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반성보다 복귀가 중요한 KBL ‘이상한 징계’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5.10.30 06: 47

선수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보다 경기복귀가 더 중요한 것일까.
현역선수들의 불법스포츠도박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칼을 뽑았다. 재정위원회 결과 KBL은 프로 입단 후 도박을 한 안재욱(28, 동부), 이동건(25, 동부), 신정섭(28, 모비스)을 제명했다.
대학시절 도박했으나 베팅액이 커 약식기소 된 전성현(24, KGC)은 54경기 출전금지 징계가 내려졌다. 정규시즌 아웃이다. 김선형(27, SK), 오세근(28, KGC), 장재석(24, 오리온) 등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7명은 20경기 출전금지다. 도박한지 5년지 지나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류종현(29, LG)은 10경기 출전금지를 받았다. KBL은 이들 선수들에게 각기 다른 제재금과 사회봉사시간도 명령했다.

▲ 류종현 불법도박사실 알고도 경기출전 허용 
재밌는 것은 선수마다 차등징계를 한다는 것. 프로데뷔 시 도박사실을 자진신고했던 김선형의 제재금을 없애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KBL에 따르면 경기 출전정지 횟수는 지난 9월 8일 ‘기한부 출전보류’ 결정에 따라 현재까지 출전하지 못한 경기수를 포함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따라서 20경기 출전금지를 받은 김선형은 5경기를 더 결장한 뒤 11월 21일 동부전부터 출전이 가능해졌다. 오세근은 4경기를 더 쉬고 11월 14일 삼성전에 돌아온다. 장재석은 11월 18일 SK전이 복귀다. 같은 수위의 징계라도 복귀일은 각기 다르다. 11월 18일 SK 대 오리온전에 장재석은 있지만 김선형은 없다.
그런데 KBL은 기한부 출전보류 명단에서 제외됐던 류종현에 대한 10경기 출장정지는 29일부터 적용된다고 발표했다. 류종현은 올 시즌 이미 올 시즌 2경기에서 총 5분 41초를 소화했다. 물론 그가 LG의 핵심전력은 아니다. 문제는 KBL은 이 선수가 불법도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고, 경기에 정상적으로 뛰도록 방관했다는 점이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수사과는 지난 9월 7일 불법스포츠도박에 가담한 프로농구선수 12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공소시효 5년이 지나서 수사선상에서 제외한 1명이 있다고 밝혔다. KBL은 공소시효가 지난 류종현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징계에서도 제외했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KBL은 이미 뛰도록 허락해준 류종현의 이름을 밝히고 뒤늦게 징계를 내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류종현이 도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뛰게 한 KBL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 일단 복귀 먼저...봉사활동은 차차 나중에
KBL은 선수들에게 60~120시간의 봉사활동을 이수하도록 징계를 내렸다. 사회봉사는 시즌 중인 것을 아주 친절하게 배려하여 차기시즌 선수등록일(2016년 6월 30일)까지 이행하도록 했다. KBL은 120시간을 받은 선수는 60시간 재능기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정부산하 지원기관단체를 통해 50%씩 분할 봉사하도록 지정 명령했다.
한마디로 봉사활동을 이수하지 않아도 시즌복귀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추승균 감독의 말처럼 ‘봉사활동은 차차 나중에 해도 된다’는 것. 일단 선수들이 코트에 복귀해서 팀 성적에 일조한 뒤 봉사활동은 시즌이 끝나고 나중에 하면 된다는 말이다. 불법스포츠도박에 염증을 느낀 팬심이 프로농구에서 완전히 떠나려는 급박한 시점에서도 당장의 팀 성적을 더 중시 여기는 훈훈한 풍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KBL도 사정이 있다. 정부산하 지원기관단체를 통해 봉사활동을 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루에 할 수 있는 봉사활동도 최대 4시간 정도다. 선수들이 복귀까지 남은 2주 정도의 시간에 120시간의 봉사활동을 모두 마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일부 선수들은 복귀까지 남은 시간 최대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반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수들의 봉사활동을 정부로부터 공인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프로농구의 주인은 돈을 주고 티켓을 구매해주는 팬들이다. 선수들이 코트에 서기 전까지 팬들에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봉사활동을 시즌이 끝난 뒤에 차차 해도 된다면 과연 어떤 팬들이 선수들이 반성했다고 생각할까.
당장 우승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1승을 더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KBL이 큰 그림을 본다면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봉사활동을 모두 마친 뒤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 그래야 선수들도 더욱 떳떳하게 코트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구단과 선수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면 KBL의 방침과 상관없이 봉사활동을 모두 마친 뒤 코트로 돌아오는 것은 어떨까. 그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팬들의 마음은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김민구 솜방망이 징계, 나쁜 선례 남겼다
KBL도 선수들이 봉사활동을 모두 마치고 복귀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음주운전을 한 김민구에게 이미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KBL은 지난 9월 8일 오후 재정위원회를 소집하고 지난 2014년 6월 7일 음주운전 사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김민구에 대해 경고 조치와 함께 사회봉사활동 12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경기출전금지나 벌금은 없었다. 하나마나한 솜방망이 징계라는 의견이 많았다.
김민구는 불과 나흘 뒤 SK와의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다. 3쿼터 후반 추승균 감독은 김민구를 코트로 내보냈다. 김민구는 3점슛 하나 포함, 8점, 3리바운드로 활약했다. 아직 100%는 아니지만 김민구는 격렬한 움직임을 소화할 정도로 많이 회복된 모습이었다.
경기 후 추승균 감독은 김민구의 봉사활동에 대해 “차차 나중에 하면 된다”고 말해 파장을 키웠다. KCC는 13일 전주에서 KGC를 상대로 92-88로 짜릿한 첫 승을 신고했다. 김민구는 역시 12명의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가 뛰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뛸 수 있는 상태로 벤치에서 대기했다.
팬들은 징계를 모두 이수하지 않은 김민구의 출전을 용서하지 못했다. 온갖 비난이 뒤따랐다. 결국 구단은 9월 19일 오리온전을 마지막으로 김민구를 기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김민구는 봉사활동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뛰기 전에 봉사활동 먼저 했더라면 애초에 없었을 잡음이었다.
KBL 관계자는 “KCC와 김민구 징계에 대한 형평성을 고려했다. 시즌 중에 봉사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려는 목적의 봉사활동이라면 차라리 안하는 편이 낫다. 선수들이 설령 시간을 채우더라도 반성의 진정성을 팬들이 알아주리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선수들이 코트에 복귀하더라도 과연 팬들이 용서를 해줄지 우리도 고민이 많다”고 걱정했다.  
▲ 좋은 이미지는 평소에 만드는 것
지난 2004년 NBA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의 경기서 선수가 관중을 폭행하는 사상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론 아테스트(현 메타 월드피스)는 자신에게 맥주컵을 던진 관중에게 달려들어 그를 폭행했다. 당시 총재였던 데이빗 스턴은 아테스트에게 시즌아웃의 중징계를 내렸다. 흑인선수들이 많이 뛰는 NBA는 마약 등을 연상시키는 폭력적인 리그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됐다.   
주목할 것은 NBA의 대응이다. 스턴은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2005년 ‘드레스 코드’를 도입했다. 선수들이 경기 전후 이동하거나 부상으로 벤치에 있을 때 반드시 정장 등 단정한 옷차림을 하도록 한 것. 힙합스타일의 옷이나 금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는 착용을 금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반발했다. 간접광고 기회를 잃은 후원기업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경기 후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이동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설문조사결과 NBA전체의 이미지도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NBA는 ‘NBA Cares’라는 봉사활동 캠페인에도 적극적이다. 크리스마스에 선수들이 어린이들에게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고, 고아원에서 급식을 나눠주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선수들이 농구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비만인 아동들이 늘어나자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덕분에 NBA는 미국 4대 메이저스포츠 중 가장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리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쌓은 긍정적 이미지는 마케팅 실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는다.
최근 NBA는 백악관과 연계해 ‘마이 브라더스 키퍼’(My Brother`s Keeper)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NBA 선수들이 고향 팀의 어린 선수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주며 그들을 선도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지난 28일 고향 시카고에서 NBA 개막전을 관람한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NBA의 ‘마이 브라더’ 캠페인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NBA는 아주 좋은 일을 하고 있다. NBA 스태프들은 스폰서 관리도 아주 잘하고 있다. 크리스 폴,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르브론은 애크론(고향)에 가서 수 천 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NBA의 이미지 제고에 큰일을 한 것”이라며 NBA를 칭찬하기도 했다.
반면 KBL은 특정한 사건이 터졌을 때 해당 인물들을 벌주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자정결의대회처럼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가 전부다. 지금 팬들은 프로농구하면 ‘도박’과 ‘승부조작’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연 KBL은 평소에 리그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무슨 노력을 해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NBA 케어스에 참여하는 제레미 린, 폴 피어스 /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류종현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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