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가슴속 태극마크를 꿈꾸는 포수가 있다. 일본 사회인 야구 명문 도요타 레드 크루저스에서 활약 중인 유원진(22, 일본명 류겐진)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불펜 포수이자 국제 업무 담당 스카우트로 활동 중인 유환진 씨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했다. 유원진은 “요미우리 실내 훈련장에서 아베 신노스케 전 감독님과 캐치볼을 하고 하라 다쓰노리 전 감독님의 무릎 위에 앉아 놀던 기억도 난다. 요미우리 에이스로 활약했던 스가노 도모유키(콜로라도 로키스) 선배님과 함께 러닝하는 모습이 신문에 나오기도 했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환경에서 야구를 접하고 있는지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경험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의 씨앗이 됐다. 그는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그런 경험 덕분에 확고한 목표를 가지게 됐다”며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께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힘드니까 안 하는 게 낫다’고 반대하셨다. 그래도 너무 하고 싶어서 계속 설득했고 결국 제 뜻을 받아주셨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아버지와 같은 포수였던 건 아니다. 내야수로 뛰던 유원진은 중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는 “원정 경기에서 포수가 부족해 감독님께서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포수로 전향했다"고 설명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포수는 유원진에게 천직과 같았다. 그는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었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웃었다.
프로 선수들의 공을 오랫동안 받아온 아버지는 아들에게 포수로서 화려함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먼저 가르쳤다. 유원진은 “아버지께서 포수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항상 강조하셨다. 화려함보다 내실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투수의 컨디션과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고 상대 타자의 반응을 항상 체크하라’고 말씀하셨다”며 “무엇보다 투수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포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하라 전 감독의 모교인 도카이대에 진학한 뒤 1학년 때부터 주전 포수로 뛰며 수비 능력을 인정받았다. 반면 타격은 풀어야 할 과제였다. 누구보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했지만 좀처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에 아버지가 다시 방향을 제시했다.
“노력하는 만큼 잘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는데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민이 많았는데 아버지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파워와 스피드를 끌어올려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해주셨다”.
당시 요미우리의 해결사로 활약했던 오카모토 가즈마(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탄탄한 체격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유원진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욱 많은 공을 들였고 변화는 타석에서 나타났다. 기존의 컨택 능력에 파워가 더해지면서 타구의 질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난해 춘계 수도대학리그에서 타율 3할8푼5리(39타수 15안타) 10타점을 기록하며 도카이대의 우승을 이끌었고 MVP와 포수 베스트나인을 동시에 차지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프로 진출 가능성도 있었지만 유원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일본 사회인 야구 최고의 명문 가운데 하나인 도요타에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린 뒤 당당하게 프로 무대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요타의 적극적인 러브콜과 하라 전 감독의 조언이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원진은 “어릴 때부터 프로에서 뛰겠다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프로 지명도 받을 수 있었지만 사회인 야구에서 제 능력을 더 끌어올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특히 도요타 구단에서 저를 높이 평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시기에 하라 전 감독님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누가 봐도 드래프트 1순위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프로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며 “아마 그 정도 레벨이 되지 않으면 프로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의미도 담겨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포수 유원진의 가장 큰 자신감은 수비에서 나온다. 그는 “포수는 수비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투수 리드, 블로킹, 송구 모두 자신 있다.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 좋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방망이도 빼놓을 수 없다. 유원진은 “타자로서는 찬스에 강하다고 자부한다. 득점 찬스가 오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주자를 모두 쓸어 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고 씩 웃었다.
유원진에게는 프로 진출과 함께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바로 태극마크다. 대학 대표팀에 발탁될 만큼 기량을 인정받았지만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 야구대표팀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마음속에 있던 태극마크를 향한 열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열정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유원진은 한국 대표팀에 자신이 보탤 수 있는 장점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만 야구한 선수들과 달리 저는 일본 야구를 계속 경험해왔다는 장점이 있다. 포수로서 수비 하나는 정말 자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표팀의 선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한국 야구팬들에게 유원진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슈퍼스타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사회인 야구 무대에서 프로와 태극마크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조용히 칼을 갈고 있다.
“도요타 레드 크루저스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제 이름을 알리는 건 결국 제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
일본에서 야구를 배우고 성장한 한국 국적의 포수. 유원진은 언젠가 자신의 가슴에 태극마크를 새기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포수 마스크를 쓴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