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형진 "내게 연기란 늘 살얼음판 같다"[인터뷰]
OSEN 이소담 기자
발행 2016.03.08 10: 14

 배우 공형진(46)은 올해로 26년 차 배우다. 살아온 날의 반 이상을 배우로 살아온 그는 아직도 카메라 앞에선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란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단 한 번도 안도한 적이 없지만, 그런 긴장감에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공형진. 연기 베테랑인 그가 들려준 연기학개론엔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 묻어난다.
공형진은 지난 달 28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극본 배유미, 연출 최문석)에서 야망이 넘치는 약역 민태석으로 출연해 열연을 펼쳤다. 민태석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복수심으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야망을 위해 악행에 악행을 거듭했다. 이를 통해 공형진은 지금까지 맡아온 배역 중 가장 웃음기를 덜어낸 악인을 연기하게 됐다.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던 배역이지만 공형진은 “시원한 마음보다 서운하고 섭섭하다”는 종영 소감을 전했다. 그는 “벌써 끝나나 싶었다. 3개월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일 정도로 ‘애인 있어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도 그런 것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공형진은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특히 대놓고 악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에게 지금껏 해보지 못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일 터. 공형진은 민태석에 대해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이렇게 대놓고 악역을 연기해본 적이 없다”며 “모든 사람과 대척하는 사람이니까 나름 배우로서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주말드라마 악역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달라진 주변 공기도 느꼈단다. 그는 “식당을 가든 어딜 가든 어머님들이 ‘어떻게 나쁜 짓을 하냐’고 하시더라. 또 하루는 저희 동네 주민이 지나가다가 ‘민태석 씨 잡히지 마요, 잘 도망가요’라고 하셨다. 하하. 재밌더라”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극중 민태석은 첫 악행을 시작으로 점점 더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나를 막으면 또 하나가 송곳처럼 빠져나왔고, 이제는 악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빠졌다. 자신이 파놓은 수렁에 빠져버린 민태석을 연기하기 위해 공형진은 회를 거듭할수록 멍해지는 눈빛에 포인트를 뒀다. 그는 “점점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민태석이라고 마음이 편했겠나”며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대사 치기 전에 멍하게 볼 때가 있다. 자신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임기응변이 계속 되니까 더 큰 파행이 되는 상황을 눈빛을 통해 점층적으로 느끼게끔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연이 있다고 해서 악역을 미화할 수는 없는 것. 공형진 역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말이 있지만 어쨌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이해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다만 본인은 악행을 저지르는 데에 있어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을 거다. 내 것들을 지키고 내가 이룬 것들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렇게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다”고 밝혔다.
어느덧 연기에 뛰어든 지 26년이 지났다. 그 사이 수많은 후배들을 키워온 공형진이지만 여전히 연기와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긴장감이 곧 지금을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늘 살얼음판 같은 위기감에 산다. 나는 톱스타도 아니고 한류스타도 아니고 그냥 연기자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서 연기로 밥을 먹고 사는데 욕은 안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연기하면서 안도감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작품 끝나기 전에 작품이 안정해지면 불안하다. 늘 위기감에 살고 당연히 연기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가장 편안한 일이라고. 그는 “연기할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하고 즐겁다. 상대방에게 누를 끼치진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공형진은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마무리한 지금 이 순간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현재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앞두고 있고, 재작년 찍어놓은 저예산 영화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뷰 중간 공형진은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적이더니 영화를 위해 특수분장한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신인배우만큼이나 설레 보였으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반짝였다.
원래 꾸준함이 더 어려운 법이다. 26년차 배우의 치열한 연기학개론은 후배 연기자들뿐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진 그 어떤 이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besodam@osen.co.kr
[사진] 시그널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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