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국마사회(회장 정기환)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제7회 코리아컵(IG3, 1800m, 총상금 16억 원)과 코리아스프린트(IG3, 1200m, 총상금 14억 원)의 영광은 일본 경주마들이 휩쓸었다.
한국 경마는 안방에서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올해 사우디·두바이 등 세계 주요 경마대회에서 파죽지세로 우승을 이어온 일본 경주마들의 질주가 과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국 경마 최고 수준의 상금 더불어 '美 브리더스컵' 본선 출전권을 두고 해외 경주마들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두 개의 국제 초청 경주가 지난 8일 과천벌에서 펼쳐졌다. 먼저 서울 6경주로 열린 '코리아스프린트'는 지난해 우승마인 일본의 '리메이크'(일본, 5세, 수, 코지마에다 마주, 신타니 조교사, 카와다 기수)가 2연승을 차지했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고, 한국의 '벌마의스타'가 빠르게 선두에 나섰다. 미국의 '아나키스트'와 일본의 '재스퍼크로네'가 곧바로 이를 역전하며 선두권을 형성하며 경주를 이끌었다.
중위권에서 힘을 비축하던 디펜딩 챔피언 '리메이크'는 마지막 4코너에서 속도를 올리며 승부수를 띄웠고 결승선 직전 100m 지점에서 선두에 올라서며 그대로 순위를 확정 지었다. 2위는 일본의 재스퍼크로네, 3위는 미국의 아나키스트가 차지했으며 한국의 경주마 관계자들과 관람대에 모인 2만 7천여 명의 경마팬들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이어진 7경주로 개최된 '코리아컵'에서도 지난해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일본의 '크라운프라이드(일본, 5세, 수, 테루야요시다 마주, 신타니 조교사, 요코야마 기수)'가 또다시 월등한 기량으로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다.
11두의 경주마들이 출발 신호와 함께 게이트 박차고 나가며 눈치싸움을 하는 가운데 가장 바깥쪽 11번 게이트에서 출발한 '크라운프라이드'가 초반부터 페이스를 올리며 안쪽을 파고들어 선두에 자리했다. 그 뒤를 23년 한국 경마 연도대표마 '위너스맨'을 포함해 '빅스고', '흑전사'등 한국 경주마들이 추격하며 경주는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올해 두바이 월드컵 4위를 기록한 우승 유력마 '윌슨테소로'가 중위권 그룹에서 속도를 높였고 어느새 '크라운프라이드' 바로 뒤에서 역전의 기회를 엿봤다. 초반부터 페이스를 높였기에 뒷심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크라운프라이드'는 마지막까지 격차 벌리며 가장 먼저 결승선에 코를 내밀었다. 2위는 일본의 '윌슨테소로', 3위는 한국의 '글로벌히트', 4위는 일본의 '라이트워리어' 순이었다.
경주 직후 열린 시상식은 자국 경주마의 우승을 축하하는 일본 경마팬들의 환호 속에 열렸다. 우승 마주와 조교사, 기수에게는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 트로피가 수여됐다. 미국 브리더스컵사의 조슈아 부사장은 두 명의 우승 마주들에게 브리더스컵 출전권을 의미하는 기념 상패를 직접 수여했다.
한국 경주마들의 美 브리더스컵 출전 기회가 멀어지며 한국의 경마팬들과 경주마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김혜선 기수가 가장 큰 아쉬움이 남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 기수 최초로 대상경주 우승은 물론 올해만 무려 다섯 번의 대상경주를 우승하며 대한민국 대표 기수로 자리매김한 김혜선 기수는 이날 두 경기에서 한국 기수들 중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김혜선 기수는 '코리아컵'에서 '글로벌히트'와 3위를, '코리아스프린트'에서는 '스피드영'과 4위를 기록하며 양 경주에서 한국 경주마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솔직히, 작년에 이어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힌 김 기수는 "해외 경주마와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었고, 올해 '글로벌히트'로 일본말 한 마리를 이겨서 다행"이라며 "해외 우수 경주마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게 한국 경마의 숙제이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 경주마들의 글로벌 활약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지난 2월, 세계 최고의 상금을 걸고 개최된 제4회 '사우디컵'에서는 일본의 경주마 '판타라사'가 우승을 차지했고 함께 출전한 일본마들은 3,4,5위를 기록, 상위권을 휩쓸었다. 3월에 열린 두바이월드컵에서도 일본의 '우스바 테소로'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연이은 우승을 통해 명실상부 경마 강국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일본 경마 역시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위한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어왔다. 한국의 '코리아컵'과 같이 일본은 국제 초청 경주 '재팬컵'을 일찍이 1981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일본은 대회가 시작된 '81년부터 3년간 미국과 아일랜드의 경주마에게 트로피를 내어줬다.
1984년과 1985년에 일본 경주마가 연이어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6년 동안 다시 해외 경주마들이 우승을 휩쓸며 쓴맛을 봐야했다. 뼈아픈 패배에도 일본 경주마 관계자들은 해외 주요 경주에 도전하기 위해 원정을 이어갔으며, 더 강한 경주마를 생산하기 위해 우수한 씨수말을 도입하는 한편 체계적인 육성을 위한 대규모 트레이닝 시설을 구축해 나갔다. 이를 양분 삼아 성장한 일본 경주마들의 이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으며 '재팬컵'에서도 18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오늘의 패배는 고통스럽지만, 세계 속 우리 경마의 현주소와 부족함을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라며 "앞으로 한국 경주마들이 코리아컵 우승을 넘어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오늘의 패배를 양분 삼아 성장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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