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이세돌 VS 알파고 승부, 영화는 예고했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3.12 09: 58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세계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이세돌 9단과 컴퓨터 알파고와의 첫 번째 대결은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의 불계승(확인이 필요 없는 확실한 승리)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였다. 알파고는 지난해의 대국과 달리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고, 이는 기계의 상상을 뛰어넘는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과 더불어 결국 기계의 사고가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미 영화들은 이를 예언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1984년 공개된 ‘터미네이터’는 할리우드에서 하드웨어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으로 알려진 제임스 캐머런의 존재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으로 각본과 연출을 그가 담당했다. 근육질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스타덤에 올린 영화기도 하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전략 방어 네트워크가 1997년에 이르자 스스로 지능을 갖추고 인류로 하여금 핵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자 무려 30억 명이 사라지고 나머지는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인류를 구할 영웅 존 코너가 나타나 연합군을 구성하고 기계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자 2029년 기계는 아예 코너의 엄마를 죽임으로써 그의 탄생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1984년의 LA로 보내면서 이 영화는 시작돼 오늘날까지 시리즈를 내고 있다.
워쇼스키 남매의 걸작 ‘매트릭스’도 비슷하다.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세상을 지배하는 2199년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는가 하면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 입력당한 채 1999년의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당연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일부 인간들은 이런 허상을 깨닫고 기계에 대항하기 위해 지하세계 시온에 거처를 마련하고 전설의 구원자가 나타날 날을 기다리다 드디어 네오를 만나 그를 구심점으로 기계를 물리치기 위한 마지막 전쟁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오한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 등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네오(Neo)는 One을 재배열한 것으로 ‘The One’ 즉 메시아다. 시온은 구약성경의 세상의 마지막 날에 메시야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세상을 통치하는 도시다.
 
▲ '토탈 리콜'.
모피어스는 그리스 신화의 꿈(잠)의 신이고, 트리니티는 성경의 성자 성부 성신의 삼위일체며, 저항군의 함선 느부갓네살은 고대 바벨론 제국의 2대 왕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정원을 만든 장본인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게 진짜가 아니라 마음먹기 달렸다는 불교의 유심론과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미지)이 만든 시뮬라크르(복제) 이론, 그리고 여기에 장자의 호접몽 사상까지 곁들여 우리가 혹시 가상현실을 진짜인 듯 착각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철학적 정치적 메시지를 풍긴다.
‘바이센테니얼 맨’(1999)도 있었다. 2005년 뉴저지의 한 부잣집에 가사도우미 로봇 앤드류가 들어오는데 아이가 실수로 마요네즈 한 방울을 회로 안에 흘린 뒤 급격하게 진화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학습능력으로 지식이 일취월장하는 가운데 철학적 사고까지 갖추게 된 그는 예술성을 발휘해 큰돈까지 벌기까지 한다. 집안의 딸을 사랑하게 된 그는 자아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난 끝에 드디어 첨단기술의 도움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돼 돌아와 사랑했던 여자와 꼭 닮은 그녀의 손녀와 결혼한다.
사람임을 인정받는 재판을 신청한 그는 그러나 딱 하나 늙지 않는다는 이유로 패소한다. 그리고 200살이 돼 마지막으로 피를 수혈 받아 늙음을 갖추게 됨으로써 침대에서 죽어가며 마지막 재판에서 승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목부터 인공지능을 앞세운 영화 ‘A.I.’는 안데르센의 동화 ‘피노키오’의 디지털 확장 버전이다. 빙하가 녹아 거의 모든 대도시가 물에 잠긴 가까운 미래사회, 사고로 외아들이 가사상태에 빠져 깊은 슬픔에 빠진 신혼부부의 집에 입양된 소년 로봇 데이빗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특별한 존재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던 그는 그러나 가사 상태의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집에서 먼 곳에 버려지고 이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무려 2000년의 세월을 방황한다.
그 세상은 모든 인류가 멸망한 뒤 인류를 뛰어넘는 지능과 과학의 힘을 가진 기계가 지배한다. 새 인류(?)는 과거 진짜 인류의 역사를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한 데이빗을 마치 함무라비 법전보다 더 앞선 우르 남무 법전이나 리피트 이슈타르 법전을 발견한 것처럼 귀하게 여겨 그의 소원대로 머리카락으로 딱 하루지만 엄마를 되살린다. 그래도 데이빗에겐 그 하루가 지난 2000년의 방황과 기다림을 충분하게 보상해준다.
 
▲ 'A.I.'
둘 다 공교롭게도 200년과 2000년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이 본격적으로 융성한 게 BC 2000년대의 중후반이고 현재는 AD 2000년대의 앞자락이다.
장르나 주제나 철학은 디테일한 면에서 각자 차이가 있지만 이런 SF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경고하는 내용은 환경보호의 중요성과 과학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다. 두 가지 모두가, 아니면 최소한 둘 중의 하나가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인류에게 절망과 카오스를 가져올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황인 이유야 정치적인 탓이 가장 크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인터넷뱅킹으로 은행지점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가운데 전자은행이 출범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아날로그 은행 자체마저도 위기를 맞은 상황만 봐도 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학, 즉 기계가 사람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과연 그게 행복과 직결되고, 그 거듭된 진화가 희망을 가져오리란 기대심리는 착각이란 경고다.
기억의 조작은 폴 버호벤 감독의 걸작 ‘토탈 리콜’(1990)에서도 다뤄진 바 있고, 리들리 스캇 감독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 인간다운가, 기계가 더 인간다운가’라는 철학을 심오하게 물은 바 있다. 결국 이런 철학적 SF영화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에 빠진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드는 편견과 망상의 ‘지배계층’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NGO 단체나 뜻있는 소수가 동물의 멸종을 막고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보상 없는 땀을 흘릴 때 재벌과 권력추종자들은 오로지 집단이기주의라는 광신적 이데올로기로 사람과 사람이 사는 환경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덥다고 에어컨을 세게 틀수록 미래의 인류가 살아갈 환경은 더욱 척박해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향후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게 비록 바둑만은 아닐 것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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