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의 대처가 참 아쉽다. 과연 한국인이 주장으로 있는 팀이 맞을까 의심이 될 정도다.
토트넘 홋스퍼는 20일(이하 한국시간) 구단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최근 벌어진 로드리고 벤탄쿠르(27, 토트넘)의 인종차별 사건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했다.
토트넘의 미드필더 벤탄쿠르는 앞서 15일 우루과이 TV 프로그램 '포르 라 카미세타'에 출연한 벤탄쿠르는 진행자로부터 한국 선수 유니폼을 부탁받았다. 토트넘 주장 손흥민(32, 토트넘) 유니폼을 달란 뜻이었다. 벤탄쿠르도 "쏘니?(손흥민의 별명)"라고 되물었다.
벤탄쿠르는 "손흥민 사촌의 유니폼일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진행자 역시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함께 웃었다. 아시아인 모두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명백한 인종차별 발언이다.
논란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고 벤탄쿠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쏘니 나의 형제여! 일어났던 일에 대해 사과할게. 그건 정말 나쁜 농담이었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절대 당신이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상처 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줬으면 해! 사랑해 형제여"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 사과문도 잡음을 피하지 못했다. 벤탄쿠르는 게시된 지 24시간이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사과문을 올리면서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 사과문은 내려간 상황이다.
벤탄쿠르는 'Sonny'를 'Sony'라고 적는 실수까지 범했다. 'Sony'는 손흥민의 애칭이 아니라 일본의 전자제품 기업 이름이다. 무엇보다 벤탄쿠르가 정말 반성했다면 자신이 인종차별적 발언에 무감각했다고 정확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했다. 단순히 '나쁜 농담'이 아닌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더 아쉬운 건 토트넘의 대응이다. 토트넘은 빗발치는 항의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타팀 팬들이 손흥민을 인종차별했을 때 빠르게 성명문을 게시하며 강경하게 나섰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대처였다.
심지어 토트넘은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댓글을 계속 삭제했다. 16일부터 토트넘 소셜 미디어에는 왜 댓글이 지워지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벤탄쿠르와 상관없는 게시글에도 "왜 벤탄쿠르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댓글을 계속 삭제하고 있느냐?"는 댓글이 최상단에 자리했을 정도다.
팬들은 "어떻게 이 팀이 아시아 팬들을 무시할 수 있지? 충격이다", "이 팀은 아시아 팬들은 돈벌이로밖에 보지 않는구나", "우리 주장에게 존중을 보여달라. 댓글은 그만 지우시고", "마치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은 토트넘 구단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토트넘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축구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단체 '킥 잇 아웃'이 행동에 나선 것. 영국 'BBC'는 "해당 단체는 벤탄쿠르의 발언에 대한 상다히 많은 수의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킥 잇 아웃의 보고에 따르면 이 수많은 제보 내용과 항의 내용은 토트넘과 관련 당국에 전달됐다"라고 알렸다.
상황은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아시아 선수가 주장인 팀이 '인종차별 클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위기에도 놓였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단순히 '주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선수다.
구단 역대 통산 득점 5위, 구단 역대 통산 도움 1위라는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구단 역사상 100골을 돌파한 최초의 외국인 선수, 해리 케인에 이어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 역대 득점 2위, 구단 역사상 8시즌 연속 프리미어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한 역대 2번째 선수다.
손흥민은 구단 올해의 선수에 3번 선정됐고 구단 공식 서포터즈가 선정하는 올해의 시상식 모든 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선수다.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손흥민은 20일 구단보다 빠르게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벤탄쿠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다. 그는 일부러 모욕적인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우린 형제 같은 사이"라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우린 이 일을 끝냈고 우린 하나가 된 팀으로 싸우기 위해 프리시즌 다시 함께할 것"이라고 썼다.
토트넘은 손흥민이 입장을 발표한 뒤 구단 공식 입장을 전했다. 토트넘은 20일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벤탄쿠르의 인터뷰 발언과 이어진 공개 사과 이후, 구단은 문제가 긍정적인 결과에 이르도록 지원하고 있다"라며 글을 시작했다.
구단은 "여기에는 선수들에게 다양성, 평등 등과 관련한 추가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손흥민이 이번 사건을 정리하고 팀이 새 시즌에 집중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라며 구단의 입장을 전했다.
이어 "우리는 다양한, 국제적인 팬층과 선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구단은 우리의 영역, 나아가 더 넓은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차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끝내 손흥민과 아시아 팬들을 향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구단은 반드시 명시됐어야 할 사과 대상(손흥민과 아시아 팬들)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구단이 이번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 손놓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문장도 없었다. 대신 "이제 손흥민이 팀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말만 늘어놨다.
한국인 선수가 '주장'으로 있는 팀에서 나올법한 대처가 아니다. 토트넘은 사과하는게 그리 겁났을까.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처다. /reccos23@osen.co.kr