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복면가왕’ 음악대장, 이기면 감격 져도 행복입니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5.23 16: 5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은 ‘요물’ 같은 가요예능 프로그램이다. 외형상 경쟁프로그램인데 상이 없음에도 이기려 기를 쓰고, 져도 행복한 표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 박정현 같은 대형가수도 없고, 그만큼의 긴장감도 부족하며, 치열한 경쟁심리의 열기와 체감온도가 낮은데 시청자는 열광한다. ‘나는 가수다’는 짧게 끝났지만 ‘복면가왕’은 꽤 오래갈 듯하다. 이쯤 되면 ‘재료’가 떨어질 법도 한데 매 회 화수분처럼 새로운 숨은 실력자들을 발굴해낸다. 그것은 선입견과 편견을 허용하지 않는 복면이 부리는 마법 덕이 크다.
지난주 5연승을 끝으로 복면을 벗은 차지연이 가왕 자리에서 내려왔다. 캣츠걸일 때부터 그녀는 이미 시청자들로부터 정체가 드러났었다. 가면 속의 얼굴이 차지연이건 아니건 시청자가 느끼는 감동과 재미는 달라질 게 없었다. 차지연일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그래서 궁금해 그녀의 복면을 벗기고 싶지만 웬만해선 보기 힘든 그녀의 뜨거운 무대를 계속 즐기고 싶기도 했다.

이 양면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게 바로 복면이다. 복면 속의 진면목이 누군가 궁금해 하고, 누구일지 유추해보며, 결과가 나왔을 때 자신의 짐작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해보는 재미와 더불어 맞았을 때의 희열과 틀렸을 때의 반전의 전율을 맛보는 것 또 복면의 매력이다.
복면가수들의 출연목적은 대충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한다. 인기와 지명도를 떠나 실력만으로 진검승부를 겨뤄 자신만의 진가를 정확하게 평가받고 싶은 것이다.
둘째, 팀이란 울타리에 갇혔거나, 이제는 잊힌 가수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삼스레 드러내고 싶어 한다. 아이돌그룹이란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느라 ‘나’란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유닛은 ‘부품’이 아닌 ‘완성’이란 한 가수로서의 인격체를 경연장에 세움으로써 객관적인 점수로 평가받고 싶다.
오래된 가수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김승진 최진희 정수라 등 한때를 풍미했던 가수들은 인기 탓에 오히려 저평가됐던 가수로서의 실력과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자존감을 확인하고 각인시키고 싶다. 인기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굳이 정체를 가린 채 복면가수로서 경연하는 것과 심리적으로 비슷하다.
셋째, ‘나도 가수다’다. 지금은 배우로 활동 중인 안세하는 철이의 복면을 쓰고 나왔다. 그가 가면을 벗었을 때 수많은 시청자들은 안세하라서 놀랐다기보다는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경악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탤런트라서, 그런데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불러서 입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가수 지망생이었지만 ‘얼굴’ 때문에 가수를 포기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역시 복면의 마법이다. 외모로 평가되는 선입견이란 편견을 배제한 채 실력만의 겨룸이 허용되지 않는 이 사회의 불균형에 대한 아쉬움이 그 탄식 속에 섞여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실력파 가수들이야 당연히 가왕이 목표고, 연승이 희망이다. 자신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고, 예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가왕의 자리에 앉고 싶다. 직업이 가수니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서운하거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의 심사는 청중이 한다. 연예인 판정단 중 김형석 김현철 등의 전문가조차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노래실력이라는 무형의 재능을 하물며 주관이 강하고 전문적 지식이 결여된 대중이 평가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리다. 이건 실력을 보자는 게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문제다. 경연자의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당일 청중의 심리상태가 결정하는 것이지 결코 실력으로 오롯이 가늠하는 게 아니다.
비가수의 경우 애초부터 가왕은 가시권에 없었다. 이종격투기 선수 서두원처럼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뒤늦은 사부곡의 사연과 더불어 격투가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은 호소력이 있는가 하면 때론 ‘가수만 잘 부르냐, 나도 그만큼 부른다’는 도발적인 도전도 있다.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이 담겨있다. 그래서 아예 2차 경연곡을 준비도 안 한 채 1차 예선에서 떨어질 줄 알면서도 무대에 서는 것이다.
떨어진 채 복면을 벗는 게 프로레슬링과 달리 모욕이 아닌 명예훈장을 받는 것처럼 영광으로 여기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브라운관을 통해 흐뭇하게 안방극장에 전달된다. 복면을 쓰는 것은 대결이 아닌, 자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도전이고 자신만의 개성의 홍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김건모 논란부터 임재범의 ‘횡포’ 소문까지 각종 의혹과 내우외환을 달고 살았다. 소문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김건모가 마이크를 잡은 손을 떠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큼은 사실일 정도로 경연자간의 대결의식이 치열했고, 그만큼 승패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복면가왕’의 경연자들은 철저하게 즐긴다. 그것 역시 복면이 부리는 마술 덕분이다. 이 사회에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팽배한지, 그것이 진실을 제대로 보는 눈에 색안경을 씌운다는 왜곡현상이 얼마나 횡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복면가왕’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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