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피리부는 사나이’가 전하는 소통의 의미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3.16 07: 00

 “협상은 전쟁입니다. 누군가는 피를 흘리게 돼 있어요.”
지난 15일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 속 폭력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집요하리만치 추적하던 주성찬(신하균 분)의 한마디다. 경찰 위기협상팀에 들어오기 전 최고의 기업협상가였던 그는, 과거 모처에서 논란이 됐던 뉴타운 개발 당시 기업의 편이었다. 주성찬이 강제 진압을 건의하면서 민간인 4명과 경찰 1명이 희생됐다. 이를 알게 된 동료 여명하(조윤희 분)가 분개하자, 주성찬은 필연적으로 피를 흘리는 이가 발생하는 것이 협상이라며 차갑게 돌아섰다.
어찌 보면 매우 타당한 논리다. 복잡하게 돌아갈 것 없이, 협상은 설득하느냐 설득 당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주성찬의 주장에 협상의 본질은 빠져 있다. 협상의 결과로 누군가는 반드시 다치게 된다면, 그냥 전쟁을 하면 될 일이다. 협상이란 이 같은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소통의 한 단계이며, 인간으로서 공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협상을 잘 활용하지 못해 파국을 맞기 직전까지 갔던 부자(父子)의 사연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위기협상팀 공팀장(유승목 분)과 아들 공정인(곽동연 분) 사이에는 오랜 소통의 부재로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아버지는 매번 윽박을 질렀고, 아들은 항상 귀를 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생긴 틈은 피리부는 사나이의 공략 대상이 됐다. 공정인을 비롯해 익명 웹사이트 ‘언더그라운드’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그의 노림수에 걸려들 제물과 같았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힘을 빌린 공정인은 자신이 납치된 것처럼 꾸민 채 아버지를 협박한다. 그토록 아들에게 박하게 굴던 아버지는 괴한의 목소리에 무릎까지 꿇었다. 그러나 이 모두가 공정인의 분노가 만든 자작극임이 밝혀졌을 때, 이 가여운 아버지와 아들은 한 번도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본 적이 없음을 후회했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사람들의 손에 폭력을 쥐어 줬다. 그는 이를 또 다른 소통의 방식으로 여겼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애먼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대화의 길은 더욱 좁아졌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도움 아닌 도움이 일시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일조했을지는 몰라도, 그의 조력을 통해 결국 사고를 저지르고야 만 사람과는 협상 시도조차 꺼리게 된 탓이다.
주성찬의 “협상은 전쟁”이라는 말로 다시 돌아오면, 이 명제에 틀린 부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협상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논쟁과 다르다. 상호 간의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기에, 협상 테이블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주성찬의 오류를 통해 협상 전문가가 잊고 있던 협상의 본질을 다시금 제시하고 있다. 주성찬이 극 중 수많은 소통의 부재와 이로 인해 벌어진 사건들을 마주하며 점차 생각을 바꾸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피리부는 사나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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