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남궁민 "대상 수상?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인터뷰]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6.02.23 13: 55

 사실 남궁민을 인터뷰한다기에 내심 두려운 마음이 컸다. 최근 종영한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유아독존에, 아전인수인 ‘악역 끝판왕’ 캐릭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달랐다. 훈훈한 미소만큼이나 따뜻했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남궁민은 23일 오전 서울 논현동 935 사옥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연기를 하면서 제가 배역에 어울리는지 아닌지 그런 감이 오는데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았다. 어떻게 보면 그게 모두 감독님이 덕분이다. 일주일에 70분짜리 2편을 지휘하면서 배우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셨고 믿음을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다음에 이창민 감독님이 저를 불러주시면 어떤 배역이든 관계없이 또 같이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남궁민은 사실 ‘리멤버’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역대급 악역으로 손꼽히며 극 전체를 아울러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난 해 방송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이후 다시 한 번 악역을 선택한 건데, 연이은 악역이 진부하다는 평가를 얻을 걸로 예상됐지만 180도 다른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하며 이른바 ‘악역 끝판왕’ 자리에 올랐다.

남궁민은 ‘리멤버’ 속 남규만을 만나 물오른 연기력을 뽐냈다. 실제 성격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 본래 연기 잘하는 배우로 손꼽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마친 남궁민을 만나 촬영 뒷이야기부터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봤다.
-극중 남규만은 초반에 죽는 캐릭터였는데 후반부까지 살아남았다.
“좋았죠. 사실 이 역할이 제가 하겠다고는 했는데 처음엔 비중이 작은 역할이었다. 하지만 캐릭터가 좋아서 배역이 중요하진 않았다. 어떻게 다를 게 표현하는가가 문제였다. 항간엔 남궁민이 너무 악역만 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달랐고 또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제된 분노가 아니라 불 같이 뿜어져 나오는 악역을 해보고 싶었다. 제가 너무 나쁜 짓을 하고 다녀서 미안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기분은 좋았다.”
-고구마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실 작가님과 배우들은 소통을 하지 않는다. 작품을 하는 내내 연락을 해본 적이 없다. 대신에 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작품했던 다른 감독님이 섭섭하시겠지만 이 감독님이 최고였다. 남규만이라는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을 해주면서 어떻게 나갈지 의논을 해주셨다. 그래서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길을 잘 잡은 것 같다. 캐릭터가 길을 못 잡으면 이리저리 가서 힘든데 감독님 덕분에 너무 잘 해온 것 같다. 어떻게든 고구마가 아닌 드라마를 하고 싶었는데 끝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되게 잘 마무리가 됐다고 생각을 한다. 너무 만족스럽고 너무 좋다.”
-기존의 악역과 차별점을 두려고 했나.
“14부를 찍을 즈음해서 한차례 위기가 왔었다. 연기 패턴을 너무 무겁고 무섭게만 가면 안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가면 시청자들이 보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재미있게 하려고 심각한 분위기 속에 어설픔을 넣어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 부분을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
-남규만이 저지른 악행 중 어떤 죄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나.
“남규만은 정말 X쓰레기다.(웃음)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남에게 악행을 하면서도 그게 나쁜지 모르는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나쁜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걸 연기하는 게 힘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힘들지 않게 됐다.”
-대본에 충실하는 편인가.
“이 드라마엔 애드리브가 많았다. 저는 애드리브를 잘한다고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번에 유달리 많이 치게 됐다. 스태프가 제가 남규만이라는 사실을 믿어주신 덕분이다. 대본에 없었지만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대사가 튀어나왔고, ‘아 이 거지 또 따라왔어’ ‘그래 나 잡아봐라’ 등이 그랬다. 제 마음대로 해서 작가 선생님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저를 믿어주셨기 때문에 그동안 큰 얘기를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드라마를 끝낸 소감.
“사실 다른 현장에서는 여기저기서 고성이 나오고 피곤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번 현장은 몸은 너무 피곤했지만 스태프와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아서 그런지 너무 좋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악역 끝판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감독님이 제 연기에 대한 타당성을 심어주셨다.”
-‘베테랑’ 조태오의 업그레이드라는 말도 생겼다.
“비슷하지만 저는 비슷하게 안했던 것 같다. 업그레이드라기보다 연기를 하는 배우가 다르고 극중 회사 이름도 좀 다르고(웃음) 아버지도 다르고, 설정만 비슷했지만 모든 게 달랐다. 재벌가라는 설정 때문에 비슷할 수 있으면서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고 시청자들이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다. 제가 뭐 조태오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말을 자평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악역을 연기할 때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은데. 어디서 에너지가 발산되나.
“사실 화내기가 너무 쉽지 않다. 연기하다가 진짜 죽겠다 싶었다. 소리를 하도 지르니까 성대가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화 연기를 종류별로 마스터 한 것 같다.(웃음) 시언이와 둘이 미리 합을 짰는데 호흡이 잘 맞았다. 시언이도 아이디어를 잘냈다.”
-데뷔한 지 벌써 17년 차다. 아직도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나.
“당연히 그렇다. 새 작품이 들어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저는 극중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연구를 하진 않는다. 가령 그 사람의 하루를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 디테일 속에 캐릭터가 나오는 것 같다. 남규만을 위해 역대 악역들이 어땠는지 찾아보지는 않았다. 배우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작업 자체가 힘들고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촬영장은 점점 편해지는데 연기하는 건 점점 더 힘들어진다. (데뷔 초반에는)언제 부르나 조바심 냈었는데 이제는 촬영장은 편해졌는데 연기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
-이번에 시청자들의 평가 중가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이 있나.
“연기자에게 최고의 찬사는 연기를 잘한다는 말이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기분이 좋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연기자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왔는데 시청자분들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올해 대상을 기대하나.
“저는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다. 물론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겠지만 내가 연기를 잘했는데 당연히 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들과의 호흡 어땠나.
“친구들이 참 바르고 좋은 친구들이라 합이 잘 맞았다.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인성도 별론데 연기하는 자세도 별로면 같이 일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승호, 시언이 등 친구들은 모두 착하고 좋아서 연기하기 좋았다.”
-유승호에게 윽박질를 때 미안하지 않았나.
“이 친구도 연기 내공이 대단하다. 현장에서 만나면 인사성이 밝지만 갑자기 슛에 들어가면 곧바로 달라진다. 연기하는 자세가 정말 좋다. 그래서 덕분에 저 역시 몰입이 잘 됐다. 박성웅 형님도 연기를 오래하시고 연기를 대하는 마인드가 좋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연기를 대하는 마인드가 좋아서 편안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나.
“아직 잘 모르겠다.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이제 드라마에서의 악역은 그만 해야 되지 않을까. 장르를 바꿔서 악역을 하면 리얼하게 할 수 있는데, 드라마에선 악역은 어느 정도 정점을 찍은 것 같다.”
-로맨스는 어떤가.
“어떤 역할이든 시켜주시면 하겠다.(웃음) 역할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고, 작품이 좋으면 무조건 하고 싶다. 이제는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다른 역할을 맡아서 ‘또 다른 사람이네?’라는 반응을 듣도록 하겠다.”
-‘리멤버’를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신뢰를 얻은 것 같다. 내가 남규만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믿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이 제게 와서 ‘나 엄청 기대하고 왔어. 이 장면 어떻게 할 거야? 화내는 거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보셨다. 덕분이 힘이 됐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오해하시면 안 된다. 처음에 착한 역할만 했을 때는 남궁민이 어떻게 나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요즘엔 또 반대로 생각하시지 않나.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웃음)”
-드라마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남규만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이 캐릭터에서 빠져나올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분도 계시는데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제 안에 열정이 자만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purplish@osen.co.kr
[사진]935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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