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태양의 후예’ 안에 ‘별그대’와 ‘슈퍼맨’ 있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3.31 13: 2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KBS2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10%만 돼도 성공이라는 미니시리즈 판도 속에서 무려 30%를 넘을 정도로 전국을 넘어선 전 세계적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되는 집안은 가장 혼자서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도 살림과 내조를 잘 해야 하고, 자식들도 모범생의 자세로 성실한 학업을 통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등 전체적인 조화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태양의 후예’가 그런 총체적인 성공사례를 보여준다. 우선 충분한 시간을 가진 사전제작이 주효했다. 탄탄한 기획력으로 작가의 글을 훌륭하게 살릴 수 있는 여유 있는 연출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지 말입니다’라는 사실 군대에 없는 유치한 ‘다나까’ 용어마저 유행하게 만드는 김은숙 작가의 마법은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 등 주축 배우를 비롯해 모든 조연배우와 스태프의 노력이 더해져 시청자를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특히 송중기와 송혜교의 ‘밀당’ 혹은  ‘달달’한 애정표현의 장면은 매번 어김없이 시청자들의 뇌에서 도파민이 콸콸 쏟아지게끔 만든다.

초반 시청자를 가슴 뛰게 만든 장면 중 하나는 강모연(송혜교)이 4륜구동차를 운전하고 가다 잘못해 낭떠러지에 걸린 구사일생의 상황. 구조요청을 받은 유시진(송중기)이 달려와 조수석에 동승한 뒤 구해주겠다며 차를 바다로 낙하하도록 조치한 뒤 그녀를 구해낸다. 모든 시청자들이 손에 땀을 쥔 뒤, 가슴을 쓸어내렸으며, 이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의 키스라도 기대했을 법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SBS ‘별에서 온 그대’가 절찬리에 방영되던 때다. 자신의 고급세단을 운전하고 달리던 천송이(전지현)는 그녀를 죽이려는 이재경(신성록)의 음모에 의해 브레이크 고장으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뻔하는 위기를 맞지만 어느새 공간을 이동해 날아온 도민준(김수현)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다.
그렇지만 이게 ‘별에서 온 그대’의 오리지널은 아니다. ‘슈퍼맨’ 시리즈에서 숱하게 봐온 ‘반복’이다. 그러면 어떠랴, 어차피 ‘별에서 온 그대’의 모티프는 누가 봐도 슈퍼맨+뱀파이어인 걸.
유시진에게 슈퍼히어로의 초능력은 없지만 그에 못지않은 용기와 정의감은 차고 넘친다. 단순히 송중기가 잘생겨서 ‘태양의 후예’가 그토록 인기 있고 중국 남성들 사이에서 ‘송중기 주의보’가 발령된 게 아니라 유시진이 여자들의 판타지와 로맨스를 최고치로 끌어올릴 정도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군인은 쿠데타와 관료주의 그리고 일방적인 상명하복의 강요라는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지만 사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군인과 군대조직은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의 이상적인 집합체의 출발점이다.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끈 필리페2세(재위 1556~98) 시절 ‘스페인의 깃발이 날리는 곳엔 해가 지지 않는다’(모든 땅이 스페인의 것)고 했는데 이는 BC 2334쯤 수메르를 통일한 우루크를 타도하고 아카드 왕조를 세운 사르곤 왕 시절 ‘5400명의 병사가 모든 땅의 왕인 사르곤 앞에서 식사를 했다’고 적은 역사의 기록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만큼 군대는 사람의 조직의 시초였다.
군대에는 서로의 약속과 합의에 의한 계급체계가 존재하고, 그것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지켜야 한다는 굳건한 사명감으로 발현된다. 더불어 전우애라는 끈끈한 휴머니즘이 흐르고, 무엇보다 승리라는 성취감으로 보상되니 천박한 금품이 아닌 명예를 중시하는 인간 본연의 숭고한 정신에 이보다 더 좋은 훈장은 없다.
유시진과 서대영(진구) 상사는 그런 군인정신에 투철한 남자다. 서대영은 유지신보다 형이지만 계급에 충실해 대위 계급의 중대장인 시진에게 철저하게 충성한다. 유시진 역시 부하지만 사회로 치면 형인 그를 깍듯하게 예우하면서 마치 친구처럼 우정을 나눈다.
그들은 자신의 임무에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들어 완수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앞뒤가 꽉 막힌 원칙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대영이 연인 윤명주(김지원)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녀를 밀쳐내는 것은 사단장인 명주의 아버지의 명령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아픔을 끝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치명적인 M3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굳게 가로놓았던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녀의 구출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그동안 자신을 거부하는 대영 때문에 명주가 많이 아팠을 것 같지만 시청자들은 안다. 자신의 마음을 갈무리한 채 마음에도 없는 무관심과 무뚝뚝한 태도로 그녀를 밀쳐냈던 대영이 더 아팠던 것을. 여기서 여자들의 감동이 움직인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는 사랑하는 여인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벨라는 시간이 흐르면 늙고 또 죽을 테지만 자신은 불사의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영의 이타적인 태도와 달리 이기적인 자세가 먼저다. 벨라가 늙거나 죽으면 자신만 상처를 입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벨라가 늙은 자신과 달리 젊음을 유지하는 에드워드를 보며 괴로워할 것 역시 염두에 둔 것도 맞다. 어느 게 먼저든 어쨌든 두 사람은 결혼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벨라는 자신의 목을 물어달라고 계속해서 에드워드를 유혹한다. 여기서 에드워드의 이타심이 발휘된다. 자신의 욕심대로라면 그녀를 뱀파이어로 만든 뒤 영원히 사랑하며 함께 살 수 있다. 하지만 죽지 않고, 그래서 계속 신분을 바꿔가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삶 또한 쉽지 않음을 알기에, 사람 피의 유혹을 이겨내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처절하게 느끼기에, 그는 그녀의 애원을 무시하고 뱀파이어의 본능을 억제하느라 힘겨워한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작가는 민준의 그런 괴로움을 그려내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영생에 변수를 가미하는 변형을 꾀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그럴 필요가 없다. 네 명 모두 멀쩡한 사람이니까. 물론 그래서 더욱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신화나 동화가 아닌, 우리 곁에 충분히 존재할 법한-사실 겉모습만 놓고 보명 당연히 존재한다-이상적인 남녀 주인공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러브 판타지를 그리니 시청자들이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시진과 모연의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구조다. 기(우연한 만남) 승(밀당) 전(열렬한 사랑) 결(갈등 끝의 화해와 결합)의 상투적인 클리셰를 따른다. 그런데 대영과 명주의 사랑은 얼핏 양반의 딸과 머슴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우리네 민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중세유럽의 연애소설 ‘트리스탄과 이졸데’ 냄새를 살짝 풍긴다. 연애담에 비극은 가장 훌륭한 흥행의 요소기 때문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별그대' '태양의 후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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