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대표팀이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조지 발독에게 역사적인 잉글랜드전 승리를 바쳤다.
그리스는 11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UNL) 리그 B 3차전에서 잉글랜드를 2-1로 꺾었다.
객관적 전력만 보면 슈퍼스타가 즐비한 잉글랜드가 우세한 경기. 하지만 그리스는 초반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잉글랜드를 괴롭혔다. 잉글랜드 골키퍼 조던 픽포드는 몇 번씩이나 실수를 저지르며 위기를 맞았다.
그리스는 후반 4분 선제골까지 넣었다. 반젤리스 파블리디스가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를 따돌린 뒤 슈팅했고, 공은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이후로도 그리스의 공격이 매서웠다. 후반 14분 요르고스 마수라스가 파블리디스의 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터트리는가 싶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후반 38분엔 파블리디스가 다시 한번 골망을 흔들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또 오프사이드로 취소됐다.
잉글랜드는 후반 42분 주드 벨링엄의 환상적인 중거리 득점으로 겨우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그리스였다. 후반 추가시간 파블리디스가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또 득점하며 멀티골을 뽑아냈다. 그리스는 남은 시간을 잘 버텨내며 경기를 2-1 승리로 매조지었다.
그리스 축구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스는 지금까지 잉글랜드와 9차례 만나 2무 7패에 그치면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드디어 잉글랜드를 잡아내며 역사상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도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웸블리에서 말이다.
그리스의 이번 승리가 더욱 뜻깊은 이유는 경기 전날 날아든 비보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인 발독이 세상을 떠난 것. 1993년생인 그는 그리스 아테네 자택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다.
발독은 2018-2019시즌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끌며 이름을 떨친 수비수다. 그는 지난여름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7년 동행을 끝내고 그리스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돌연 사망하며 충격을 안겼다.
그리스 축구협회는 UEFA에 잉글랜드전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UEFA 측은 바쁜 일정 때문에 경기를 미룰 여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슬픔에 잠긴 그리스 선수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뛰어야 했다.
대신 그리스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공식 성명서를 통해 발독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이들은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인 발독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않다니 믿을 수 없다. 우리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라며 "오늘 밤 우리는 그의 영혼의 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대표팀은 하늘에서 보고 있을 발독에게 승리를 바치며 약속을 지켰다. 양 팀 선수들은 추모를 의미하는 검정색 완장을 팔에 차고 뛰었고, 킥오프 전에는 1분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스 선수들은 선제골이 터진 후 다같이 발독의 등번호 2번 유니폼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경기 후 파블리디스는 "발독을 위해 우리에게는 정말 특별한 경기였다. 당연히 발독과 그의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라며 "우리는 그저 발독을 위해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를 위해 뛰고 싶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라고 추모했다.
이반 요바노비치 그리스 감독도 예상치 못한 승리가 발독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낳은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팀 전체와 모든 사람들이 매우 힘든 24시간을 보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축구는 두 번째"라며 "발독의 영혼이 라커룸에서 우리와 함께했다. 그는 팀에 자기 흔적을 남겼고, 오늘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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