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딴따라’, 예술과 상술, 진솔과 경박의 공존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5.10 10: 47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태양의 후예’가 떠난 안방극장의 수목드라마 경쟁구도는 도토리 키 재기다. MBC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시청률 9%로 앞서 달리고 SBS ‘딴따라’가 8.7%로 그 뒤를 바짝 쫓는 가운데 KBS2 ‘마스터-국수의 신’이 6%로 사실상 경쟁구도에서 밀려났다.
수치를 떠나 내용적으로 돋보이는 드라마는 단연 ‘딴따라’다. 방송 전 김건모까지 동원한 반전의 홍보 트레일러로 기대감을 높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나자 지성밖에 안 보여 실망을 시켰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서서히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는 뒷심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드라마는 시청자가 10~20대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중 늦은 밤 시간대 방송이라는 편성 역시 핸디캡이다. 그래서 약진이 더 돋보인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장점과 단점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메시지가 확실하고 나름의 철학도 있는 반면 스토리 전개와 에피소드가 모든 예상의 범주 안에 드는 상투적 반복에 머물고 그래서 주인공들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반감된다. 참으로 기괴한 드라마다.

스토리의 리더는 국내 최고의 연예기획사 케이탑의 매니저로서 이사 자리에까지 오른 신석호(지성)다. 그가 매니저를 하며 배운 인생의 모토는 성공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 그래서 그는 거짓이 습관으로 몸에 뱄고, 권모술수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다.
그런 그가 회사 소속 인기 보이그룹 잭슨을 데리고 독립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준석(전노민) 대표가 이를 눈치 채고 석호를 해고한 뒤 만년 ‘넘버 쓰리’였던 김주한(허준석)을 석호의 빈자리에 앉힌다.
고3인 조하늘(강민혁)은 뮤지션을 꿈꾸던 형을 잃고, 뒤이어 부모까지 하늘로 떠나보낸 뒤 의붓누나 그린(혜리)과 단둘이 산다. 그 역시 형처럼 어려서부터 가수를 꿈꿨지만 부모의 반대에 의지를 갈무리했던 터. 게다가 형을 잃은 트라우마 탓에 음악에 대한 거부감마저 갖고 있는 상황.
그런 그에게 석호가 나타나 밴드 딴따라의 보컬리스트를 맡아달라고 제안한다. 우여곡절 끝에 석호의 뜻을 받아들이는 데 그 이유는 10년 전 형이 살아있을 때 친형 앞에서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던 어렴풋한 기억 속의 형 친구가 바로 석호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 석호는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이다.
하늘은 걸그룹 멤버를 꿈꾸던 여자 친구 이지영을 성추행한 전과가 있다. 그러나 사실 범인은 잭슨 멤버 지누(안효섭). 주한이 지영을 걸그룹 멤버에 합류시킨다는 것을 미끼로 범행혐의를 하늘에게 덮어씌운 것.
이 사실을 안 석호는 준석을 찾아 진실을 밝히라고 항의했다가 오히려 딴따라를 데뷔시킬 경우 나락에 떨어뜨리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그렇게 실의에 빠진 석호는 멤버들에게 해체를 선언한 후 잠적했다가 오랜 친구 여민주(채정안)의 도움을 받아 다시 딴따라의 데뷔에 박차를 가한다.
모든 시청자를 공감시키는 관람 포인트는 지성의 연기력이다. ‘킬미, 힐미’에서의 다중인격자 열연을 통해 한층 더 연기의 깊이가 열길 물속으로 들어간 그는 이번엔 분노할 때 대사를 밖으로 토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들이마시는 놀라운 역발상의 표현력으로 차원이 다른 실력을 빛낸다.
뻔한 클리셰이긴 하지만 석호가 천박한 기회주의자에서 진솔한 음반제작자로 변하고 그 과정에서 아마추어 음악인들의 순수한 음악적 열정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내용은 장르의 이종교배가 유행인 요즘 보기 드문 ‘수학의 정석’이라 오히려 반갑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기타를 전공한 카일(공명)은 아무리 뛰어난 밴드일지라도 보컬리스트와 톤이 자신의 기타와 안 맞으면 연주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녔다. 그래서 그는 음악에 대해 기형적 거부감을 지닌 하늘에게 분노하며 자신과 밴드를 할 것을 간절하게 바란다.
또 다른 멤버 나연수(이태선)는 이제 21살인데 벌써 5살짜리 아들을 가진 싱글 대디다. 당연히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있다. 석호가 밴드 해체를 통보하며 미안하다고 봉투를 내밀자 오히려 자신이 고맙다며 극구 사양하다가 결국 눈물을 쏟는 순수한 청년이다.
대신 케이탑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천박하고 비열하며 이기적이다. 연습생 시절부터 석호가 아껴온 지누는 벌써 알코올에 의존하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인기를 잃을 게 두려워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숨긴다.
이지영 역시 어린 나이에 벌써 출세를 위해서라면 친구를 성추행 전과자로 만드는 뻔뻔하고도 서슬 퍼렇고도 추접한 면모를 보인다.
준석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순을 잡을 만큼 전형적인 연예계의 비열한 사업가고, 주한은 그런 준석이 모델일 만큼 콤플렉스와 성공을 향한 어긋난 야망에 눈이 멀었다.
이런 설정은 현재 치열한 재벌전쟁이 돼가는 연예산업계의 구조에 대한 싸늘한 조소이자, 진중한 음악을 외면한 채 오직 아이돌그룹으로 돈만 좇는 기획사들의 얄팍한 상술에 대한 냉정한 호통이다. 석호가 아이돌그룹이 아닌 밴드를 만들고 그 이름을 딴따라라고 짓는 아이러니에 함축된 메시지다.
딴따라는 뮤지션을 낮잡아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데 싱어 송라이터이자 음반제작자인 박진영은 스스로 그렇게 부를 정도로 그 용어에 호의적이다. 그건 그만큼 요즘 가수들이 뮤지션이 아닌 스타만 추구한다는 점에 대한 반발이자 충고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더욱 아쉽다. 우선 음악이 또 다른 주인공이어야 할 이 드라마에 음악다운 음악이 없다. 주제곡도 삽입곡도 매우 약하다. 석호가 하늘을 감동시키는 매개체는 10년 전의 계약서와 너바나의 CD다. 설정은 좋다. 그렇다면 밴드가 주인공인 만큼 너바나 CD가 중요한 소재가 되듯 그런 훌륭한 밴드의 음악이나 그 수준의 창작곡이 배경에 깔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건 매우 심각한 직무유기 혹은 오류다.
혜리는 ‘진짜 사나이’와 ‘응답하라 1988’로 ‘100억 소녀’가 됐다. 아직은 그 이미지가 먹힌다는 의미다. 그런데 초반이라 딴따라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이라 그런지 혜리의 드라마 속 비중과 캐릭터가 약해도 지나치게 약하다. 이미지 역시 시청자들을 실망시킬 만큼 평면적이다. 류현진을 외야수로 출전시킨 격이다.
전반부의 주인공이 석호라면 후반부엔 당연히 딴따라와 그 중에서도 하늘일 것은 뻔하다. 매니저로 본격적으로 활동할 그린 역시 서브 주인공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실망스러우면서도 중반 이후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딴따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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