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우승의 문!” “우승 나와라, 뚝딱!”
천일야화((千一夜話)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 나오는 주문이 - “열려라, 참깨!” - 아니다. 구전설화(口傳說話) ‘도깨비방망이’에 나오는 주문도 – 금 나와라, 뚝딱! -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의 말일까?
‘결승전 불패 신화’를 오랜 세월 이어 가는 스페인 축구에 딱 들어맞게 표출된 글귀다. 더 자세하게 표현한다면, “결승전에만 올라가라. 그러면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으로 나타낼 수 있겠다.
그럴 만하다. 유럽 축구 마당에서, 이제는 하나의 ‘철칙(鐵則’으로 굳어진 듯한 느낌마저 자아내기 때문이다. UEFA(유럽축구연맹)가 주최하는 각종 대회에서, 스페인은 결승전에만 오르면 패배를 몰랐다. 정상에 올라 포효하는 주인공은 언제나 스페인 국가대표팀(La Roja·라 로하: 빨강) 또는 라 리가의 여러 명문 클럽이었다. 놀랍게도 22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고 온전하게 지속되며 ‘전통’으로 확립됐다. 등식으로 자리매김한 ‘스페인 결승행 = 우승’이다.
스물세 번 자웅을 겨루는 마지막 쟁패전에 올라 모조리 정상을 밟았다.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뀔 법한 오랜 세월, 라 로하를 필두로 한 스페인 축구가 창출한 결승행이면 우승이라는 믿기 힘든 기록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당연히(?), 지난 14일(이하 현지 일자) 끝난 UEFA 유로 2024에서도, 마찬가지 모양새가 빚어졌다. 결승전에 나간 스페인이 판박이처럼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자연스럽게, “스페인이 결승에 오르면 반드시 우승한다”라는 명제는 다시 한번 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함께 스페인이 UEFA 역사에 깊숙이 아로새긴 빛나는 기록이 다소 뒤늦게나마 새삼스레 조명받고 있다.
22년간 23회나 되풀이된 스페인 축구의 ‘결승전 불패 신화’
지난 21일,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는 ‘스페인의 놀라운 연속 행진(Spain's amazing streak)’이라는 제목 아래 이처럼 ‘중요한 법칙’으로 뿌리내린 듯싶은, 환상에 가까운 대기록을 자세히 소개했다. 22년간에 걸쳐 스페인이 밟아 온 여정과 눈부신 발자취를 보노라면 절로 아연할 뿐이다.
스페인 축구의 결승행 연속 우승 행진은 2002년 첫 잔이 띄어졌다. 첫걸음을 내디딘 주인공은 라 리가의 최고 명가로 손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2001-2002 UEFA 챔피언스리그(UCL) 최후의 한판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2-1로 제압하고 정상에 오르며 스페인의 기나긴 ‘결승행 필우승 가도’에 첫 돌을 놓았다.
한 해 전, 클럽 무대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셨던 스페인 축구가 쓰라린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엶을 알리는 포효였다. 2000-2001시즌, 스페인 클럽들은 UCL과 UEFA컵 결승전에서 잇달아 좌절을 겪었다. UCL 결승전에선, 발렌시아가 독일 분데스리가의 대명사인 바이에른 뮌헨과 연장 격전(1-1) 끝에 승부차기(4-5)로 등정을 눈앞에 두고 물러섰다. UEFA 유로파리그(UEL)의 전신인 UEFA컵 결승전에선, 데포르티보 알라베스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과 골을 주고받는 연장 접전 끝에 4-5로 패퇴했다.
그러나 1년 뒤, 레알 마드리드가 UCL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혀 딴판이 연출됐다. 그리고 2024 유로까지 결승 무대에만 오르면 꼭 우승컵에 입맞춤하는 스페인의 ‘관행’은 한 번도 예외 없이 똑같은 양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라 로하가 안은 4회 패권과 클럽이 품은 19회 우승컵을 엮어 총 23회의 연속 우승 행진이 빠짐없이 재현됐다(표 참조).
라 로하는 환호와 꽃길로 뒤덮인 이 같은 우승 가도에 주춧돌을 놓았다. 이 기간에 한 번(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의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과 세 번의 유로(2008 오스트리아·스위스, 2012 폴란드·우크라이나, 2024 독일)에서 최후의 각축전에 뛰어들어 모두 우승을 거머쥐는 위업을 달성했다. 유로 2연패(2008, 2012)는 스페인이 대회 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성취한 위업이다.
클럽에선, 라 리가의 쌍두마차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주역으로 연기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5회 등정했고, 바르셀로나는 4회 우승했다. 두 팀 모두 유럽 무대는 물론 세계 최고의 클럽 경연장인 UCL에서 올린 개가였다.
질적 순도를 떠나 양적 횟수로만 본다면, 세비야가 으뜸이었다. UEFA 유로파리그(UEL)에서만 6회 마지막 쟁패전을 벌여 모두 승전가를 불렀다. UEL의 전신인 UEFA컵 우승(2005-2006시즌)으로 첫 연(緣)을 맺은 세비야는 3연패(2013-2014~2015-2016시즌)의 금자탑까지 쌓으며 ‘UEL의 지존’이라는 영광의 별칭까지 얻었다.
이 밖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발렌시아 CF, 비야 레알 CF가 결승행 = 우승 등식이 뿌리내리는 데 작게나마 밑거름이 됐다. 모두 UEL에서, 정상에 발자국을 남겼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회(2009-2010, 2017-2018시즌), 발렌시아(2003-2004시즌)와 비야 레알(2020-2021시즌)은 각각 1회 등정을 이뤘다.
올해 유럽 축구계는 스페인 축구가 내뿜는 기세로 뒤덮인 모양새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의 최고봉인 유로와 UCL을 휩쓰는 맹위를 떨쳤다. 그야말로 전성시대를 맞이한 모양새다. 그 밑바탕엔, “결승전에 나서면 승리는 우리 손안에 있다”라고 외치는 ‘승리의 주문’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