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작전타임] 10개월을 기다린 신다운의 세리머니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4.12.21 06: 55

신다운(21, 서울시청)은 좋은 말로 표현하면 개성이 톡톡 튀는 선수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논란의 중심에 서기 쉬운 선수다. 인터뷰를 어려워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마이크 앞에 서면 할 말이 많은, 개성 넘치는 대표팀의 '입'이지만 간혹 조심스러운 사안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시즌 신다운과 함께 대표팀에서 뛰었던 주장 이한빈(26, 성남시청)은 그를 가리켜 '돌아이로 통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다운의 그런 성격은 타고난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그런 솔직함은 때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번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에서 보여준 노진규를 향한 세리머니처럼 말이다.
신다운은 20일 안방에서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1500m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 종목 2연패를 달성한 후 노진규(22, 한국체대)의 얼굴이 그려진 사진을 꺼내들고 가면처럼 둘러쓴 채 시상대 위에 올라갔다. 골육종암으로 투병 중인 선배 노진규에게 금메달을 바친다는 뜻이 담긴 세리머니였다.

"진규형 주종목이 1500m이니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세리머니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3차 대회 끝나고 준비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기분이 좋고 무척 기뻤다"고 이야기한 신다운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털어낸 듯한 밝은 미소였다.
▲ 형 대신 '에이스' 역할 잘 해냈어야하는데...
신다운의 부채감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준비하던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신다운은 대표선발전에서 노진규를 제치고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했다. 노진규는 당시 개인전 출전이 불발되고 계주팀으로만 올림픽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새로 꾸려진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하기만 했다. 불안의 이유는 경험 부족이었다.
곽윤기(25) 이정수(25, 이상 고양시청) 등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을 경험한 베테랑 선수들이 줄줄이 대표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셨고, 올림픽 경험이 없는 젊은 피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맏형' 이호석(28, 고양시청)이 있었지만 경험과 패기가 조화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1년전 목동에서 열린 2013-2014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는 대표팀을 향한 우려를 부채질했다. 2차 대회 당시 한국 남자 대표팀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노골드에 그치며 안방에서 창피를 당했다. 당시 신다운은 부상과 감기 몸살의 여파로 목동을 찾은 팬들 앞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1000m에서는 예선에서 실격했고 5000m 계주에서도 5바퀴를 남기고 미끄러져 3위로 밀렸다.
이 부진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까지 이어졌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남자 대표팀은 노메달 수모를 겪으며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시를 돌이킨 신다운은 "지난해 서울에서 불운했었다. 오늘 만회한 것 같아 기쁘다"며 "그 때 진규형도 없고, 에이스 역할을 맡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 때문에 우리나라가 부진한 느낌까지 받았다"고 힘겨운 미소를 보였다.
▲ 이제야 겨우 형에게 연락할 수 있겠어요.
남자 대표팀의 부진 속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단연 노진규였다. 소치동계올림픽 개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난 겨울, 노진규가 골육종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표팀은 큰 충격을 받았다. 신다운은 "올해 1월 프랑스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도중에 진규형 소식을 들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의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형이 우리와 함께 훈련하고 경기에 나갔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000m와 1500m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안현수의 뒤를 이을 '쇼트트랙 차세대 황제'로 활약하던 노진규가 개인전은 물론 계주에도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은 대표팀을 향한 불안의 시선을 부채질했다. 노진규의 몫을 해내야하는 책임을 졌던 신다운은 특히 괴로웠다. 하지만 안팎에서 쏟아지는 불안과 우려보다도, 신다운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자신이 노진규가 이뤄내고 물려준 것들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신다운은 "그동안 형이 노력해준 결과에 내가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연락도 못하고 병문안도 못 갔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병문안 가서 형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답답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날 선보인 노진규 세리머니 역시 원래는 소치에서 하려던 것이었다.
"원래 이 세리머니는 올림픽 때 하려고 준비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올림픽에서 부진한 바람에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숙인 신다운은 "이제 (진규형에게)연락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웃어보였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1차 대회부터 이번 4차 대회까지 계주를 포함해 4연속 금메달을 목에 건 신다운은 상하이에서 열린 3차 대회에 이어 이 종목에서 2연속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과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료이자 형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까지 함께 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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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운(위) / 2012년 대표선발전 당시 김윤재-노진규-신다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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