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세계 6위’ 한국휠체어농구, 성적과 감동 모두 잡다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4.07.14 16: 20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란 이런 것이다. 한국휠체어농구가 장한 일을 해냈다.
한국은 14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2014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세계 8강 진입에 성공하며 6위라는 값진 성과를 얻었다.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단순히 기록이나 성적을 뛰어 넘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 역전 재역전...감동의 첫 세계 8강 진입

한국은 멕시코와의 첫 경기서 72-61로 승리하며 첫 단추를 잘 꿰었다. 영국에게 47-77로 참패를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아르헨티나를 55-46으로 잡았다. 2승 1패의 한국은 준결리그에 진출했다.
감동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한국은 일본전에서 60-58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살엄음 리드를 지키던 한국은 종료 1분 전 조승현의 골밑슛이 터지면서 승리를 장식했다. 강호 스페인에게 49-57로 패한 한국은 이란과의 준결리그 마지막 경기서 기적의 역전승을 거뒀다.
3쿼터까지 41-56으로 뒤졌던 한국은 패색이 짙었다. 3점슛을 넣기 어려운 휠체어농구에서 15점은 사실상 따라잡기 어려운 점수 차다. 하지만 한국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격했다. 4쿼터 종료 45초를 남기고 조승현의 결승슛이 터지면서 한국은 67-64로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장내 분위기는 마치 한국이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떠들썩했다.
한국은 4쿼터에만 28-8로 앞서는 기적을 연출했다. 아시아의 강호 일본과 이란을 모두 물리친 한국은 역사상 첫 세계 8강 진출의 쾌거를 거뒀다. 아울러 오는 10월 인천에서 벌어지는 장애인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전망을 밝게 했다.
8강전에서 한국은 우승팀 호주와 접전을 펼쳤지만 50-61로 무릎을 꿇었다. 3쿼터 막판 추격을 허용한 호주는 조승현의 휠체어높이가 규정을 어겼다며 항의를 했다. 이 여파로 조승현은 퇴장을 명령받았다. 그만큼 세계최고 호주까지 한국의 공격에 당황했다는 의미였다. 한국은 13일 열린 이탈리아와의 5,6위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57-63으로 아쉽게 패하며 최종 6위를 차지했다.
▲ 폭력으로 얼룩진 농구코트에 울린 경종
최근 농구코트는 폭력과 사기로 얼룩졌다. 국가대표출신 프로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옷을 벗었다. 스타출신 선수는 폭력, 사기 등 범죄를 저질렀다. 심지어 한 은퇴선수는 살인까지 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명문대 감독은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심판을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다가 사퇴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인된다는 생각에서 저지른 잘못들이었다. 태극마크가 주는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일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 또는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감 정도로 여겼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운동하면서도 도무지 만족을 몰랐다. 그러면서도 정작 국제대회서 국가를 위해 보여준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휠체어농구는 달랐다. 아무리 잘난 선수도 혼자서는 득점할 수 없는 것이 휠체어농구다. 5명이 하나가 되어 희생하고 협력해야만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을 했지만, 태극마크가 주는 자부심하나로 버티고 훈련했다. 코트 안에서는 세계의 강호들을 맞아 주눅 들지 않고 용맹하게 싸웠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뛴 선수들은 승리에 환호했고, 패배에도 당당했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이었다.
▲ 척박한 환경에서 핀 꽃...관심과 지원 절실하다
최근의 스포츠는 프로에서 아마까지 성적지상주의와 상업주의, 또 외모지상주의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 누구나 잘하는 것, 예쁜 것만 추구하는 세상이다. 또 그런 것들이 철저하게 돈으로 이용되고 있다. 순수한 스포츠맨십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순진무구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휠체어농구만 해도 그렇다. 장애인들이 하는 재활운동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지체 높으신 양반들이 ‘돈이 안 되는 운동을 왜 지원하느냐?’는 소리를 서슴없이 한다.
한국은 12일 호주와 8강전을 치렀다. 안방에서 열린 역사상 첫 세계 8강전이었다. 하지만 대중과 언론은 철저히 이를 외면했다. 대부분의 관중은 동원된 군인장병들이었다. 경기를 취재한 기자도 4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의 투혼에 모두 박수를 보냈다. 국가대표들의 투혼이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경기 후 한사현 감독은 기자들을 불러 모아 하소연을 했다. 우리나라에 휠체어농구 실업팀은 단 하나다. 다른 직업을 갖고 틈틈이 운동을 하는 선수도 있다. 김호영은 휠체어 제작업체 ‘휠라인’에 근무하며 운동을 병행한다고 한다. 이탈리아리그서 뛰는 김동현을 제외하면 다른 선수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사현 감독은 “관중석이 썰렁하고 언론에서 관심이 없어 늘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에 실업팀이 하나다. 더 늘어나야 한다. 우리도 외국처럼 장기시리즈를 해야 실력도 늘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장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에 대한 차이다 크다. 휠체어농구를 두고 ‘왜 선수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면서 어려움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프로리그가 운영되지 않으면서 세계 6위에 들 수 있는 구기종목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한국휠체어농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jasonseo34@osen.co.kr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 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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