들었다.
요즘은 KBS2 수목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이 그렇다. 궁중 국수를 소재로 우리 선조들의 요리에 대한 지혜와 요즘 사람들의 장인정신을 섞어 ‘먹방’과 ‘쿡방’의 인기에 편승한 트렌디한 드라마를 예상했던 시청자들이라면 실망했겠지만 제목과는 달리 안방극장에서 시도하기 힘든 누아르적 요소로 버무렸다는 점에선 일단 실험정신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공포영화에서 사운드는 오히려 무서운 비주얼보다 더 중요한 장치다. 아무리 공포를 유발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하더라도 음향효과가 어설프면 현실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영화에서 사운드는 마지막 방점이다.
[photo3] '아가씨' 스틸
하지만 드라마는 그동안 사운드에는 과감한 투자를 할 생각도 없이 그저 주제곡으로 드라마의 화제성을 높이거나 부가수익을 창출하는 데에만 눈이 벌갰었다. 그런데 ‘국수의 신’은 다르다. 주제곡이 아닌 배경음악에 아낌없이 노력을 쏟아 부은 정성이 물씬 두드러진다.
시청하는 내내 스토리가 주인공인지, 주인공이 스토리를 완성하는지, 아니면 배경음악이 모든 효과를 지배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사운드의 향연이 조연의 영역을 벗어나 당당히 전면에 배치된다.
시종일관 어두운 조명과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각 캐릭터들의 이합집산은 팀 버튼의 ‘배트맨’을, 저마다 간직한 주인공들의 트라우마들은 마치 ‘왓치맨’이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들의 그런 설정을 각각 연상케 한다.
드라마들은 외치는 듯하다. ‘영화야, 놀자!’라고. 아직 영화가 유리하긴 하다. ‘곡성’이나 ‘아가씨’에서 보듯 19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이거나 그와 유사한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의 영화는 드라마로선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과 장면 그리고 장르에 있어선 표현의 자유가 넓고 깊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을 받은 ‘곡성’이 만약 드라마였다면 안방에서 방영될 수 있었을까? 드라마에선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와 메시지와 철학이다.
하지만 멜로 혹은 로맨틱코미디의 연이은 참패와 ‘해어화’ 같은 이도저도 아닌 영화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드라마로 방영돼도 손색없을 영화는 필패다. 그건 흥행이 보장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영화적 특징과 강점이 결여됐다는, 정체성의 애매모호함에 대한 살벌한 경고이자 최고장이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법칙은 결코 아름답진 않다. 채널과 플랫폼의 팽창으로 인해 드라마가 편수와 종류가 다양해진 산업적 논리는 일각의 질의 저하를 가져왔다. 그러나 영화에 필적할 만한 눈부신 성장도 한편에선 이룩했다는 성과는 시청자에게 선택권의 강화를 통한 ‘권리 장전’을 선사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조들호' '국수의 신' '아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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