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번은 고민 해주시고 해결 해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봅니다."
세계 랭킹 1위 안세영(22, 삼성생명)은 5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랭킹 9위 허빙자오(중국)를 2-0(21-13 / 21-16)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3일 8강에서 야마구치 아카네를 상대로, 4일 준결승서 그레고리아 툰중을 상대로 그림 같은 역전승을 거둔 뒤 얻어낸 금메달이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우승이 현실이 된 순간. 안세영은 그대로 코트에 쓰러져 기뻐했고, 김학균 감독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훔쳤다. 그런 뒤에야 눈물을 닦아내고 코트에 무릎을 꿇은 채 크게 포효했다.
이로써 안세영은 생애 첫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배드민턴에 28년 만의 여자 단식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 여자 배드민턴 선수가 올림픽 단식 결승에 오른 건 1996년 애틀랜타 대회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처음이다. 안세영은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8강 탈락의 아픔을 지워냈다.
이제 안세영은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까지 한 걸음만 남겨두게 됐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스스로 마지막 퍼즐이라 밝힌 올림픽까지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은 없지만, 머지 않았다.
안세영은 믹스트존에서 폭탄 발언을 던졌다. '뉴시스'와 '뉴스1' 등에 따르면 그는 자기 부상 문제와 관련해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한 작심발언을 날렸다.
먼저 안세영은 "너무 행복하다. 이제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무릎 부상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그 순간들이 기억 난다. 무릎한테 너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뻔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라며 씩씩하게 웃었다.
이후 안세영은 돌연 협회 운영을 저격하면서 대표팀 은퇴까지 시사하는 말을 꺼냈다. 그는 "내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쉽게 나을 수 없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많이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세영은 "한수정 트레이너가 내 꿈을 이뤄주기 위해 눈치도 많이 봤다. 힘든 순간도 보내게 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나는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하고는 계속 (함께) 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안세영은 대표팀을 은퇴하겠다는 말인지 묻는 취재진의 말에 "이야기를 잘 해봐야 하겠지만, 많이 실망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할 날이 오면 좋겠다. 협회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줄지 잘 모르겠다. 난 배드민턴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도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끝으로 안세영은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올림픽을 못 뛰는 건 아닌 것 같다. 단식과 복식은 다르다. 단식만 뛴다고 선수 자격을 발탁하면 안 된다. 협회가 모든 걸 다 막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하고 있다. 우리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메달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지 않나 싶다"라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이후 6일 새벽, 안세영은 자신의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오늘 하루 낭만있게 마무리 하고 싶은 상상과는 다르게 저의 인터뷰에 다들 놀라셨죠?"라며 글 하나를 게시했다.
그는 "일단은 숙제를 끝낸 기분에 좀 즐기고 싶었는데 그럴시간도 없이 저의 인터뷰가 또 다른 기사로 확대 되고 있어서 참 저의 서사는 고비고비가 쉬운게 없네요"라고 적었다.
이어 "먼저 저의 올림픽을 응원 해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끝에 선수관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 드리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되네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안세영은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선수들이 보호 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그리고 권력보단 소통의 대해서 언젠가는 이야기 드리고 싶었는데 또 자극적인 기사들로 재생 되는 부분이 안타깝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와 전쟁하듯 이야기 드리는 부분이 아니라 선수들의 보호에 대한 이야기 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번은 고민 해주시고 해결 해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선배' 방수현도 입을 열었다. 다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방 위원은 "선수 보호를 위해서 협회 차원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며 협회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배가 협회의 행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선배가 지지하는 그림, 낯설지 않다. 바로 얼마 전 축구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 국가대표 선수 박주호는 지난달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대한축구협회(KFA)의 발표 이후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 시간 가량 열변을 토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입을 다물고 몸사린 '선배'는 많지 않았다. 이영표와 이동국을 시작으로 박지성, 김영광, 아직 프로 무대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구자철까지 의견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특히 박지성은 "첫 번째로 드는 감정은 슬픔"이라며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아직도 축구라는 분야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둘째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축구인으로서 너무 슬픈 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마음이 상당히 아픈 상태"라고 전했다.
박지성은 "가장 슬픈 건 뭐 하나 확실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2002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는 상당히 변했고, 앞으로 상당히 많이 변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렇게 받았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이영표는 "저를 포함해 우리 축구인들의 한계를 봤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행정을 하면 안 된다. 축구인들은 행정을 하면 안 되고 말 그대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상황을 보며 우리는 아직 그럴만한(행정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달졌다.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로 남지 못한다. 소통의 창구는 많고 다양해졌으며 이제 그 누구라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축구협회와 배드민턴협회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