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으로 보고도 실감나지 않는 광경이었다. 전 세계 축구 전설들이 한 데 모여 상암벌을 수놓았다.
20일 오후 6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실드 유나이티드(수비수팀)'가 'FC 스피어(공격수팀)'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다.
아이콘 매치는 이제는 축구화를 벗은 전설들이 한국에서 이색 경기를 펼치는 초대형 축구 행사다. FC스피어는 세계적인 공격수들로 구성된 팀으로 티에리 앙리 감독과 박지성 코치가 지휘다. 주장은 첼시의 전설 디디에 드록바.
실드 유나이티드는 시대를 풍미했던 수비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감독은 파비오 칸나바로, 코치는 이영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리오 퍼디난드가 주장 완장을 찼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64210명이었다. 넥슨 측에 따르면 이번 경기는 티켓 오픈 약 1시간 만에 모든 좌석이 매진된 만큼 엄청난 열기를 자랑했다.
6만 관중은 승패를 떠나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축제를 즐기며 축구로 하나 됐다. 이벤트를 기획한 박정무 넥슨 FC그룹장도 킥오프를 앞두고 "이게 되네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관중석에선 계속해서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앙리가 노룩 패스를 시도하다가 실수로 잔디를 걷어찰 때는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팬들은 전설들이 만드는 모든 순간에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며 열광했다.
결과는 실드 유나이티드의 대승이었다. 전반 13분 야야 투레가 세이도르프의 절묘한 침투에 이은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었고, 전반 21분 세이도르프가 장거리 슈팅으로 추가골을 터트렸다.
물론 세월의 흐름을 이겨낼 순 없었다. 선수들은 전반 중반부터 발걸음이 무거워지더니 차례로 교체됐다. 투레는 햄스트링 부위에 불편함을 느껴 벤치로 물러나기도 했다.
후반에도 수비수들이 공격수들을 압도했다. 후반 9분 역습 공격에서 박주호가 세이도르프의 패스를 받아 팀의 3번째 골을 뽑아냈다. 후반 35분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부드러운 터치로 골키퍼까지 따돌린 뒤 쐐기골을 넣었다.
FC스피어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건 박지성이었다. 그는 무릎이 좋지 않아 코치 역할을 맡기로 했지만, 후반 막판 안정환과 교체되며 잔디를 밟았다. 박지성이 몸을 풀자 관중석에선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지성은 곧바로 안드리 셰우첸코가 얻어낸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고, 가운데로 차 넣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팬들은 그의 응원가인 '위송빠레'를 열창하며 추억에 잠겼다. 중계 화면에는 한 팬이 뜨거운 눈물을 쏟는 모습이 포착돼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나 되어 축제를 즐긴 6만 관중과 전설들이다. 센터백을 맡은 드록바의 수비, 여전히 빠른 카카의 '치달(치고 달리기)', 자로 잰 듯한 안드레아 피를로의 롱패스, 욘 아르네 리세의 대포알 왼발 슈팅까지 가을밤의 꿈 같았던 90분이었다.
팬들뿐만 아니라 직접 뛴 전설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경기 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오랜만에 옛 동료들과 좋은 경기를 하고, 좋은 엔터테인먼트와 축구를 선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도 즐거웠다.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길 바란다"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세이도르프 역시 "너무나 행복하고 놀라운 이틀이었다"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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