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 '동주'에서 '시'만 듣지 마세요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6.02.17 14: 27

 영화 '동주'(이준익 감독)는 여운이 깊은 영화다. 흔들리는 흑백화면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 그 때 그 시절로 관객들을 데려가고, 슬픔에 잠긴 앳된 강하늘, 박정민의 얼굴이 도장처럼 보는 이들의 마음에 찍혀 푸른 흔적을 남긴다. 강하늘의 내레이션으로 처리된 윤동주의 시들은 어떤가? 너무나 익숙했던 시들이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들로 바뀌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귓가를 맴돈다. 
5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작비로 이런 양질의 영화를 만들어 낸 데는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과 연출을 한 이준익 감독의 공이 컸다. 특히 수많은 흥행 작품을 쏟아내며 '대가'로 통했던 이준익 감독은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예술성과 효율성을 모두 놓치지 않는 전략적인 연출로 '동주'라는 의미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윤동주의 사촌이자 단짝 송몽규의 삶을 함께 그리며 그와의 관계 속에서 윤동주라는 인물을 조명했다. 왜 많은 시인 중 윤동주의 시인이었을까? 이준익 감독은 많은 시인 중 한 명을 고른 것이 아니라, 그냥 윤동주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가 시인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준익 감독이 윤동주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시'가 아니었다. 시는 분명 윤동주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청년 윤동주가 살았던 삶,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이준익 감독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동주'(이준익 감독)의 윤동주 시인 서거 71주기 기념 특별GV에 참석해 작품에 대해 관객과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윤동주의 육촌인 윤형주와 송몽규의 조카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그는 "이 영화는 시를 들려주기 위해 찍은 게 아니다"라며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해자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가해자에 대한 정확하고 논리적이고 합당한 지적, 부도덕성에 대한 추궁을 게을리했다. 우리의 억울함만 반복적으로 호소했다. 그게 반쪽을 안 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유럽을 생각해보자. 독일 패전 후에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 등 주변 국가가 그 부도덕성을 끝까지 주장하고 문책했다. 그래서 반성해 독일이라는 나라가 20세기 인류문명에 기여한 국가가 됐다"며 "후반부에 동주와 몽규가 고등형사의 군국주의적인 말의 모순을 발견하고 깨는 신이 있다. 그 신을 위해 이 영화를 찍었다. 그 부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실제 영화 말미에 죽음을 앞둔 윤동주(강하늘 분)와 송몽규(박정민 분)는 일본 고등형사에게 심문을 받는다. 죽음을 앞둔 상황, 두 젊은이는 거짓 자백서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하는 고등형사(김인우 분)에게 그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항의한다. 온몸은 엉망이 됐지만, 이들의 모습에서는 기개가 넘쳐난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최대한 이성적으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슬픔을 강요하는 것 같은 부분은 일부러 빼기도 했다고.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다는 그의 표현처럼, 영화는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어떤 삶의 과정을 살아왔는지, 어떤 시간들을 어떻게 뚫고 지나 왔는지 묵묵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 '동주'는 뭉클한 영화임이 분명하지만, 단지 그것에 슬퍼하고 끝나기에는 아까운, 기억할 만한 것들이 많은 작품이다. /eujenej@osen.co.kr
[사진] '동주' 포스터,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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