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타니 쇼헤이 입니다.”
지난해 3월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김하성의 금의환향 무대, 그리고 10년 7억 달러라는 세기의 계약을 맺은 오타니 쇼헤이의 LA 다저스 데뷔전이 동시에 열렸다.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이 일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오타니의 곁에서 통역은 물론 ‘영혼의 동반자’로 불린 미즈하라 잇페이의 충격적인 횡령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시리즈 도중 다저스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오타니의 계좌에서 돈을 빼돌려서 불법적으로 도박을 펼쳤기 때문.
미국 연방 정부가 불법 스포츠 도박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마권업자 매튜 보이어를 수사하던 도중 오타니의 이름이 언급됐고 실제로는 미즈하라가 불법 도박으로 거액의 빚을 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해당 사실을 추적하던 ‘ESPN’은 미즈하라와의 단독 인터뷰를 가졌는데, 미즈하라는 이때 “오타니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타니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게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난 빚을 갚기 위해 송금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오타니는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 묻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타니의 변호인 측이 즉각 반발하면서 오타니는 대규모 절도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이에 미즈하라도 “오타니는 도박 빚을 알지 못했고, 돈을 송금하지 않았다”고 번복했다. 미즈하라는 오타니는 절대 도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오타니 불법 도박 연루설에 선을 그었다.
결국 미즈하라는 지난 4월 연방 검찰의 의해 기소됐다. 당초 450만 달러(64억원)를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불법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연방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보면 미즈하라는 무려 1700만 달러(243억원)를 오타니의 계좌에서 불법으로 빼돌렸다. 좀도둑인 줄 알았더니 소도둑이었다.
또한 2021년 12월부터 2024년 1월 사이, 미즈하라는 약 1만9000여 건의 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져 4070만 달러(583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었다.

지난 2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연방 검찰은 미즈하라에 대해 4년 9개월의 금고형과 보호관찰처분 3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미즈하라 측은 “심각한 도박 중독으로 407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자신의 범죄를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1년 6개ㅑ월로 형을 감형해 줄 것을 요구했다.
25일, 북미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온라인 계좌 알림을 자신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로 연결해서 보안 절차를 뚫고 은행에 송금을 요청했다는 검찰의 증거 녹취 파일을 독점 공개했다.
녹취본에서 미즈하라는 은행 상담원에게 자신을 “오타니 쇼헤이”라고 태연하게 사칭했다. 그러면서 오타니 계좌의 인증 절차를 위한 6자리 보안 숫자가 미즈하라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계좌를 관리하면서 자신에게 모든 알림이 향하도록 설정해 놓았다는 증거다.
은행 상담원이 “최근 사기 시도가 증가하고 있어서 온라인 거래들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거래 목적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미즈하라는 “자동차 대출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후 수취인과 관계에 대해 “그는 내 친구다”라고 했다. 수취인은 미즈하라 자신이었다. 여러번 만났냐는 확인 질문에 여러번 만났고 앞으로도 송금할 계획이 있다고 태연하게 답변했다. 이렇게 오타니의 돈을 빼돌렸다.
미즈하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4년 9개월 양형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매체는 ‘미즈하라는 자신과 아내는 현재 일을 할 수 없고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배달원으로 일하려고 했지만 사진이 공개돼서 해고됐다고 밝혔다’라고 했다.

미즈하라는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많은 아시안인들과 일하고 계셔서 일을 그만두셔야 했다. 제 아내와 저는 계속 미행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외출할 때도 조심해야 했다”라며 “물론 모든 일이 제가 저지른 범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가족에게 이런 수치를 안겨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라며 현재 상황을 심리학자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18세 때부터 도박 중독이 시작되었다는 미즈하라는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항상 모든 것을 되찾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그냥 마음을 닫아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졌고, 계속해서 도박판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도박 중독에 대해 “피고(미즈하라)가 도박에 중독됐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행동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피고는 도박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비용에도 훔친 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피고의 범죄 동기는 도박 중독이 아니라 탐욕이었다”라면서 “오타니에게 자금을 장기간 훔친 것과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오타니의 에이전트와 재무 고문들에게 했던 무수한 거짓말은 피고가 오타니를 돕기 위해 고용됐다는 사실을 재신한 행동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오타니는 미즈하라에에 많은 일들을 일임하면서 통역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친구이자 멘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박 빚을 갚는 것 뿐만 아니라 오타니의 신용카드로 32만5000달러(4억7000만원) 상당의 오타니 야구 카드를 구매하고 오타니가 치과 치료를 위해 발행한 6만 달러짜리 수표를 개인 계좌에 입금하고 오타니의 직불카드로 지불한 사례들을 예로 들었다.
미즈하라는 다저스에서 50만 달러(7억원)의 연봉을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미즈하라는 이 금액이 “심각하게 저평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24시간 대기 상태이고 늦은 밤까지 일하며 잠을 희생했다고 했다. 오타니의 식료품 쇼핑, 우편물 확인, 자전거 수리, 오타니의 가족이 있는 이와테현 동행, 반려견 진료, 식사 동행, 일본 및 미국 변호사와 혼전 계약서 조율 및 회의 참석 등 일상적인 업무도 처리했다. 가장 긴 휴가는 연말연시 4일 정도였고 아내와 보낼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즈하라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저는 오타니 씨를 야구 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존경한다. 제가 그의 신뢰를 배신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설명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