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전자랜드가 대신 챙긴 대기록, KBL은 뭘 했나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5.01.07 07: 35

전자랜드가 김주성(36, 동부)의 대기록을 챙길 때 한국프로농구연맹(KBL) 관계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
김주성은 6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벌어진 2014-2015시즌 KCC 프로농구 4라운드 인천 전자랜드전 1쿼터에서 역사적 리바운드를 잡았다. 통산 3830번째 리바운드로 김주성은 조니 맥도웰(44, 3829개, 평균 12.1개)을 3위로 밀어내고 단독 2위에 등극했다.
대기록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하지만 기록이 더 빛나기 위해서는 가치를 제대로 알고 기념해주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전자랜드는 단 한 번도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고 뛴 적이 없는 상대선수 김주성을 예우하는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다.

김주성의 기록이 달성되자 전자랜드는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전광판 계시를 통해 관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전자랜드 구단은 잠시 경기를 중단하고, 기록달성이 된 공에 직접 김주성이 사인을 하도록 한 뒤 경기공인구를 교체했다. 전자랜드는 ‘기가 빠져 나간다’는 속설 때문에 시즌 내내 공인구를 애지중지 아낀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록을 달성한 김주성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공을 내줬다. 
축하는 하프타임에도 이어졌다. 유도훈 감독이 직접 나서 김주성에게 꽃다발과 기록달성 공을 건넸다. 김영만 감독까지 합세해 세 명이 나란히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은 훈훈했다. 인천 팬들도 김주성에게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성숙한 관전태도를 선보였다. 스포츠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됐다.
전자랜드가 축하행사를 위해 금전적으로 지출한 것은 농구공 한 개, 꽃다발 하나, 기록달성판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무형의 가치와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상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농구단의 스포츠맨십과 긍정적 에너지는 전자랜드 모기업 이미지까지 동반 상승시켰다.   
반면 KBL은 김주성의 기록달성을 뻔히 예상하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언론사에서 수차례 문의를 해도 '리바운드는 3000개 단위로 시상한다'는 원칙을 고집할 뿐이었다. 개수가 아닌 순위로 시상기준을 세우기 애매하다는 이유로 특별상 시상도 고려하지 않았다. 꼭 상을 주지 않더라도 전자랜드처럼 진심을 담은 꽃다발 하나조차 없었다.
불과 지난 12월 22일 주희정의 정규시즌 900경기 출전을 창원 현장에서 챙기지 않고 다음 경기서 ‘지각 시상’해 원성을 샀었던 KBL이다. 하지만 학습효과가 전혀 없는 것일까. 이날 서울 논현동 KBL 사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천에서 김영기 KBL 총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만하면 쇠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
사실 전자랜드 구단도 김주성의 대기록을 축하해주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남의 선수를 그렇게까지 챙기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좋은 뜻으로 축하를 해주고 경기에서 패할 경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부담도 심했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이익수 단장을 중심으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축하를 해주자는 결론을 냈고, 동부에 뜻을 전했다. 먼저 말을 꺼내기 부담스러웠던 동부도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농구코트서 감동적인 장면이 극적으로 연출이 됐다.
경기 후 김주성은  “경기를 중간에 끊어서 (공에 사인을) 하기가 어려운데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님과 인천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별 느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기록을 달성하고 나니 기쁘다. 농구를 정말 사랑하는 팬들이 많이 오셔서 축하해주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감격했다.
KBL이 적극 나서서 진행했어야 할 일을 전자랜드가 대신했다. 이런 숨은 노력이 더해져 김주성의 대기록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주희정의 경우처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미국프로농구(NBA)를 안방에서 언제든 시청할 수 있는 세상이다. 프로농구 관중들의 의식수준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다. 현장의 구단들도 이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KBL의 행정력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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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박준형 기자 soul1011@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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