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복면가왕’, 가요프로의 진화 혹은 답보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6.05 08: 58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가요 경연을 주축으로 시청자에게 감동과 재미를 한꺼번에 주는 가요예능 프로그램의 판도가 슬그머니 바뀌었다.
Mnet ‘슈퍼스타 K’가 신인가수 등용문 겸 사회진출 준비자들의 성장드라마로서 크게 성공하자 지상파 방송사에까지 유사한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신설되는가 하면 살짝 소재와 주제를 바꿔 춤을 겨루는 ‘슈퍼스타 K’+‘무한도전’ 같은 아이디어 상품이 나오는 등 한창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많이 변했다.
MBC ‘나는 가수다’가 아직도 기성가수 경연프로그램의 대명사로 되새김질되는가 하면 이의 유사상품인 KBS2 ‘불후의 명곡’이 아직까지 긴 생명력을 유지할 정도로 그 스테디셀러로서의 값어치는 유한하다.

하지만 대중의 입맛은 정체돼있지 않다.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 쇠고기 등심만 먹으면 질리는 법. 전통적인 가요 및 예능의 강자인 MBC가 이번에도 선수를 쳤다. 각종 가요경연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끝에 지난해 4월 ‘복면가왕’이란 썩 훌륭한 민주주의적 가요드라마를 론칭한 뒤 1년 넘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이는 가요예능의 변화의 전환점이었다.
SBS ‘보컬전쟁-신의 목소리’(이하 ‘신의 목소리’)가 지난 3월 30일 베일을 벗자 다음달 8일 MBC가 ‘듀엣가요제’를 내놨다. 그러자 9일 뒤 SBS도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이하 ‘판타스틱 듀오’)로 맞불을 놨다. 편성시기가 비슷한 걸로 봤을 때 이 프로그램들은 그동안 제작진이 고뇌한 끝에 각자 내놨지만 가요경연의 큰 틀 안에서의 변화에 한계가 있는 이유로 공교롭게도 큰 틀 안에서 만났거나, 아니면 기밀이 살짝 샜을 것이다.
‘복면가왕’은 두말할 필요 없는 히트상품이다. 두 자리 수의 안정된 시청률을 유지하는 가운데 동시간대 선두를 내달리며 방송 다음날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을 휩쓸 정도로 시청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한꺼번에 이끌어내고 있다.
금요일 밤 9시 반이란 시청자의 사각지대에 자리 잡은 ‘듀엣가요제’나 수요일 심야시간대에 배치된 ‘신의 목소리’ 역시 6% 안팎의 시청률이 그리 서운하지 않다. 문제는 ‘복면가왕’과 정면으로 맞붙은 ‘판타스틱 듀오’다. 웬만한 가정이라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기다릴 일요일 초저녁의 5%대 시청률은 사실상 참패다.
시청자의 수준만큼이나 양과 질이 풍성해진 방송 콘텐츠의 값어치를 단순하게 시청률의 숫자 하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상업주의적 발상인 것은 맞다. 그런 관점에선 전술한 프로그램들은 십여 년 동안 후크송 스타일의 댄스뮤직을 전면배치한 아이돌그룹의 슈가팝이 주도했기에 감수성을 잃어버린 가요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기성세대엔 추억과 참여를 되찾아주고, 젊은 소비자에겐 정서적 교감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선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순기능만 찬양받아야 하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신의 목소리’는 아마추어 출연자들이 다섯 명의 정상급 가수들에게 도전하는 게 기둥포맷이다. 기성가수는 ‘신’이고, 일반인과 다른 티탄족의 능력을 지닌 특별한 사람이 올림푸스의 영역을 넘보는 이미지다. ‘듀엣가요제’와 ‘판타스틱 듀오’는 아마추어와 프로가 팀을 이뤄 경연한다.
도전자들의 사연을 풀어놓고 전체가 안타까워하거나 감동하는 가운데 때론 위로를 넘어서 그럴 듯한 솔루션마저 제기되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짐으로써 단순한 노래실력 대결이 아닌, 예능과 다큐멘터리가 살짝 얹힌 종합선물세트가 된다는 점에선 ‘K팝스타’보다 더 시청자의 생활에 가깝게 다가간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식상함이 발목을 잡는다. 일반인 경연자를 선별하는 방식이 살짝 다르긴 하지만 결국 세 프로그램 모두 ‘슈퍼스타 K’와 ‘나는 가수다’의 기본 형식을 혼합했다는 점에선 ‘오십 보, 백 보’다. 디테일은 다를망정 결국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수단과 방법은 대동소이하다. 결국 기성가수의 실력의 재확인 혹은 재발견이 앞에서 끌고 웬만한 유명가수 뺨치는 어린 아마추어의 실력과 현실적인 사연이 시청자에게 놀라움과 동질감을 심어주는 효과가 연출을 다큐멘터리로 착각하게 만듦으로써 시청자를 고정시키려는 마케팅의 환각제는 약효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도전자가 나온다고 해도 그들은 아마추어고 시청률의 무게를 절대 감당해낼 수 없다. 제작진의 기성가수 발굴 혹은 캐스팅 능력이 관건인데 이미 실력자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들은 ‘신’이 아니다. 그저 일반인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프로페셔널일 뿐 번개를 다스리는 제우스가 아니다. 도전자 역시 신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 신의 DNA를 물려받은 티탄족도 아니다.
‘복면가왕’이 성공한 이유는 ‘나는 가수다’에선 워낙 쟁쟁한 선배가수의 기에 눌려 미처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했던 김연우를 재활용 가치를 재치있게 알아봤고, 10연승을 바라보는 음악대장을 발굴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복면가왕’의 앞길도 순탄치 못할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음악대장이 하현우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클레오파트라가 김연우냐 아니냐의 궁금증을 일으켰던 경우와 유사하다. 포인트는 그가 얼마까지 롱런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노래로 어떤 충격을 줄 것이냐다. 더 나아가 만약 그의 왕관을 빼앗는 복면가수가 나온다면 누구며 어떤 노래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있다.
김경호까지 꺾은 마당에 대항마로선 박정현 혹은 그 정도의 실력자인데 문제는 박정현은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했고, 가면을 써도 그녀인 게 아주 쉽게 드러나며, 결정적으로 그녀를 뛰어넘을 실력자를 발굴해내는 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물론 ‘판타스틱 듀오’까지 출연한 그녀가 경쟁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에 상도의적 부담도 느낄 것이다.
전성기 때 1등을 밥 먹듯, 방송출연을 숨 쉬듯 했던 김건모조차 ‘나는 가수다’의 경연 때 긴장감에 마이크를 쥔 손을 떨거나, 평소 비사회적으로 유명한 임재범이 폭력적인 행동으로 녹화장 분위기를 얼음왕국으로 만들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 주는 극적인 드라마조차도 결국 시청자의 인내심을 뛰어넘지 못한 게 예능의 현실이다. 드라마는 그렇고 그런 클리셰를 욕하면서 보는 게 시청의 포인트라면 예능은 새롭거나 충격적인 게 생명력의 기본이다. ‘개그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코너와 출연진을 바꾸는 건 심심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걸 기획하고 찾아내고 연구하는 게 직업인 제작진인데 왜 개발을 못해내느냐고 타박하긴 쉽지 않다. 작가주의가 강하게 개입하는 영화나 음악과 달리 방송 콘텐츠, 그것도 예능은 가족 관람 가여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방송이란 한계 때문에 소재와 주제 그리고 장르의 다양화에 한계가 있다.
아직도 주말 아침의 체육 예능의 대명사는 KBS2 ‘출발 드림팀’이다. 하지만 이미 1970년대 MBC에 ‘명랑운동회’가 있었다. ‘개그 콘서트’는 1980년대의 ‘유머 1번지’의 공개녹화 버전이다.
‘태양의 후예’가 기존 드라마보다 크게 다른 점은 거대자본의 투입과 사전제작을 통해 비주얼과 편집 등에서 비교적 빈틈이 덜 보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이 사랑하지만 갈등하는 각 시퀀스나 전체적 플롯은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별로 다를 게 없다. 강화된 액션과 풍광, 주인공들의 매력만 달라졌을 따름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복면가왕’도 슬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시청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연예인 판정단의 ‘막귀’다. 김구라 혹은 일부 재치 있는 젊은 패널을 제외하곤 다수가 복면가수에 대한 추측 능력이 형편없을 정도로 센스가 많이 부족하다고 투덜댄다.
결정적으로 자꾸 억지 감동을 강요하는 연출의 지나친 개입에 이제 질리는 모양새다. ‘복면가왕’의 가장 큰 미덕은 복면가수에 대한 편견 없는 평가이므로 경연자들의 노래에 집중하는 게 시청자들이 제일 강하게 느끼는 즐거움 혹은 감동이다.
가수들도 노래할 땐 표정으로 연기를 한다. 그런데 복면가수들은 얼굴을 가렸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심지언 목소리 톤과 창법마저도 바꾼다. 그렇다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등 모든 무대매너를 즐기게끔 배려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카메라는 수시로 연예인 패널의 얼굴을 잡는데 그들의 과한 표정과 행동은 누가 봐도 연출에 의한, 억지스럽고 과한 ‘발연기’ 혹은 ‘로봇연기’임을 쉽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어설프다. ‘복면가왕’이 애초의 감동을 잃고 자꾸 희극화 하는 게 아니냐의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근거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MBC,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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