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 제이민, "조승우 직언에 독기 품었어요"[인터뷰]
OSEN 선미경 기자
발행 2016.04.28 11: 19

기르던 머리를 싹둑 자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 작품에서 이 역할을 맡기 위해서,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연습하고 또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제이민(28)은 그렇게 뮤지컬 '헤드윅'의 이츠학을 연기해나가고 있다. 앙코르까지 참으로도 체력이 많이 소비되는 이 무대지만 '헤드윅'을, 이츠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참 많다.
제이민은 지난달부터 공연 중인 '헤드윅'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극중 헤드윅의 남편이자 드래그퀸을 꿈꾸는 백업보컬 이츠학으로 열연 중이다. 국내에서 공연된 지난 10년간 참으로 많은 마니아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 공연은 좀처럼 쉽지 않다. 아무리 극의 대부분을 헤드윅이 이끌고 간다지만 매번 너무나도 다른 헤드윅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관객들의 집중이 없을 때도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것도 꼭 필요한 배역이다. 제이민은 첫 도전에서 그런 이츠학을 너무도 잘 소화해주고 있다.
공연 무대를 옮겨오면서 이츠학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헤어스타일. 긴 머리로도 공연에 올랐던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숏커트의 확 짧아진 모습이다.

"뮤지컬 '인더하이츠' 마지막 공연 파티 때인가, 이지나 연출님이 '헤드윅' 잘 어울리겠다고 하셨어요.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매니저가 들었는지 오디션 정보를 알아오셨어요. 준비를 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정말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촉박한 시간 동안 제이민은 영화 '헤드윅'을 감상하며 이츠학을 분석했고, 지정된 오디션 곡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제이민이 합격하게 된 이유는 바로 단번에 커트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각오 때문이라고.
"사실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오디션 때 이츠학 역을 위해 잘라야 한다고 하고, 가슴도 동여매고 여성성을 버리고 할 수 있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머리카락 빨리 자란다'라고 했는데, 사실 속으로는 진짜 자르라고 하려나 했어요. 연습실 갔는데 머리 자르는 스케줄부터 묻더라고요(웃음)."
'헤드윅'은 사실 이츠학보다는 헤드윅에 많이 집중된 극이다. 관객 대부분은 헤드윅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이츠학은 관객들이 그(혹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않을 때도 분주하다. 헤드윅의 백업 보컬로 호흡을 맞추고, 헤드윅을 위한 무대 장치를 옮기거나 그녀(혹은 그)의 옷매무새를 챙겨준다. 그렇게 두 사람과 앵그리인치라는 밴드의 호흡으로 이뤄지는 공연이다.
"연습이 독특했던 것은 안무나 군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극의 상당 부분을 헤드윅이 차지하니까 연습 초반에는 헤드윅의 대사 작업을 하는데 쏟았어요. 이츠학에 대한 그림이 빨리 안 그려지니까 답답하기도 했죠. 헤드윅들이 각자의 캐릭터가 됐을 때, 밴드와 같이 연습하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특별한 연습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이민의 이츠학 시즌1이다. '헤드윅'은 출연 배우들이 여러 시즌 재출연하는 경우가 많은 작품. 이번 작품에 함께 캐스팅된 서문탁도 이미 이츠학으로 여러 시즌에 걸쳐 무대에 올랐고, '탁츠학'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다. 조승우와 조정석, 윤도현도 여러 시즌 무대에 오른 베테랑 헤드윅들이다. 이 베테랑들 사이에서 처음 무대에 오르게 된 제이민은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많이 긴장했다. 그런 그녀를 도와준 것은 조승우의 직언이었다.
"첫 번째 공연을 조정석 씨랑 했는데 긴장을 정말 많이 했어요. 도망가고 싶었어요. 캐릭터도 확실히 못 잡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마니아들 앞에서 정말 처참하게 큰일 날 것 같았어요. 공연 전, 메이크업도 하기 전에 조승우 씨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너무 절실해보였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직설적으로(웃음). 그 말을 듣고 독기가 올라오면서 '어떻게든 해내야겠다' 했어요(웃음)."
결국 제이민은 무대에 올랐고, 몇 번의 공연을 거치면서 그녀만의 이츠학을 잘 만들어갔다. 헤드윅에 대한 증오보다 사랑이 더 큰, 여리면서도 강단 있는 제이민만의 이츠학이다. 제이민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이 헤드윅을 위해 박수를 칠 때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할일을 세심하게 해낸다. 베테랑은 아니지만 베테랑이 되어가고 있다.
"첫공 때는 긴장을 했고, 두 번째 공연 때는 긴장을 안 하니까 불안하더라고요.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힘을 주고 들어갔어요. 점차 익숙해지니까 힘도 빠지고 자연스러워졌어요.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느낌? 공연 초반에는 이츠학이 모든 헤드윅들에 맞출 수 있고, 메모리가 돼야 해서 큰 부담이었어요. 제가 누를 끼치면 안 되니까."
이번 시즌에는 제이민과 서문탁, 임진아 세 명의 이츠학과 조승우와 윤도현, 조정석, 정문성, 변요한 다섯 명의 헤드윅이 캐스팅 됐다. 모든 헤드윅에게 맞추는 것도 힘들지만 그 맞춰가는 과정, 저마다의 색깔이 재미있다는 제이민이다.
"공연 초반에 조정석 씨랑 같이 많이 붙었는데, 배려 같아요. 많이 익숙해지고 수월해질 수 있었어요. 각자 색깔이 다른데,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는 보라색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주황색, 각자의 색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죠. 윤도현 씨는 노래가 너무 좋고, 정문성 씨는 드라마가 굉장히 강하고 그런 식이예요."
제이민의 이츠학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헤드윅에 대한 사랑.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언젠가 역대 호평 받는 이츠학들처럼 제이민도 오랫동안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이츠학을 연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설정보다는 그때마다 감정에 충실하려고 해요. 저의 이츠학은 헤드윅에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에 그녀에게 집중하죠. 얄밉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소극적이지만 그런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요. 떠날 수도 없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의지도 하고 복합적이에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엄마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돼요."
제이민만의 이츠학을 만들기 위해 솔로곡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데스페라도'부터 '크립', '500마일스' 등 여섯 곡 정도를 준비하고, 분장하면서 어떤 곡을 부를지 선택한다. 제이민의 이츠학이 빛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제이민에게 보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헤드윅'은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말하기에는 단편적인 것 같아요. 보물 같은 존재죠. 이츠학이라는 타이틀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예뻐해 주고 이끌어줘요. 알면 알수록 깊은 작품이고 인물이라 너무 감사해요."
제이민은 내달 29일까지 예정된 '헤드윅' 공연을 한 후에는 뮤지컬 '올슉업'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츠학과는 또 다른 당찬 소녀 나탈리 역이다. 차곡차곡 필모를 쌓으면서 뮤지컬 배우 제이민의 폭을 넓히고 있는 그녀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계속해서 신보를 준비 중이다.
"'헤드윅'을 바탕으로 뮤지컬 배우로 좀 더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뮤지컬 배우라고 말할 수 있도록(웃음). 가수 제이민으로서는 더 많은 분들에게 제이민이라는 가수의 존재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seon@osen.co.kr
[사진]S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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