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MV]'특별수사' 김명민, '베테랑' '검사외전'과 다르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6.06 10: 2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영화는 누군가의 경험이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제임스 캐머런의 ‘터미네이터’가 대표적인데 이런 가상은 얼마 안 가 현실화된다거나 기시감을 줌으로써 왜 관객이 영화에 열광하는지 증명한다. 우리는 이세돌-알파고의 바둑 대결과 연계해 이들 영화에서 가깝게는 16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부터 멀게는 1세기의 요한 묵시록을 봤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완성도나 예술성을 차치하고라도 영화가 드라마와 달라야 하고 사실상 다른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상업영화의 정도를 보여주는 점에선 훌륭하다. 흥행과 평가에서 절름발이거나 아예 앉은뱅이가 되는 수많은 ‘장애 영화’들에게 ‘왜 이렇게 못 하니?’라고 준엄한 훈계를 하는, 하품 나오는 흔한 소재로 가슴 먹먹한 공감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교과서적 웰메이드필름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의! 이 영화를 ‘베테랑’이나 ‘검사외전’ 같은 철저한 상업적 공식의 틀에 잘 맞춘 선과 악, 갑과 을의 대결이라고 예단하고 황정민 강동원보다 김명민 김상호가 뭐가 낫겠냐는 천박하고 유치한, 스타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잣대로 들이댄다면 당신은 드라마와 다른 영화만의 매력을 만끽할 자격이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120분이란 의도된 길지도 짧지도 않은 러닝타임 내내 하품을 하거나 팝콘 봉지를 뜯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대는 인천. 어수선한 사건 현장을 말끔한 수트 정장의 필재(김명민)가 주름잡으며 수사를 주도한다. ‘어허, 현장의 증거물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안 되지’라며 어리숙한 신입형사를 가르치는가 하더니 어느새 수갑을 찬 피의자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넨다. 알고 보니 그는 형사가 아니라 전직경찰, 현직 법무사 사무장이다.
모범경찰 할아버지, 상습 전과자 아버지라는 비대칭적 가족력을 지닌 그는 그나마 자신이 경찰시험에 합격하는 날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주신(?) 아버지에 감사하며 열심히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섰던 열혈경찰이었지만 워낙 다혈질이었던 탓에 ‘마누라’(파트너 형사) 양용수(박혁권)와의 불화로 인해 일찍 옷을 벗었다.
현직 때 선배였던 현장의 수사반장 항주(박수영)가 ‘너 이런 데 왜 이런 차를 몰고 와 위화감을 조성하냐’고 자신의 BMW 승용차를 지적하자 ‘애들 자극받아서 빨리 옷 벗고 돈 벌게 만들려고’라고 대놓고 경찰의 현실을 조롱한다.
그는 철저한 자본주의 신봉자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 돈이 안 되면 뭐든지 안 한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 판수(성동일)의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사실상 사건 브로커다. 피의자에게 접근해 형량을 낮춰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수임료의 30%를 떼먹는 상습 변호사법 위반자다.
홀로 여중생 딸 동현(김향기)과 사는 영업용 택시 운전기사 순태(김상호)는 전과자이지만 오로지 동현의 행복을 위해 착하게 살아간다. 오늘도 다름없이 동현을 등교시키려던 순간 경찰에 체포된다. 인천 대표기업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피의자 신분인 것. 동현에게 금세 나오겠다고 자신하던 순태의 혐의는 점점 굳어진다. 그러자 그는 신문기사를 통해 접한 모범경찰 필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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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에 지금까지 돈벌레였던 필재가 갑자기 변하는 설정은 설득력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그건 필재라는 한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이 점차 설명한다. 그는 유일한 식구인 치매환자 할아버지(신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싸가지’ 없는 손자이지만 퇴근 때 할아버지의 간식을 챙기는 정 많은 효자다. 할아버지는 모범경찰, 아버지는 전과자라는 설정이 필재의 이중성 혹은 트라우마에 대한 보충설명을 생략하게 만든다.
필재는 동현과 대화를 나눈 끝에 순태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줄 결정적인 증인을 확보한다. 그는 동현의 급우 소년. 하지만 소년은 증언대에 설 것을 거부하고, 필재는 동현에게 그의 설득을 부탁한다. 그리고 용수가 사건에 깊게 관여된 것을 파악하고 그를 만나 딜을 한다.
조건이 수락되자 필재는 더 이상 순태를 위해 손해 볼 이유가 없어진다. 친구가 증언대에 서게끔 설득했다고 나타난 동현에게 이제 사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다. 어린 동현은 어른들의 치졸한 세계에 다시 한 번 실망하고 상처 받는다.
한숨 돌린 필재에게 갑자기 괴한들이 나타나 폭행을 가하더니 경고한 뒤 사라진다. 직감적으로 용수가 자신과의 약속을 깨뜨리고 정면도전했다고 느끼지만 이내 그가 살해된 소식을 듣고는 전문적인 킬러들이 개입됐고 그 배후가 인천을 지배하는 대해재벌의 실질적인 주인 사모님(김영애)이라는 정황까지 추적해간다.
‘LA 컨피덴셜’로 대표되는 범죄수사물은 유머와 서스펜스, 불안과 카타르시스, 분노와 이완이 공존하는 게 공식이다. 그건 시나리오와 연출을 배우들이 몇 배 강화해야 하고 그만큼 캐릭터가 확실할 때 가능하다.
그런 형식에 대비해 각 인물들의 성향은 매우 명징하고 버라이어티하며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 성동일 신구 이한위는 유머 담당이다. 할아버지는 이미 형사를 그만둔 필재가 멀쑥한 정장 차림으로 퇴근하자 ‘수사하는데 왠 가다마이(정장)냐’고 묻는다.
엉뚱하게도 사모님의 갤러리 개관 기념식에 초대받아 필재 판수와 동석한 할아버지는 게걸스럽게 만두-뷔페에서 하필 만두에 집착하는 이유는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인천이기에-를 먹는 판수를 보며 ‘저게 검사 출신 변호사냐? 시골 개장수 같다’고 핀잔을 준다. 그러자 판수는 표정이 싹 변하며 ‘그래요, 우리 아버지 개장수였어요’라고 울먹인다. 필재와 할아버지를 웃기려 한 이 거짓말은 동시에 관객을 웃기는 재치다.
영화는 필재와 동현의 두 가지 시선에서 진행된다. 필재는 ‘빵잽이(상습 전과자)’ 아버지를 경멸해 경찰이 됐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신념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 죄를 미워하는지 죄인을 증오하는지 모를 정도로 법질서 확립보단 범인에 대한 경멸과 체포에 대한 집착에 얽매인 그는 선과 악의 경계, 법과 정의의 영역을 묻는다.
그건 여사님의 하수인인 부장검사(최병모)나 킬러 두목 박 소장(김뢰하)도 마찬가지다. 여사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박 소장은 그러나 그녀와의 대화를 일일이 녹취해두는 배수진을 친다. 사법시험 준비 때부터 여사님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와 승승장구한 끝에 부장검사 자리에까지 오른 장 부장은 ‘이제 박 소장 따위는 버리고 나만 믿으라’고 건방지게 가르쳤다가 ‘나한테 올 땐 운전사 대동하지 말고 네가 운전하고 와’라는 핀잔만 듣는다.
여기서 박 소장과 장 부장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생생한 날것이다. 특전사 출신의 박 소장은 국가안보를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군생활을 했지만 사회에 나와선 딱히 할 일이 없고, 사회에 적응할 능력도 부족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유치권 행사 중인 ‘죽은’ 건물을 접수해 아지트로 삼고 여기서 잔인한 살인을 일삼는다. 이 사회는 자신을 희생한 애국자를 위해 뭘 하는가, 그리고 진정한 애국이란 뭣인가, 사회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뭣이 정녕 이 사회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 등을 묻는다.
장 부장은 고위급 공무원일지도 대기업 임원일 수도 있다. 오로지 공부 잘 하는 것 외엔 살아남을 수 없는 ‘흙수저’들은 절대 자본을 이길 수 없다. MBC 드라마 ‘몬스터’의 여당 대표 황재만(이덕화)은 군납비리 청문회를 앞두고 담당 국회의원들을 불러내 술자리를 마련한 뒤 비리의 주역인 재벌 회장을 불러 후원을 약속한다. 철저한 비리 커넥션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 숱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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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부장 역시 황재만과 다를 바 없지만 주체성만은 지키려 한다. 박 소장은 개 노릇을 하지만 주인이 자신을 버릴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배수진을 친다. 사회의 지도층은 최소한의 정체성을, 빈민층은 극단의 생존본능을 견지하고자 한다는 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고 차별성이다.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영화의 추진력이 많이 떨어지고 긴장감이 현저하게 느슨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건 장르적 특성이 가진 한계일 뿐 곳곳에 포진된 메시지와 대사의 쫀쫀함이 충분히 보완해준다. 여기서 유일한 아이 동현은 중년 혹은 노년의 주인공들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존재감을 빛낸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편지를 보내거나 면회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의 살인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된 피해자의 향수를 자신이 탐했기 때문이다. 이건 가난이 얼마나 처참한가를 얘기하기보단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웅변한다.
그녀는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는 필재에게 “아버지 수감 후 내가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아세요? 그건 아버지 없는 삶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것”이라고 울부짖는다. 그녀는 이제는 매우 당연해진 한 가정 아동, 1인가구의 대명사다. 한 가정은 결손가정이란 표현이 부적절하다며 바뀐 용어지만 ‘정상’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그렇다고 비정상이라고 얘기하면 그건 그들에 대한 결례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1인가구를 이루는 사람은 외롭다. 그게 외롭고 괴로워야 정상인데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지고 그게 버릇이 돼 ‘혼밥’ ‘혼술’이 당연해지는 추세다. 그걸 중학생이란 어린 나이에 일찍 배우게 된 동현은 벌써부터 그게 다행스러운 게 아니라 두렵다는 걸 아는 ‘애어른’이 됐다. 타락한 천사 필재의 시선보다 타협한 천사 동현이 더 안타깝거나 무서운 영화다. 이런 영화는 시리즈로 나와야 한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특별수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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