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팀에서 준우승만 4번이다. 또 한 번의 잔인한 가을이 이렇게 지나갔다. 야구의 신이 있다면, 정녕 박병호(38·삼성 라이온즈)에게 우승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프로야구 삼성은 지난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치러진 2024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에 5-7 역전패를 당했다. 시리즈 전적 1승4패로 패퇴한 삼성은 KIA의 우승을 지켜봤다. 시즌 전 약체 예상을 깨고 기대 이상 성적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왔지만 준우승은 늘 잔인하다.
씁쓸하게 대구로 돌아간 삼성 선수단에는 박병호가 있었다. 박병호에겐 벌써 4번째 준우승이다. 넥센 소속이었던 2014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지만 삼성에 2승4패로 패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를 다녀온 뒤 2019년 키움 소속으로 5년 만에 우승 기회가 왔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4전 전패로 힘 한 번 써보지를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KT로 팀을 옮겨 지난해 다시 한국시리즈 문턱을 밟았지만 결과는 또 준우승. LG가 4승1패로 무려 29년 만에 정상에 오르면서 박병호는 또 가을 조연으로 끝났다.
올해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다시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그 과정이 꽤 드라마틱했다. KT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타격 부진에 시달려 출장 기회가 줄어든 박병호는 은퇴를 불사하며 이적을 요청했다.
지난 5월28일 삼성 오재일과 트레이드되면서 뜻을 이뤘고, 믿기지 않는 반등을 이뤘다. 트레이드 전까지 KT에서 44경기 타율 1할9푼8리(101타수 20안타) 3홈런 10타점 OPS .638로 에이징 커브 직격탄을 맞은 것처럼 보였지만 삼성에 와서 76경기 타율 2할4푼5리(249타수 61안타) 20홈런 60타점 OPS .839로 부활했다. 트레이드 전까지 383홈런으로 멀게만 보였던 개인 통산 400홈런 고지도 밟았다.
이적 후 결승타만 7개로 해결사 능력을 뽐냈다. 삼성도 박병호가 홈런을 친 18경기에서 12승6패(승률 .667)을 거뒀다.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홈런은 거의 없었다. 홈런 20개 중 10개가 동점 상황에서 나왔다. 1점 차 4개, 3점 차 4개로 무려 18개의 홈런이 3점 차 이내 접전 터졌다. 결승 홈런만 4개로 임팩트를 보여줬다.
타자 친화적인 대구 ‘라팍’에서 부활한 박병호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도 정규리그 2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박병호는 5경기 타율 1할1푼8리(17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OPS .499로 힘을 쓰지 못했다. 3차전에서 3-1로 앞선 7회 쐐기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의 반격 1승에 기여했지만 나머지 4경기에선 침묵했다.
마지막이 된 5차전에선 2타수 1안타 1볼넷 1사구로 3출루 경기를 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5-6으로 뒤진 8회 2사 1,3루 찬스가 왔지만 구원 전상현의 초구 직구가 박병호의 몸을 스쳐 걸어나가는 데 만족했다. 계속된 2사 만루에서 삼성은 이재현이 유격수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고, 그걸로 경기는 사실상 끝났다.
우승 한 번 없이 준우승만 4번하고 은퇴한 선수로는 한국시리즈 엔트리 포함 기준으로 빙그레 투수 한희민과 외야수 이강돈(이상 1988·1989·1991·1992년), 삼성 투수 성준(1986·1987·1990·1993년), 두산 투수 정재훈(2005·2007·2008·2013년), 두산-NC 외야수 이종욱(2007·2008·2013·2016년)이 있다. 하지만 3개 팀에서 4번의 준우승은 박병호가 처음이다.
박병호는 포스트시즌 통산 홈런 14개로 이승엽 두산 감독과 함께 이 부문 역대 공동 1위에 올라있다. 2013년 넥센 시절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 동점 스리런 홈런, 2019년 키움 시절 LG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 끝내기 솔로 홈런, 지난해 KT 시절 LG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8회말 역전 투런 홈런으로 클러치 능력도 보여줬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즌 때보다 약했다. 특히 한국시리즈 통산 20경기 타율 1할5푼3리(72타수 11안타) 3홈런 6타점 6볼넷 24삼진 OPS .575로 부진했다. 역대 최다 6번의 홈런왕에 오르며 KBO 최고 거포로 군림한 박병호이지만 올 가을에도 무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