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카드를 한 타석 만에 포기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지난 15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포스트시즌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PO·5전3선승제)에 거포 유망주 김범석(20)을 9번 지명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넣었다. 1차전 9번 지명타자 문성주가 햄스트링 통증을 안고 있었고, 염경엽 LG 감독은 김범석에게 가을야구 첫 선발 기회를 줬다.
“페넌트레이스 때보다 (타격감이) 좋아진 것 같다. 잘했으면 좋겠다”고 김범석에게 기대한 염경엽 감독이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히든카드로 내세웠지만 한 타석 만에 교체했으니 염 감독의 실망감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 선발투수 원태인(24)은 경기 초반에 흔들렸다. 1회초 1사 후 신민재와 오스틴 딘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뒤 김현수의 2루 땅볼로 선취점을 허용한 원태인은 1-1 동점이 된 2회초 선두타자 문보경을 우전 안타로 출루시켰다. 박동원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내주며 이어진 무사 1,2루에서 LG는 박해민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 찬스를 이어갔다.
다음 타자는 김범석. 염 감독의 히든카드가 첫 타석부터 좋은 찬스에 걸렸다. 원태인은 초구부터 몸쪽 높게 직구 던졌다. 볼이 됐지만 위협적인 공이었고, 2~3구째 연속 몸쪽으로 찔러넣어 파울을 이끌어냈다. 볼카운트 1B-2S에서 원태인은 4구째 바깥쪽 낮은 슬라이더로 유인했지만 김범석이 참았다. 하지만 5구째 비슷한 코스로 떨어진 슬라이더는 참지 못했다. 헛스윙 삼진 아웃.
큰 고비를 넘긴 원태인은 여세를 몰아 다음 타자 홍창기도 좌익수 뜬공 처리하며 실점 없이 위기를 넘겼다. 초반 난조를 딛고 감을 잡은 원태인은 7회 2사까지 마운드를 책임졌다. 6⅔이닝 7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 호투로 삼성의 10-5 승리를 이끌었다. 포스트시즌 데뷔 첫 선발등판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경기 후 원태인은 “오랜만에 관중들이 들어온 실전 경기라 힘이 넘쳤는데 정교함이 떨어졌다. 2회에도 거친 면이 있었는데 2,3루에서 김범석 선수를 삼진 잡으면서 엉켜있던 게 풀렸다. 삼진 하나로 자신감이 올라왔고, 시즌 때 내가 했던 피칭을 다시 할 수 있었다”며 2회 김범석을 삼진 처리한 그 순간을 되돌아봤다.
원태인의 기를 살려준 2회가 결과적으로 LG의 아까운 승부처였다. LG로선 경기 초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였지만 김범석의 대처가 결과만큼 아쉬웠다. 몸쪽 직구에 타이밍이 늦고, 크게 벗어나는 변화구에 속았다. 1루가 비어있는 상황이라서 상대가 좋은 공을 줄 리 없는데 너무 덤벼들었다. 적절한 컨택으로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냈으면 주자를 1명이라도 홈에 불러들일 수 있었을 텐데 삼진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흔들리던 원태인이 안정을 찾고 기를 살려준 삼진이란 점에서 뼈아팠다.
한 타석이었지만 과정과 결과 모두 나빴고, 염 감독은 두 번 기회를 주지 않았다. 5회초 지명타자 자리에 대타 이영빈을 쓰며 김범석을 한 타석 만에 뺐다. 김범석에게 가혹하게 느껴질 순 있지만 경기 흐름이 그 이후로 완전히 넘어갔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원태인이 2회 위기를 잘 넘기고 나서 자신감이 붙었다. 그 이후 7회까지 완벽하게 막아줘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남고 출신 포수 김범석은 2023년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LG에 입단한 거포 유망주. 지난해 퓨처스 올스타전 MVP를 받으며 가능성을 보였고, 1군에서 10경기를 뛰더니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감짝 승선해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올해 1군 전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스프링캠프 때 내복사근 부상으로 중도 귀국하며 과체중 논란이 불거졌다.
부상 회복 후 4월 중순 1군에 콜업된 김범석은 5월까지 32경기 타율 2할9푼8리(94타수 28안타) 5홈런 19타점 OPS .844로 활약하며 팀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상대 분석이 들어온 6월 이후 38경기 타율 1할6푼2리(68타수 11안타) 1홈런 5타점 OPS .459로 부진했다. 이후 1~2군을 오르내렸고, 시즌 전체 성적은 70경기 타율 2할4푼1리(162타수 39안타) 6홈런 24타점 OPS .683로 마쳤다. 준PO 엔트리에 빠졌다가 PO를 앞두고 들어왔지만 1차전 9회 대타로 나와 헛스윙 삼진을 당하더니 2차전 선발 기회도 한 타석 만에 날렸다. LG도 1~2차전 모두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