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 황영묵(25)은 잘 웃지 않는다. 대학 중퇴 후 군복무를 거쳐 독립야구단에서 프로를 준비하며 남들과 다른 6년의 시간을 보낸 황영묵은 보통 선수보다 심지가 강하다. 어렵게 온 프로 무대에서 첫 시즌부터 3할 타율과 100안타를 동시에 해내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지만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만큼 매 순간 절박하게 간절함을 안고 뛰었다. 절실하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플레이 하나하나에 진지하면서 들뜨지 않는 신인은 보기 드물다.
그만큼 야구에 진심인 황영묵은 “경기 전 훈련 때나 벤치에 있을 때는 밝게 파이팅을 낸다. 하지만 경기 중에는 (그라운드에서) 선수가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을 걸고 야구하는 건데 웃음이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면서 잘 웃지 않았다”며 “가끔 2루 베이스에서 만나는 상대팀 선배들이 칭찬하거나 응원가가 중독성 있다고 해주시는데 인상을 쓰고 있을 순 없다. 그럴 때 말고 야구장에서 웃을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의 매 경기 유니폼일 흙투성이가 될 만큼 황영묵은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수비에서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타구에도 몸을 날렸고, 한 베이스라도 더 진루하기 위해 전력 질주했다. 6개월 장기 레이스는 처음인데 매 순간 전력을 다하다 보니 체중이 쭉쭉 빠졌다. 시즌 전 측정한 공식 프로필 체중은 80kg이었는데 현재 체중은 72kg. 이마저 시즌을 마친 뒤 어느 정도 살이 붙은 것이다.
김경문 감독도 7월 한여름에 황영묵에 대해 “한눈에 봐도 체중이 많이 빠졌다”고 걱정할 만큼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황영묵은 “시즌 중에는 10kg 넘게 빠졌다. 하지만 체중이 빠졌다고 해서 경기력이 떨어지는 건 핑계라고 생각한다. 실력으로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고”고 되돌아봤다. 체력이 떨어진 뒤 타격폼을 작게 줄이고, 배트를 더 짧게 쥐고 컨택하며 슬기롭게 대처했다.
적절한 체력 관리를 받으며 시즌 끝까지 완주한 황영묵의 올해 성적은 123경기 타율 3할1리(349타수 105안타) 3홈런 35타점 52득점 31볼넷 56삼진 출루율 .365 장타율 .372 OPS .737. 규정타석에 57타석 모자랐지만 3할대 타율로 한화 팀 내 최고 수치를 기록하며 100안타까지 돌파했다. 득점권 타율 3할2푼6리(92타수 30안타), 결승타 5개로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루수(82경기 54선발 518이닝), 유격수(46경기 29선발 265이닝), 3루수(3경기 3이닝)를 넘나들며 수비력도 뽐냈다.
황영묵은 “올해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타석에 들어갈지 몰랐다. 경기에 많이 나가야 안타도 많이 치고, 좋은 플레이도 많이 할 수 있는데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파트의 코치님들께서 지도와 격려를 많이 해주신 덕분이다”며 “운도 많이 따랐다”고 이야기했다.
시즌 초반 2군에 내려간 것이 황영묵에겐 좋은 계기가 됐다. 개막 엔트리에 들었으나 벤치만 지키다 4일 만에 2군으로 내려간 황영묵은 당시 퓨처스에 있던 강동우 타격코치 권유로 타격시 오른 다리를 크게 드는 폼으로 바꿨다. 다리를 드는 방향도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변화를 줬다. 컨택이 좋은 황영묵의 장점을 살리고, 몸쪽 대처를 향상시키기 위한 강동우 코치의 조언을 황영묵이 잘 받아들였고, 1군 복귀 후에도 특유의 레그킥을 유지했다. 황영묵은 “시즌 도중에 타격폼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초반에 2군에 10일간 내려가 있으면서 이 폼에 꽂혔다. 좋은 느낌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서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주석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4월9일 다시 1군에 등록된 황영묵은 백업으로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4월12일 대전 KIA전 8회 데뷔 첫 타석에서 우측 2루타로 첫 안타를 신고한 황영묵은 유격수, 2루수를 넘나들며 주전급 선수로 한 시즌을 뛰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다.
그는 “데뷔 첫 안타와 첫 홈런, 1회초 선두타자 홈런, 1번 타자로 꾸준히 나갔던 순간들이 기억난다”며 가장 특별했던 경기로 8월9일 대전 키움전을 꼽았다. 당시 황영묵은 첫 3타석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10타수 연속 무안타로 슬럼프에 빠졌다. 4-5로 뒤진 7회 2사 만루 찬스에서 대타로 교체될 것으로 보였지만 김경문 감독은 황영묵으로 밀어붙였다. 황영묵은 좌측에 빠지는 2타점 적시타로 한화의 역전승을 이끌며 김경문 감독 믿음에 보답했다.
황영묵은 “그때 4경기 무안타였고, 첫 3타석도 망쳤다. 4번째 타석에서 무조건 대타로 바뀔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바꾸지 않고 ‘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셔서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꼭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들어서서 역전타를 쳤다.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고 떠올렸다. 김경문 감독은 스코어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도 땅볼을 치고 1루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황영묵의 독기를 높이 사며 “그런 플레이가 팀에 주는 도움이 크다. 우리 팀에 영묵이 같은 선수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을야구에 실패한 한화는 시즌을 마친 뒤 3일만 쉬고 대전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풀시즌을 소화한 황영묵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제 직업이 야구선수이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원래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 참가하기로 했는데 감독님이 체력 관리를 신경써주셔서 대전에서 하고 있다. (30일부터 미야자키에서 시작되는) 마무리캠프 전까지 몸이 굳지 않게 아침 일찍 나와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수비 훈련에선 2루수, 유격수를 넘나들고 있다. 그는 “원래 제 주 포지션이 유격수이고, 팀에 입단했을 때도 유격수로 시작했다. 내년에는 어느 자리에서 할지 모르겠지만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에 맞춰 준비를 잘해야 한다”며 “시즌 막판 볼넷을 많이 나간 게 만족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야구를 더 잘할 수 있을지 시즌 막바지에 조금 느낀 게 있다.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