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글다.” 축구의 특성을 잘 나타낸 명제다.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 만큼 이변이 많이 일어나는 데서 비롯한 말이다. 일맥상통하는 뜻으로 곧잘 쓰이는 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정상을 밟으려면 물론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할뿐더러 운도 따라 줘야 함을 강조한 데서 나온 표현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용장은 덕장을 물리치지 못하고, 덕장은 운장(運將)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속설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배경이다.
그러면 패권을 부르는 감독과 우승을 몰고 다니는 선수가 만나 서로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까 싶다. 당연히, 평천하를 이룰 수 있다.
이 맥락에서,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24를 제패한 스페인을 다시 한번 조명해 봄 직하다.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는 듯, 우승컵과 인연이 깊은 감독과 선수가 호흡을 맞췄으니, 황금빛 결실은 예상된 귀결이었다는 생각이 듦을 어찌할 수 없다.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63)과 로드리(28)는 라 로하(La Roja·빨강: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의 α와 ω다. 라 로하를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받치며 ‘무적함대 시대’가 다시 도래했음을 축구 천하에 힘차게 부르짖은 ‘행운의 사나이’다. “내 사전엔, 준우승이란 없다”라고 외치는 듯, 우승 질주를 멈출 줄 모르는 푸엔테 감독과 로드리다. 한마디로, 유로 2024는 ‘우승길’만을 걷는 두 사람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전장이었다.
푸엔테 감독, 유로 연령별 대회 석권… 로드리, 1년여 사이에 8개 대회 우승 휩쓸어
한 달 동안(6월 14일~7월 14일·현지 일자) 독일에서 펼쳐진 유로 2024에서, 스페인은 각종 신기록을 양산하며 정상에 올랐다. 최다(4회) 우승, 단일 대회 최다 득점(15골) 등 최고 기록을 쏟아 내며 앙리 들로네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종전 최다 우승 기록을 나눠 가졌던 독일에 한 걸음 앞서 나갔다. 또, 1984 유로에서 프랑스가 세운 이래 깨지지 않던 한 대회 최다 득점(14골) 기록도 40년 만에 한 골 능가했다.
무엇보다도 7연승 우승 기록이 대단했다. 유로 사상 최초다. 그룹 스테이지를 거쳐 녹아웃 스테지 시스템이 채택된 1980 유로 이래 전승 우승은 두 번째다. 당시 프랑스가 5연승으로 정상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8개국이 쟁패했기 때문에, 그때 기록은 5연승이었다. 스페인의 새로운 연승 우승 기록이 한결 돋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스페인은 예선까지 치면 13연승을 내달린 끝에, 등정을 이루는 신지평을 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개가였다.
이처럼 라 로하가 찬란한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데엔, 푸엔테 감독의 지휘력과 로드리의 경기 조율 능력이 ‘찰떡궁합’처럼 조화를 이루며 그 바탕이 됐음을 엿볼 수 있다. 그 밑거름 위에 두 사람에게 붙어 다니는 듯한 ‘우승운’이 더해지면서, 솟구친 기세가 승승장구를 가능케 했다.
이번 독일 대회에서, 푸엔테 감독과 로드리는 우승에 관한 진기록을 창출했다. ‘우승의 저주’가 내린 듯 또다시 정상 일보 앞에서 분루를 삼킨 해리 케인(29·잉글랜드)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모양새다.
푸엔테 감독은 ‘유로의 사령탑’이 됐다. UEFA가 주최하는 연령별 3개 유로를 모두 석권했으니, 이 같은 영예스러운 칭호를 받음에 모자람이 없다. 2015 U-19와 2019 U-21에 이어 2024 유로까지 휩쓴 최초의 사령탑으로서 이름을 드높였다. 2022-2023 UEFA 네이션스리그 우승 사령탑도 푸엔테 감독이었으니 두말해 무엇하랴.
이 연장선 위에서, 우나이 시몬(27)과 미켈 메리노(28)도 조명을 받고 있다. 푸엔테 감독이 걸은 영광의 꽃길에, 둘은 모두 함께했다.
로드리는 지난해부터 이번 유로까지 모두 여덟 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중 여섯 개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꽃피운 결실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2022-2023시즌)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회(2022-2023~2023-2024시즌)를 비롯해, FIFA 클럽 월드컵(2023년), UEFA 슈퍼컵(2023년), FA컵(2022-2023시즌) 정상을 휩쓸며 대소를 터뜨렸다. 남은 두 개는 라 로하에서 수집했다. 네이션스리그와 유로에서 각각 한 번씩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이번 유로에서, 로드리는 독일 하늘을 가장 눈부시게 수놓았다. MVP(최우수 선수)에 오르며 유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우승을 손안에 움켜쥐고 다니는 양 정상에서 거니는 행운의 사나이에게 어울리는 마지막 한 점이었다.
라 로하는 다시 등정길에 오른다. 이번에 넘어야 할 산은 2024-2025 UEFA 네이션스리그다. 푸엔테 감독과 로드리와 더불어 가는 듯싶은 행운의 여신이 이번에도 별다른 변덕을 부리지 않고 미소를 보낼지 흥미를 자아내는 관전 포인트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