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아쉬움을 넘어라. 이제 오상욱(대전시청)이 염원의 금메달까지 마지막 단 한 경기만을 남겨두게 됐다.
오상욱은 27일(현지시간) 프랑스 그랑팔레에 위치한 펜싱장에서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4강전서 루이지 사멜레(이탈리아, 세계 랭킹 7위)를 15-5로 제압하면서 결승행에 성공했다. 결승 상대는 32강서 대표팀의 맏형 구본길(국민체육공단)을 잡았던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세계 랭킹 13위)다.
펜싱 1일차에서는 에페 여자 개인전과 사브르 남자 개인전이다.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는 송세라(부산시청), 강영미(광주 서구청), 이혜인(강원도청)이 출격했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는 오상욱을 포함해서 박상원(대전시청), 구본길이 나섰다.에페와 사브르 개인전은 하루만에 32강부터 16강, 8강, 4강, 결승이 모두 진행된다.
이번 올림픽이 열리는 프랑스는 펜싱의 종주국이다. 근대 펜싱은 프랑스서 스포츠화가 시작됐다. 그렇기 때문에 펜싱 경기는 프랑스어 용어로 진행된다. 종주국으로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손꼽히는 펜싱 강국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도 펜싱의 인기는 올림픽 종목 중 최상위를 다툰다.
실제로 경기 내내 프랑스 관중의 열정적인 응원이 이어졌다. 한국 입장에서도 펜싱은 최근 올림픽서 3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효자 종목이다. 단 개인전 금메달은 2016 리우데자네이 올림픽서 '할 수 있다' 박상영이 메달을 따낸 이후 없었다. 남여 선수들은 내심 개인전 메달을 노렸다.
남자 펜싱의 에이스 오상욱은 32강부터 남다른 기량을 뽐냈다. 세계 랭킹 3위인 그는 32강서 에반 장 아바 기로(나이지리아, 세계 랭킹 30위)를 상대로 한 수 위의 기량을 뽐냈다. 1퍼리어드에 선취점을 포함해서 8-2로 격차를 벌린 오상욱은 2퍼리어드서 7점을 추가하면서 15-8로 경기를 매조지었다.
16강 상대는 알리 팍다만(이란, 세계 랭킹 14위). 쉽지 않은 상대였지만 오상욱은 우승 후보다운 모습을 뽐냈다. 1피리어드는 오히려 상대에게 끌려가면서 내리 3점을 내줬던 오상욱은 전열을 정비하고 빠르게 경기를 뒤집었다. 이후 연이은 득점을 통해 8-7로 앞선 채 1피리어드를 마무리했다.
2피리어드에서 오상욱의 진가가 나타났다. 상대의 분석이 끝난듯 매서운 찌르기를 통해 점수 차이를 벌렸다. 2피리어드가 시작한지 30초도 지나지 않은 상황서 점수 차이를 14-10으로 벌린 오상욱은 피리어드 종료 2분 34초를 남겨둔 상황서 정확한 찌르기를 통해 15-10으로 경기를 매조지었다.
16강이 끝나고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 오상욱과 함께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선수들이 대거 탈락한 것이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올림픽 남자 사브르 3연패의 전설 아론 살라지(헝가리, 세계 랭킹 6위)가 떨어졌던 것이다. 대진표상 살라지는 8강서 오상욱의 상대가 될 확률이 높았다.
2012 런던 대회를 시작으로 2016 리우, 2020 도쿄까지 모두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가져갔던 살라지는 대회 4연패를 노렸지만 32강서 파레스 아르파(캐나다, 세계 랭킹 15위)에게 8-15로 패배했다. 여기에 도쿄 올림픽서 산드로 바자제(조지아, 세계 랭킹 2위)가 16강서 이집트의 아메르 무하메드(세계 랭킹 18위)에 발목이 잡혀 탈락했다.
오상욱, 실라지 등과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불리던 바자제는 도쿄 올림픽서 오상욱을 잡은 바 있다. 지난 대회 남자 사브르 8강서 오상욱을 15-13으로 제압했다. 당시 치명벅인 비디오 판정 오류로 인해 1점을 얻었으나 2점이 올라가서 승리했다. 오상욱은 억울한 패배에도 "바자제가 준비를 잘했다. 그것이 아니라도 졌을 것"이라고 깨끗하게 승복했다. 바자제는 4강서 실라지에 패배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정환에게 패배하면서 4위에 그쳤다.
우승 후보들이 연달아 탈락한 상황. 8강서 오상욱은 실라지를 잡은 아르파 상대로도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줬다. 승부처는 12-12로 팽팽했던 2피리어드에서 오상욱이 2초만에 빠르게 2점을 따내면서 승기를 굳혔다. 아르파가 한 점을 만회하긴 했으나 오상욱이 침착하게 마지막 찌르기를 성공시켠서 15-13으로 4강행을 확정했다.
오상욱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4강에서는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 세계 랭킹 13위)가 세계 랭킹 1위 지아드 엘시시(이집트)를 상대로 15-10으로 승리했다. 페르자니는 32강서 대표팀의 맏형 구본길 상대로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15-8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구본길은 "상대가 잘 준비한 것"이라고 그의 실력을 인정한 바 있다.
4강 상대 사멜레는 37세의 노장으로 지난 대회서 실라지에 패배하면서 은메달에 그쳤던 인물. 심지어 단체전서도 김정환, 구본길, 오상욱으로 구성됐던 한국에서 26-45로 크게 패배하면서 은메달에 그쳤다. 이번 대회에서도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오상욱이 한 발 더 앞섰다.
시작부터 치열했다. 노장 사멜레가 먼저 2점을 선취했으나 오상욱이 빠르게 치고 들어가면서 다시 금방 스코어를 3-3으로 만들었다. 오상욱은 특유의 민첩성을 앞세워서 사멜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점수를 내리 내주면서 3-4으로 리드를 내준 사멜레는 잠시 마스크를 벗고 불만 섞인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오상욱은 속도를 앞세워 치고 들어가면서 특유의 긴팔을 살린 롱 런지를 통해 점수를 8-4까지 벌렸다. 내리 점수를 얻으면서 사멜레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기 시작했다. 2라운드에서도 오상욱이 먼저 선취점을 따내면서 9-4로 점수 차이는 벌어졌다. 그랑 팔레서 한국 팬들의 오상욱 환호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팬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오상욱이 더욱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오상욱은 11-4로 점수 차이를 벌렸다. 기세를 탄 오상욱은 샤멜레를 농락하듯 14-5까지 점수를 벌렸다. 여기에 마지막 찌르기까지 쾌속으로 성공시키면서 염원의 금메달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 /mcado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