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감독 "국민첫사랑, 민폐녀로 만들면 안되잖아요"[인터뷰]
OSEN 김경주 기자
발행 2016.02.23 14: 45

영화 '건축학개론'의 수지, '늑대소년'의 박보영의 뒤를 이을 '국민 첫사랑'이 나타났다. 오랜 시간 남성들의 마음은 물론, 여성 관객들의 아련한 추억을 자극할 '국민 첫사랑'의 계보를 이을 주인공은 영화 '순정' 김소현. 
'순정'은 라디오 생방송 도중 DJ에게 도착한 23년 전 과거에서 온 편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애틋한 첫사랑과 다섯 친구들의 우정을 담은 감성 드라마. 다섯 친구들의 우정은 물론이거니와 범실(도경수 분)과 수옥(김소현 분)의 풋풋한 첫사랑을 담아냈다.
극중 김소현은 '국민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귀여우면서도 청순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르다.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절뚝이는 다리가 있지만 쉽사리 주변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은 채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냥 가냘프고 여리기만 한 '국민 첫사랑'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샤랄라'한 의상도 없다. 레이스 따윈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 입은 치마도 바지가 함께 붙어 있는 치마바지다. '국민 첫사랑'하면 흔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하얀 원피스'는 '순정'엔 없다.
이는 모두 '순정'의 메가폰을 잡은 이은희 감독의 연출 의도 때문이다. 남자들의 판타지로 만들어낸 '국민 첫사랑'이 아닌, 여자들도 사랑할 수 있는 '국민 첫사랑'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게 이은희 감독의 설명이다. '민폐녀'보다는 '주체적인 여자' 설정 속에서도 지켜주고 싶은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던 이은희 감독 덕분에 '순정'은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첫사랑'을 탄생시켰다.
다음은 이은희 감독과의 일문일답.
- '순정',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 연출을 의뢰받았을 당시에는 '17살 친구들이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우정으로 헤쳐나가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내가 멜로를 첨가한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힘든 일을 우정으로 헤쳐나가는 것은 가장 큰 뿌리라고 생각해 가지고 갔다. 
- 왜 멜로를 첨가하게 된 건가.
▲ 과거의 기억을 추억할 때 그 기억들이 재구성되고 그러지 않나. 나 같은 경우 내 추억을 돌아봤을 때 기억해보고 싶은 감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첫사랑, 우정, 의리 그런 단어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순정'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는 것 같더라. 이런 '순정'한 감정들을 다 풀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첫사랑이라는 멜로를 넣게 됐다. 
- 배경이 외딴 시골 마을도 아니고 섬이다. 굳이 섬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 섬이라는 곳이 고립된 곳이고 외딴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떨어져 있고 고립됐다는 것의 주체는 육지이지 않나. 거꾸로 보면 그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육지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배경이 1991년인데 당시 육지에는 개구리 소년 사건, 범죄와의 전쟁 선포 등 사회적 이슈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에서 상관없는 평화로운 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여자라 여자 주인공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멜로 영화 속 첫사랑 이미지는 남자의 시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여자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이 항상 남자 시선이 위주인데 여자가 봤을 때 지지해주고 싶은 여자, 발이 불편하지만 의지만 하는 게 아니라 바다에 뛰어들어서 수영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 하지만 정형화된 '첫사랑' 이미지를 아예 빼지는 않았는데.
▲ 첫사랑 이미지를 다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상업영화니까(웃음). 하지만 절대 '민폐녀'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수옥이가 극중 사랑고백을 먼저 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남자들이 멜로 영화를 풀었을 때랑은 좀 다른 여자를 만들고 싶었다. 
- '순정' 촬영 현장 공개 때 새까맣게 그을린 김소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예쁘긴 하더라.
▲ 극중 수옥이 치마를 한 번도 안 입는다. 의상팀한테 요구했던 건 레이스나 시폰, 꽃무늬 같은 것들 다 안 된다고 했다. 치마도 안 된다고 했다. 첫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의상이나 아이템들을 다 안 된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입기 편하고 말이 되는 옷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성스러운 아이템을 거둬내겠다고 한 건 김소현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얼굴이 클래식한 미안이라고 생각한다. 미인상을 잘 살리려면 부가적인 장치들을 거둬내야 되려 얼굴이 보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킨 톤이 현실적으로 어둡다 하더라도 얼굴에는 생동감이 돌았다. 멜로는 얼굴이 액션이니까 잘 살아나지 않겠나 싶었다. / trio88@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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