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혁’ 페이커가 한 계단 업그레이드 됐다. 이제는 ‘갓상혁’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중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로 ‘대상혁’ ‘불사대마왕’ 애칭을 얻은 페이커는 이제 신격화를 벗어나 올림푸스산 진짜 신의 반열에 오르는 분위기다. 신에 근접한 것도 아니고 신 그 자체라니, 페이커가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e스포츠 선수길래.
올해 한국 나이 29세, 내년에 설흔이다. 10대~20대 초반이 주축인 e스포츠계에선 환갑을 벌써 넘은 나이다. 당연히 페이커의 경력은 길고 화려하다. 꽃다운 17세 청춘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 세상의 미드를 휘어잡은 ‘앙팡테리블’로 명성을 쌓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량이 올라가서 20대 초반 정점을 찍는가 했더니, 중반부터는 원숙미와 노련함까지 더해 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는 중이다. 어린 시절의 페이커가 파격과 깜짝쇼로 주목을 끌었다면 지금은 안정적인 기조로 팀을 이끌다가 결정적 순간에 슈퍼 플레이를 펼치는 장인의 경지가 돋보인다.
새삼 페이커의 진가가 확인된 계기는 2024년 롤드컵 중국과의 결승전이다. 3일 새벽(한국시간) 수많은 관중들로 꽉 찬 영국 런던의 실내 경기장 O2 아레나. 한국의 T1과 중국의 빌리빌리 게이밍(BLG)이 맞붙은 결승전에서 페이커는 농익은 기량과 태산같은 평정심을 앞세워 중국에 3대2 역전승을 거두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경기가 끝난 후, 적팀 중국은 물론이고 지구촌 e스포츠 전문 매체들은 앞다퉈 페이커에게 찬사를 보냈다. 모든 슈퍼플레이를 앞세운우승컵을 놓고 맞붙은 에서 열린 2024 롤드컵 결승전 중국을 세트 스코어 3대2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GQAT는 괜히 GOAT가 아니다. 팀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더 돋보이는 게 바로 GOA(Greateat Of All Time, 역대 최고의 선수)의 의무이고 역할이라면 페이커는 이날 GOAT가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GOAT of GOAT’ 이상혁의 등장 무대였다.
이날 새벽 런던에 특파원으로 나간 후배를 돕느라 새벽 결승전 중계를 지켜보던 기자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1세트 BLG의 놀라운 기량에 좌절했다가 2세트에는 ‘역시 T1’이라며 잠시 안도의 한숨. 3세트에 ‘포기’라는 단어를 되뇌이다가 4, 5세트 페이커의 슈퍼 플레이 때마다 함성을 내질러 단잠에 빠졌던 아내를 깨웠다.
“아파트 주민들 놀라게 왜 그래요?” “미안 미안. 당신이 GOAT 페이커를 몰라서 그래.”
오전에 기사를 재송고하는 기자 옆에서 유튜브를 검색하던 아내가 한 마디 했다. “페이커가 그렇게 잘했다면서 사람들이 왜 페이커 욕을 해요?” “뭐라고? 오늘은 그런 사람들 없을텐데. 어디 봐” “여기 봐요. 페이커가 염소라고 여기저기 나왔어요.”
GOAT 페이커를 염소로 만드는 ‘겜알못’(게임에 관심없는 사람) 아내의 무지에 한숨을 내쉰 기자는 과거 일이 떠올랐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의 특파원으로 달라스에 살던 시절, 당시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박찬호가 난타를 당한 경기 취재를 마치고 우울한 기분으로 귀가했다. “당신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요?” “박찬호가 오늘 중요한 경기인데 잘 못던져서 그래” “어디다 던졌는데요?”
GOAT of GOAT ’신상혁’ 페이커씨. 제 아내가 몰라뵈서 정말 죄송합니다./mcgwrie@osen.co.kr
<사진> 영국 런던=고용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