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엑스맨:아포칼립스’ 알고보니 더 재밌는 비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6.06 09: 03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엑스맨: 아포칼립스’(이하 ‘아포칼립스’)가 ‘곡성’의 인기 독주에 제동을 걸며 흥행에 순항 중이다. 내달 1일 ‘아가씨’, 9일 ‘정글북’과 ‘워 크래프트’, 16일 ‘닌자 터틀: 어둠의 히어로’ 등이 있긴 하지만 강력한 장애물인 ‘아가씨’와 ‘정글북’이 워낙 장르가 다른 터라 ‘엑스맨’ 시리즈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431만 관객동원기록 경신도 노려봄직하다.
‘아포칼립스’에 대해선 재미있다는 호평만큼이나 시리즈 마니아 중의 실망 토로도 있긴 하지만 일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능가하는 초반 흥행세로 보나, 문제작 ‘곡성’의 바람을 제압한 점만 놓고 볼 땐 국내에서의 최종 스코어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시나리오 상의 약간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전체를 하나로 묶어 정돈시킨 ‘노트 정리’ 형태로서 비교적 완성도를 갖춘 데다 다른 블록버스터의 메시지까지 비교적 방대한 철학을 담고자 노력한 수고를 인정받은 데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원전 3500년 이집트를 다스리던 절대 신이자 왕인 아문 라(태양신)가 불의에 의해 긴 잠에 빠졌다가 현대에 깨어나 혼란스러워진 현실에 분노, 스스로 아포칼립스란 이름으로 바꾼 뒤 높은 능력치의 4명의 뮤턴트를 끌어 모아 포 호스맨으로 임명하고 세상을 멸망한 뒤 새로운 세계로 꾸미겠다고 전쟁을 선포한다.
찰스 자비에는 자비에 영재학교의 뮤턴트들과 힘을 합쳐 이들과 맞서지만 신으로 불렸을 정도로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아포칼립스와 그에 의해 능력치가 급상승한 포 호스맨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진정한 정의를 깨달은 일부 포 호스맨의 도움으로 아포칼립스를 제압한단 게 기둥줄거리다.
그저 흔하디흔한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의 기승전결이다.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은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143분이 후딱 지나가고 비교적 1만 원으로 잘 즐겼다는 기분을 느낄 법하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비교하면 ‘걸작’이다. ‘엑스맨’ 시리즈 전편을 꿰고 있다면 고소한 다이제스트 식 과자를 맛보는 즐거움이다. 소소한 궁금증의 해소도 덤이다.
사실상 주인공인 아포칼립스의 존재는 오리지널 시리즈에도 있었다. 1~3편에 등장한 진 그레이다. 엑스맨의 능력치는 1등급부터 시작되는데 선과 악의 지도자인 찰스와 매그니토가 3등급 혹은 그 이상이다. 울버린 등은 2등급 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진은 5등급 혹은 그 이상이다. 세레브로 안에서 모든 뮤턴트를 찾아내고 죽일 수도 있는 염력을 지닌, 그래서 매그니토가 항상 그의 염력을 차단하기 위해 특수 헬멧을 착용해야 하는 원인인 찰스보다 얼마나 막강한 능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2편에서 댐의 붕괴 때 엑스맨들을 살리고 죽은 줄 알았던 진은 그 염력으로 살아나 3편에선 더욱 무서운 ‘여신’이 돼 결국 찰스를 먼지로 만든다. 매그니토는 그녀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면서 ‘너는 여신인데 찰스는 인간으로 만들려 했다’고 말한다. 물론 최종적으로 매그니토를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 하나의 현대의 아포칼립스는 3편의 의문의 소년이다. 그는 모든 뮤턴트의 초능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나약한 소년이지만 그 어떤 뮤턴트도 그 앞에선 평범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거대 제약회사는 그를 이용해 뮤턴트 치료제 큐어를 대량생산하고 모든 뮤턴트를 인간으로 만들려 한다.
진과 소년은 어쩌면 아포칼립스의 후손이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DNA를 타고난 탁월한 신적 능력치의 뮤턴트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매그니토는 자신은 단지 금속만 마음대로 다룰 수 있지만 진은 세상의 모든 것을 그럴 수 있다고 두려워 한다. 아포칼립스는 모든 뮤턴트의 왕이고 그들의 능력을 몇 등급 진전시킨다. 그것은 곧 통치능력인데 바로 소년이 그런 능력에 있어선 단연 최고다. 진조차도 그 앞에선 신이 아닌 인간이니.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상업성의 논리가 모든 프로모션에 개입하는 데가 할리우드면서도 각 영화들은 교묘하게 자본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 그리고 미국 정부의 독주에 조소를 보내는 아이러니를 서슴지 않는다. ‘엑스맨’이 그런 정치적인 복선을 깔고 있다.
3편에서 뮤턴트로서 유일하게 장관직에 오른 비스트가 큐어 사용에 강력하게 반대하자 그를 고용한 대통령은 “뮤턴트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마비시킬 정도로 위태롭다”고 억지를 부린다.
큐어에 대해선 엑스맨 조직 내에서도 찬반양론의 갈등이 인다. 접촉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의 로그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키스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큐어 처방에 호의적이지만 스톰은 “우린 병자가 아니다”고 강변한다.
제약회사 대표 워렌 2세는 뉴스에서 “고통 받는 뮤턴트들을 구원해주겠다”고 큐어의 당위성을 외친다. 그는 앤젤인 아들 워렌 3세에게 “사람답게 살아야지”라며 큐어를 투약하려 하고, 그 순간 앤젤은 “그건 아버지가 원하는 삶”이라고 외친 뒤 날개를 펼쳐 자유를 찾아 창공을 난다.
큐어는 정부와 재벌제약회사와의 교묘한 밀실야합 아래 생겨난 정권유지와 시장점유를 위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다. 이를 통해 정권은 아젠다의 완수란, 재벌은 기업의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건전한 기업정신와 실현이란, 절묘한 포퓰리즘을 완성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도 맞닿아 있다. 배트맨은 슈퍼맨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노련한 집사 알프레드는 비꼬듯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배트맨의 대답은 “힘을 가진 자는 언제나 타락한다”다. 미 대통령과 똑같은 궁색한 변명일 따름이다.
이념의 대립도 살짝 건드린다. 2편에서 뮤턴트에 반대하는 집단의 우두머리인 스트라이커 장군의 음모로 사람들의 뮤턴트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이에 힘입어 스트라이커는 자비에 영재학교를 급습한다.
간신히 탈출한 울버린 등은 일행 중 아이스맨 바비의 집에 임시로 은거한다. 하지만 곧 경찰이 들이닥치니 다름 아닌 바비의 남동생의 신고 때문이다. 바비의 부모는 워렌 2세처럼 뮤턴트가 된 아들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고 이단시한다. 바비의 동생은 그 반감이 극대화돼 혐오할 정도다.
그건 바비와 파이어맨 파이로와의 대결에서도 보인다. 모든 걸 얼리는 바비와 불을 다루는 파이로는 그 능력에서부터 정반대의 이념대결로 비친다. 게다가 바비는 비폭력적 정서적인데 반해 파이로는 반항적 공격적이다.
교묘하게도 이 모든 게 ‘아포칼립스’에서 모두 만난 집결된다. 아포칼립스는 바로 배트맨이 두려워하는 슈퍼맨이고, 미 대통령이 제거하고자 하는 모든 뮤턴트의 표상이다. 기원전 3500년 절대적 신이었던 아문 라에게도 불신론자들이 있었으니 그가 영생을 위해 새로운 육체를 얻는 의식을 하는 중간에 이를 저지하려 반란을 일으키는 ‘역도’들은 ‘신을 자처하는 천박한 존재’ 운운한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통해 죄인이 돼 쫓기는 신세인 매그니토는 ‘아포칼립스’에서 유럽 외진 곳에 집을 짓고 아내와 딸과 평범한 노동자로서 살다가 결국 정체가 노출되는 바람에 아내와 딸을 잃고 사람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아포칼립스의 편에 선다. 그를 신고한 사람이 바로 그로부터 목숨을 구한 노동자라니! 바비 형제다.
‘엑스맨’ 시리즈가 내내 묻는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계속 갈등하거나 같은 편에 서는 자비에와 매그니토의 대결이 바로 그렇다. 3편에서 “당신도 자비에랑 똑같다”며 경멸의 뜻을 보이는 진에게 매그니토는 “그는 뮤턴트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우회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수단은 다를지언정 자비에와 매그니토의 목적은 똑같다. 뮤턴트의 생존과 자유다. 자비에는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고, 매그니토는 ‘인간은 안 된다’는 논리다. 자비에가 일방적으로 옳지 않은 이유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일방적이며 자기합리화에 능수능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그니토는 결코 돌을 맞아야 마땅한 뮤턴트는 아니다. 이건 묘하게도 ‘정글북’의 자연보호, 모든 종의 보호 등의 메시지와도 연결된다.
나이트크롤러는 ‘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는다’고 푸념한다. 악마의 형상을 한 그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보호를 받는다. 천사의 날개와 이름을 가진 앤젤은 아포칼립스의 편에 선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이 메시지는 ‘곡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사람 외지인은 마을을 끔찍한 연쇄 존속살인사건으로 몰아간 악귀로 강력하게 의심받는 가운데 주인공 종구에 쫓겨 동굴 안에 숨고, 여기에 강력한 의문을 품은 부제가 나타나 정체를 재차 묻는다. 그러자 외지인은 “나는 나”라고 대답하며 서서히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그의 손바닥에는 못에 박힌 자국이 드러난다.
이미 ‘엑스맨3’에도 있었다. 강력한 염력의 제어를 못해 내면에 피닉스란 또 다른 악마적 인격체가 생긴 진이 피닉스로 변해 광란의 파괴를 할 때 울버린은 “다 괜찮아질 거야. 자비에가 널 고쳐줄 거야”라고 달랜다. ‘곡성’에서 딸 효진이 악귀가 들려 엄마와 외할머니를 살해한 처참한 집안 꼴을 본 종구가 딸만은 살리기 위해 “아빠가 지켜줄게. 아빠 경찰이잖아. 아빠가 다 해결해줄게”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엑스맨'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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