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했어도 무방한 나이에 타율 3할을 치며 프로 경쟁력을 뽐낸 김재호. 아직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선수는 현역 연장과 은퇴를 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시간을 지난 2021년 겨울로 돌려보자. 김재호는 2021년 1월 두산과 3년 25억 원에 두 번째 FA 계약을 체결, 종신 베어스맨을 선언했지만, 첫 2년 동안 부진했다. 재계약 첫해 89경기 타율 2할9리에 이어 2022년에도 102경기 타율 2할1푼5리로 부진하며 현역 생활의 끝이 보이는 듯 했다. 계약 기간의 절반이 넘는 2년 동안 타율 2할1푼2리의 슬럼프를 겪으며 천재 유격수의 자존심을 구겼다.
김재호는 어쩌면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2023시즌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시작은 호주 스프링캠프였다. 워밍업 때부터 가장 첫 줄에 서서 파이팅을 외쳤고, 수비 훈련을 할 때도 과거 의욕 넘쳤던 젊은 천재 유격수가 그랬던 것처럼 몸을 아끼지 않았다. FA 2년의 야유를 박수로 바꾸기 위해 그 누구보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땀은 천재 유격수를 배신하지 않았다. 김재호는 지난해 91경기 타율 2할8푼3리 3홈런 29타점 OPS .748로 회춘하며 두산의 2년 만에 가을 무대 복귀를 이끌었다. 38세의 은퇴가 임박한 나이에도 안정적인 수비와 함께 녹슬지 않은 컨택 능력을 뽐내며 양의지(타율 3할5리), 정수빈(2할8푼7리)에 이어 팀 내 타율 3위에 올랐다. 커리어 하이를 썼던 2018년(타율 3할1푼1리 16홈런) 못지않은 활약이다.
FA 계약 후 첫 2년의 기록만 봤을 때 김재호는 2023시즌 종료 후 은퇴가 유력해보였다. 김재호 또한 후배 오재원의 은퇴식 당시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현역 마감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반등에 성공했고, 올해 2월 8일 현역 연장에 성공했다. 연봉은 2023시즌 5억 원에서 40% 삭감된 3억 원에 도장을 찍었지만, 이 또한 은퇴를 앞둔 베테랑들에 희망이 되는 금액이었다.
김재호는 올해 주전 도약 이전이었던 2011년 이후 13년 만에 60경기 미만을 소화했다. 2군에서 시즌을 출발해 5월 2일이 돼서야 1군 무대에 합류했고, 7월 초 약 3주 동안 이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팩트는 강렬했다. 57경기 154타석 동안 타율 3할2리(126타수 38안타) 1홈런 11타점 OPS .760으로 활약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순위싸움이 한창이었던 9월 안정적인 수비는 기본이고, 월간 타율 3할5푼7리로 팀의 4위 확정에 큰 힘을 보탰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역시 두산 주전 유격수는 39세 김재호였다. 2경기 모두 리드오프 정수빈과 함께 2번에서 테이블세터를 이뤄 두산이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해온 유격수 세대교체를 무색케 했다. ‘야전 사령관’ 김재호가 있는 내야진과 없는 내야진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김재호 후계자 발굴 프로젝트는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김재호 이후 무려 17년 만에 내야수 1차지명된 안재석이 제2의 김재호로 기대를 모았지만, 거듭된 부진과 함께 지난 1월 현역 입대했고, 이유찬은 올해 외야 수비를 겸업했으며, 일발 장타력이 있는 박준영은 올해 잦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내구성에서 약점을 보였다. 전민재, 박계범은 수비는 안정적인 반면 공격이 아쉬운 터.
두산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이천 마무리캠프에서 다시 유격수 오디션을 개최할 계획이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김재호가 있는 가운데 김재호의 지도를 받으며 후계자가 성장하는 것이지만, 김재호도 어느덧 내년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성적만 봐서는 현역 연장이 가능해 보이지만, 몸 상태와 나이를 감안했을 때 마냥 현역 연장을 추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산 관계자는 최근 김재호의 거취와 관련해 “조만간 구단이 선수와 만남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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