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시네마]'곡성' 무섭나? ‘계춘할망’ 따뜻하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5.18 08: 5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현재 극장가에선 ‘곡성’(나홍진 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이 화제다. 마치 거센 허리케인 같았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바람이 언제 그렇게 거셌냐는 듯 모처럼 한국영화의 힘을 과시하는 가운데 ‘돈과 시간 낭비’라는 처참한 혹평도 흥행기세만큼 큰 양극단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물론 참담한 악평만큼 호평도 많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이색 장르에 특이한 형식과 내용만 놓고 보자면 역대 최고라는 극찬에 인색하지 않은 평가다.
오는 19일 개봉되는 ‘계춘할망’(창 감독, 콘텐츠 난다긴다 배급)은 흥행여부를 떠나 최소한 ‘곡성’ 같은 논란만큼은 없을,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크게 다수의 정서를 어루만질 드라마로서의 값어치는 인정받을 것이다. ‘곡성’이 차갑고 날카로우며 음산한 동시에 기괴하다면 ‘계춘할망’은 따뜻하고 가슴 시리며 뜨거운 동시에 푹신푹신한 부드러움을 갖췄다.

두 영화 모두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미스터리와 반전을 갖추고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일치한다. 하지만 그 외엔 모두 정반대다. 이 양극단의 대척점에 선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이란 게 희한할 정도다. ‘곡성’은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볼 영화가 절대 아니지만 ‘계춘할망’은 꼭 그래야만 할 필독서다.
‘곡성’은 시골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연쇄적으로 원인 모를 광기에 휩싸여 잔혹하게 일가족을 살인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타지에서 흘러들어온 정체 모를 한 일본인 노인과 한 한국인 처녀를 둘러싸고 과연 누가 이 사건의 배후인지, 그들이 사람인지 귀신인지를 추적해가는 오컬트 호러다.
요즘 대중은 자고 일어나면 천인공노할 범죄 뉴스에 치를 떨거나 공포에 휩싸이곤 한다. 자신의 어린 자식들을 학대하거나 죽인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하는 극악무도한 부모, 어버이날 아버지 가슴에 카네이션 대신 칼을 꽂은 남매에 대해선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그래서 ‘곡성’은 픽션으로 버무린 영화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우리 삶의 일부분 같은 기시감을 준다. 영화 속엔 ‘악마는 피나 뼈 등 형체가 없는 줄 아냐’고 묻는 대사가 있다. 꼭 머리에 뿔이 나고 손톱이 길고 날카로워야 귀신이나 마귀가 아니라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을 살해하는 ‘사람’이 곧 악마라는 걸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어린 딸 효진이 악귀의 조정을 받아 엄마와 외할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한 걸 목도한 아버지 종구는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겨를도 없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며 딸을 달래기에 집중한다. 그렇다. 이런 미친 세상에서 가족을 지켜야 할 가장은 그 최소한의 능력도 없지만 그저 가족에게 ‘희망고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계춘할망’은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준다. 그건 희망고문이 아니라 휴머니즘 본질에 대한 소심하지만 소박한 울림이다.
제주도 토박이 할머니 계춘(윤여정)은 외아들이 이혼한 뒤 혼자 키우던 딸 혜지(김고은)를 놓고 요절하자 혜지를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해녀다. 혜지가 7살 되던 해 읍내 시장에 나갔던 계춘은 복잡한 와중에 그만 그녀를 잃은 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게 살며 오로지 그녀를 찾는 일에만 집중한 가운데 12년을 보낸다.
혜지는 서울에서 또래의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뒷골목에서 사기 협박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다 폭행사건에 연루돼 도망 다니다 우유팩에서 자신을 찾는 광고를 발견하고 제주도로 되돌아온다.
감격한 계춘은 그동안 못 다한 정성이 아쉬운 듯 혜지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 붓고, 어릴 적부터 미술 실력이 남달랐던 혜지는 미대진학을 꿈꾸며 그림공부에 몰두하지만 뒷골목 생활이 몸에 밴 그녀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계춘에게 이를 고해바치며 어필한다.
서울의 범죄 친구들은 전화로 혜지에게 돈을 구해오라 협박하는 가운데 한 정체불명의 장년의 남자 역시 혜지 주변을 서성이며 계춘에게서 돈을 훔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이 따뜻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계춘을 실망시킬 만큼 심성이 나쁜 혜지는 아니다.
하지만 결국 혜지는 계춘의 통장을 훔쳐 서울의 친구들 품으로 되돌아가고 그러는 사이 혜지의 제주도 친구와 계춘의 이웃은 혜지에게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밝혀낸다.
여기서부턴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지만 영화의 진짜 스토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혜지는 계춘의 사랑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왜 그녀는 12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단 한 번도 계춘을 찾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지금의 행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갈등해야 했는지, 왜 무조건 주기만 하는 계춘에게 반발해야 했는지, 모든 의문과 궁금증이 풀린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론에서 최근 십여 년간 극장에서 개봉된 한국영화 중 가장 슬프고도 따뜻한 눈물을 유발하는 핵폭탄급 최루탄 시퀀스가 전개된다. ‘세상은 험악하다. 그러나 그래도 살 만한 게 이 세상이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곡성’과 ‘계춘할망’의 주제는 믿음과 의심으로 일치한다. 그리고 그 주제를 관통하는 소재는 가족의 소중함이다.
‘곡성’에서 종구가 효진에게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달랜다면 ‘계춘할망’에선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혜지에게 슬며시 다가온 계춘은 “나도 한 대 줘”라고 함께 피워 문 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지.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아”라고 위로한다.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소중한지 단 한 시퀀스로 해결한다.
‘곡성’에서 귀신 들린 효진은 이미 종구의 딸이 아니라 악귀의 하수인이다. 육체는 효진이지만 정신은 다른 ‘사람’인 것.
‘계춘할망’ 역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만 믿어야 하나, 아니면 인간의 외모 안에 들어있는 인간성의 본질에 신뢰를 둬야 하나’를 묻는다. 여기엔 맹자가 주창한 ‘성선설’과 순자가 주창한 ‘성악설’ 중 어느 것이 옳으냐의 담론을 제기하는 철학까지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은 욕망과 이기주의에 순응하도록 설계돼 있다. 다만 이성이 변수일 따름이다.
‘곡성’의 등장인물들은 지나치게 탐욕적이진 않지만 저마다 자신 혹은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선 타인의 손해 혹은 희생마저도 눈감을 자세가 돼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가족의 안녕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의심하게 되는데 그 의심의 배경이 가족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아이러니마저도 서슴지 않고 주장한다.
‘계춘할망’에서도 이 모순된 감정의 격앙이 갈등의 쓰나미를 가져오면서 시작된다. 그런 의심을 침묵의 장롱 안에 낡은 담요로 덮어놨다 꺼내는 과정이 다른 차원의 믿음을 확신으로 밀봉한 뒤 모든 갈등과 갈망의 격동이란 감정의 소용돌이가 혼합되고 나면, 결국 순수한 인본주의의 ‘정’이란 사랑으로 봉합한다. 그게 이 영화가 가진 눈물 유발의 자극제요, 희망 장착의 피로회복제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계춘할망'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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