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탐구]로버트 드 니로, 도대체 전성기가 몇 번인거야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3.22 15: 38

 왕년의 은막 스타들이 하나둘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와중에도,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작품 활동은 꾸준했다. 그는 작품과 함께, 또 대중과 함께 나이 들어 가는 배우로서의 모범적 삶을 보여줬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더라도 멜로부터 정통 액션, SF까지 다양하다. 캐릭터 역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맡아 왔다. 1943년생의 노배우가 부침 없이 수십년을 사랑받은 비결은 이 같은 다채로움과 꾸준함에 있는 듯하다.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그가 보여준 활약은 눈부셨다. 가히 ‘다시 맞은 전성기’라 해도 좋을 터다. 로버트 드 니로가 영화 ‘인턴’에서 연기한 젊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의 인생 멘토이자 70대 시니어 인턴 벤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믿을 만한 어른’의 매력은 젊은 관객들 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나이듦’의 가치 무려 누적관객수 360만을 동원하는 등 이례적 흥행에 성공했다.

2016년 로버트 드 니로는 또 다른 여성 CEO와 조우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조이’ 속 전설적 사업가 조이 망가노(제니퍼 로렌스 분)의 철없는 아버지 루디로 분했다. 극 중 딸 조이에게 역경을 선사(?)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보다 보면 울컥 화가 올라올 만큼 실감나는 ‘진상’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가하면 ‘오마이그랜파’에서는 19금 농담의 귀재 딕으로 변신해 마흔 두 살 터울의 고지식한 손자 제이슨(잭 에프론 분)을 환락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영화 속 딕은 제이슨 앞에서 자위하는 광경을 들키고도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추어 올리는 뻔뻔한 노인이다. 당황한 손자의 타박에는 ‘섹드립’과 욕설로 응수한다. 딕은 타의 본보기가 될 만한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제이슨의 인생과 평생 한 여자만 보고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일탈로 구원받고자 하는 인물이다.
‘인턴’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조이’와 ‘오마이그랜파’ 속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 역시 크게 호평받았다. 이 세 캐릭터의 공통점은 70대 노인의 전형성을 탈피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융통성 없는 성격으로 답답함을 주거나 나약해진 육체와 배우자와의 영원한 사랑을 향한 갈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것이 종전 영화들의 노인 캐릭터 활용 방식이었다면,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은 역할들은 조금 달랐다. 새로운 로맨스에 대한 염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직접 찾아 나서고, 또 쟁취한다. 젊은이들을 뛰어 넘는 능력과 센스는 단순한 ‘나이듦’을 ‘연륜’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치환한다.
그러나 이 같은 캐릭터의 미덕 때문에 벤과 루디, 딕이 강요하는 행복의 모습이 전형적이라는 사실은 가려진다. 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꾀하는 ‘워커홀릭’ 줄리에게 화합을 이야기한다. 이에 감화받아 바람을 피운 남편을 눈물로 용서하는 것이 줄리의 선택이 과연 그의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졌을지 의문이다. 한편 루디는 조이에게 안주하는 삶을 역설하며 포기를 종용한다. 이를 당시의 현실이라 말하는 그의 조언에도 일리는 있지만, 그가 딸을 여자, 딸, 아내, 엄마의 모습 말고 한 사람으로 봐 준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조이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됐을 뿐이다.
딕도 마찬가지다. 샌님 손자를 계도하겠다면서 술과 마약을 권하고, 결혼을 막는다. 그 자신은 “즐기고 살라는 것이 아내의 유언”이라며 여대생과의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 유의미한 대화는 전무했다. 경험이랍시고 막무가내로 손자를 끌고 다니며 탈선을 부추기는 것이 할아버지로서 딕이 했던 전부다. 영화 말미 딕의 특수부대 경험을 강조하며 존경을 요청하는 대목은 초등학생과 할아버지의 우정을 그린 영화 ‘세인트 빈센트’의 엔딩크레딧에 등장한 성조기를 떠올리게도 했다.
어느덧 황혼으로 접어든 로버트 드 니로의 2015-2016 대차대조표를 보니, 아직 자산과 부채가 비슷한 수준이다. 연기력은 날이 갈수록 보는 이들을 압도하지만, 연기하는 인물들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멋지게 나이 들어 가는 이 노배우의 변신을 더욱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유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인턴’·‘조이’·‘오마이그랜파’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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