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
한국 유도 허미미(22, 경북체육회)가 출사표를 지켰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귀중한 은메달을 따내면서 파리에 태극기를 내걸었다.
허미미(22, 세계 랭킹 3위)는 3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kg 결승전서 크리스티안 데구치(캐나다, 세계 랭킹 1위)에게 골든 스코어 끝 연장전서 지도 3개로 반칙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허미미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조민선(당시 66kg급) 이후 28년만의 금메달을 노렸지만 아쉽게 패배했다. 그래도 지난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정보경(48kg급)의 은메달 이후 8년 만에 한국 유도에 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유도는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건 허미미는 한국 유도의 기대주다. 그는 한국 국적 아버지와 일본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아버지를 따라 유도를 시작한 허미미는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에서 우승하며 ‘유도 천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일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허미미의 선택은 태극마크였다. 계기는 바로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유언. 허미미의 할머니는 생전에 "미미가 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허미미는 이에 따라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대표팀에까지 발탁됐다.
게다가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1857∼1920)의 5대손이라는 숨겨진 인연도 알게 됐다. 한국서 첫 입단한 실업팀 경북체육회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진 것. 허미미는 지난해 자신의 생일(12월 19일)을 앞두고 일본 국적을 포기하면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세계랭킹 3위 허미미는 2번 시드로 32강 없이 16강에 안착했다. 도쿄 올림픽에 노메달로 그친 한국 유도를 책임지고 나서는 허미미는 올 5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29년 만에 우승하기도 했다.
올림픽 본무대에서도 매서웠다. 허미미는 16강서 연장전 끝에 팀나 넬슨 레비(이스라엘)의 빈틈을 노려 업어치기를 연달아 성공했다. 그 덕분에 상대 지도를 이끌어 내면서 반칙승으로 8강에 합류했다.
8강 상대는 엥흐릴렌 르하그바토고(몽골, 세계 랭킹 13위). 허미미가 이번 올림픽 전까지 3번 만나 모두 패했던 껄끄러운 상대였다. 하지만 허미미는 종료 15초를 남겨두고 상대 안다리를 걸어 쓰러뜨리며 절반을 따냈고,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승리하며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허미미는 4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라파엘 실바(브라질, 세계 랭킹 10위)를 만났다. 그는 시작하자마마자 안다리로 절반을 따냈지만 다시 취소됐다. 이번에도 치열한 승부 끝에 골든스코어에 돌입했지만, 허미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업어치기 이후 누르기로 절반을 얻어내며 결승행의 주인공이 됐다.
결승 상대는 예상대로 세계랭킹 1위의 데구치. 그는 허미미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데구치와 허미미는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맞붙은 바 있다. 당시 허미미 연장전 끝에 지도 3개를 얻어 반칙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데구치와 허미미는 시작하자마자 날카로운 공격을 주고 받으면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1분여도 지나지 않아서 두 선수에게 모두 지도가 주어졌다. 허미미의 안다리 후리기 시도에 데구치가 버텼다. 허미미는 안다리와 업어치기를 번갈아 시도하면서 앞서갔다. 그러나 위장 공격으로 지도를 얻으면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데구치는 무리하지 않고 낮은 중심을 통해 버텼다.
골든스코어 시작 이후 허미미가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그래도 데구치의 철벽 같은 수비를 이겨내지 못했다. 지도가 2개인 허미미가 계속 공격을 시도했다. 골든스코어 내내 수비적이었던 데구치에게 지도가 주어졌다.
이제 대등한 상황서 진짜 의미의 연장전이 시작됐다. 허미미가 지친 데구치 상대로 계속 몰아쳤다. 데구치는 다리에 쥐가 난 듯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심판은 갑작스레 위장 공격을 선언했다. 결국 허미미는 지도 3개로 패하면서 금메달을 놓치게 됐다. 결승 내내 제대로 된 공격도 한 번 하지 못한 데구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통한의 패배였지만, 너무나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허미미다. 그는 파리 올림픽을 한 달가량 앞두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은메달리스트로서 시상대에 오르며 약속을 지켰다.
경기 후 허미미는 "너무 아쉽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결승에 출전해 좋다"라며 "나도 위장공격인 줄 몰랐다. 시합이니까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더 생각하고 잘해야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열심히 외운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돼서 아쉽다는 말도 남겼다.
이어 허미미는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금메달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래도 메달을 딴 모습을 보여드려 너무 행복하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태극마크가 자랑스럽다는 걸 많이 느꼈다. 결승까지 가서 너무 행복했다"라며 "(4년 뒤에는) 나이를 먹었을 테니 체력이 더 좋을 것이다. 다음 올림픽에선 꼭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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